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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손 최고수 조창조 이야기(7)-퍼 온 글

“우리 건달들이 정치판에는 안 끼려고 해요. 정치인한테 이용만 당하거든요. 이정재도 그래서 사형당한 거고. 내가 8년간 옥살이한 것도 그렇죠. 주먹쟁이는 정치꾼과 어울리면 안 돼요. 어울릴수록 손해예요.”

주먹이 정치에 참여한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것은 1987년 결성된 호청련(호국청년연합회)이다. 호남주먹의 대부인 이승완씨가 주도한 이 단체의 창립회원은 2000명에 달했다. 일본의 우익단체를 본보기 삼아 전국 각 지역에 지부를 설립했고 산하에 학생 3000명이 가입한 호국학생연합회를 뒀다. 검찰에 따르면 호청련은 1989년 문익환 목사 방북을 규탄하는 성명을 냈고 재야단체 사무실에 난입해 기물을 파손했다. 또 서경원 의원 방북사건이 발생하자 야당인 평민당을 성토하는 등 우파적 성향을 과시했다.

조씨는 자신이 호청련 결성에 일정한 역할을 했음을 감추지 않았다.

“이승완이 나보고 회장을 맡아달라고 여러 번 부탁했는데, 내가 거절했어요. 대신 동생들을 보내줬지요.”

그 무렵 안기부 고위간부이던 엄삼탁씨가 전국의 여러 폭력조직을 묶어 정치적으로 활용하려 했다. 조씨를 비롯해 많은 주먹이 이에 호응했다.

“엄삼탁이 부탁해 나도 대구에서 뭘 하나 만들었습니다. 이강환은 화랑동지회 결성하고. 신상사도 만들었죠.”

▼ 나중에 다 깨졌지요?

“나중에 ‘범죄와의 전쟁’ 선포해 다 잡아넣은 것 아닙니까.”

▼ 엄삼탁씨가 주먹들을 이용했다가 다 잡아넣은 것이라면서요?

“대표적인 사례죠. 정치인들과는 어울리지 말아야 합니다. 일본에 가보면 오야붕(우두머리)들은 (안전을) 보장받고 있어요. 본인이 범죄행위만 하지 않으면 잡혀가지 않습니다. 부하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건 별개 문제입니다. 오야붕은 어느 정도 인정을 해줘야 합니다. 범죄도 없는데, (수사기관이) 실적 올리려고 조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잡아넣는 건 문제입니다.”

▼ 우리나라에서는 조직을 범죄단체로 보잖아요?

“바로 그거예요. 야쿠자를 폭력단이라고는 해도 범죄단체라고는 안 해요. 그들은 엄연히 직업이 있어요. 그리고 법을 지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건달들 죽이려고 술집도 못하게 합니다. 범죄단체조직죄라는 게 세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는 법입니다. 건달은 돈도 벌지 말라는 거죠. 그러면 뭐 먹고살라는 말입니까. 일본은 건달법이 있어요. 노름, 건설, 노조, 유흥업소… 정상인이 안 하는 일을 건달이 합니다. 야쿠자의 직업으로 인정해요. 우리는 무조건 못하게 하잖아요.”

그간 정권 차원에서 폭력조직에 철퇴를 가한 것은 세 번이다. 첫째는 5·16 직후의 국토건설단, 둘째는 1980년대 초의 삼청교육대, 셋째는 1990년에 선포된 ‘범죄와의 전쟁’이다. 조씨는 자신의 표현대로라면 “운이 좋아” 국토건설단과 삼청교육대를 피할 수 있었다. 누군가 일이 터지기 전에 찾아와 빨리 피하라고 귀띔해줬다는 것. 하지만 ‘범죄와의 전쟁’의 포화는 비켜가지 못했다. 1991년 살인교사 혐의로 구속된 것.

“노태우 때문에 죽을 뻔했다”

조씨는 1987년 대선 때 동생들과 함께 노태우 후보를 경호했다. 광주 유세 때는 시민들이 던진 돌까지 맞았다. 이에 대해 묻자 그가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 얘긴 하지 맙시다. 노태우 때문에 죽을 뻔했지요. 정치인은 믿지 말아야 해요.”

▼ 뜻한 바가 있으니 관여했을 것 아닙니까.

“전두환이 물러가고 노태우 시대가 열리는 시점이었습니다. 만약 그때 노태우가 안 됐다면 군부에서 가만히 안 있었을 겁니다. 그걸 막자는 뜻에서 여러 사람과 힘을 합쳤지요.”

1991년 그는 경북 김천관광호텔 살인사건에 휘말려 구속됐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1990년 이 호텔 오락실의 상무가 칼에 찔려 죽었다. 범인이 잡혔는데, 조씨의 동생들 중 한 명인 S씨 밑에 있던 사람이었다. 검찰은 조씨가 S씨에게 지시해 일어난 사건으로 보고 조씨를 수배했다. 숨어 지내던 조씨가 검거된 것은 1991년 12월. 법원은 징역 8년을 선고했다. 그는 대법원까지 올라가며 무죄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조씨에 따르면 이 사건엔 직접증거가 없다. S씨는 사건이 터지자 미국으로 달아났다. 범인은 조씨와 모르는 사이였다. 다만 증인이 한 사람 있었다. 증인은 “조씨가 S씨에게 그런 지시를 하는 걸 옆에서 들었다”고 증언했다.

월계수회 사무국장 뺨 때려

조씨는 구속 당시 친분 있는 정치인들이 자신을 도와주려 했으나 당대의 실세 박철언씨에게 가로막혔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