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나오는 건 다 거짓말이에요. 인간은 쉬지 않고 5분을 못 싸웁니다. 5분 이상 싸울 수 있다면 극한의 세계로 들어간 거지. 1대 1이 아니라 서너 명과 상대할 경우엔 속으로 시간 계산을 합니다. 2분은 때리고 3분은 도망치는 걸로. 가장 센 놈부터 칩니다. 그놈의 옆에 있는 놈한테 ‘이 새끼, 참 나쁜 놈이네’ 하면서 다가서는 척하다가 그놈을 치는 거죠. 넋 놓고 있다가 맞는 겁니다.”
조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동작을 취했다.
“몸 따라 주먹을 돌리기 때문에 거리를 단축하면서 잔재주를 부릴 수 있죠. 다른 사람들이 보면 화려하죠. 세 놈을 개 패듯이 패니. 싸우다가 300~400m를 달릴 수 있겠다 싶으면 그때부터는 뛰어요. 그래야 망신당하지 않죠. 여러 명과 싸울 땐 그럴 수밖에 없어요. 1대 1은 그럴 필요 없지만. 아무리 잘 싸운다 해도 다섯, 여섯한테 어떻게 이깁니까.”
그에 대한 신비감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속임수를 쓰는 것도 실망스럽거니와 싸우면서 달아날 궁리까지 하다니…. ‘전설적 주먹’의 명성에 걸맞지 않아 보였다. 스스로 위신을 깎아내리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곰곰 생각하니 그가 옳은 듯도 싶다. 비록 정정당당하진 않을지 몰라도 현명한 행동임에는 틀림없다. 한마디로 실전적이다. 게다가 솔직하지 않은가. 그의 실전 강의를 계속 들어보자.
“상대가 몸집이 크면 나의 움직임을 줄여야 합니다. 호흡을 조절하면서 상대를 자꾸 움직이게 해 지치게 해야 합니다. 좀 지나면 상대 입술이 파래집니다. 거기서 2분만 더 흔들면 주저앉아버리죠. 나는 어릴 때부터 뛰는 걸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때 육상을 했습니다. 권투도 뛰는 게 뒷받침돼야 합니다. 폐활량이 좋아야 해요. 힘만 믿고 덤비는 건 구시대 싸움이고 나처럼 싸우는 건 현대전입니다. 내가 이길 수밖에 없죠.
‘창조한테는 왼 주먹만 안 맞으면 된다’고 겁먹고 덤비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왼 주먹이 더 셉니까, 오른 주먹이 더 세지. 왼 주먹 피하다 오른 주먹에 당한 사람이 많았어요. 그것도 눈속임이죠. 비장의 무기를 가리는 것이니. 내가 또 이마를 잘 썼어요. 권투하는 친구들도 이거 한 방이면 다 날아가요. 요즘 이종격투기 대회에서는 이마도 못 쓰고 부자지도 못 차고 눈도 못 찌르잖아요. 만약 그런 게 허용되면 내가 지금 젊은 선수들한테도 이길 수 있을지 모릅니다. 잘한다기보다는 약은 거죠. 여우처럼. 시합과 싸움은 다릅니다.”
-실전에서 화려한 동작은 금물이지요?
“그게 가장 나쁜 겁니다. 큰 동작은 화려하죠. 하지만 싸움엔 전혀 필요치 않아요.”
조씨에 따르면 싸움에선 단순하고 빠른 동작이 좋다. 그리고 상대의 동작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염천시장에서 경비과장을 할 때 알게 된 서태현이라는 사람은 그에게 실전싸움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줬다. 전남 순천에서 오이를 싣고 올라와 염천시장에 내다 파는 사람이었다.
“그 양반이 내 싸움을 보고 놀랐어요. 싸움을 참 쉽고 재미있게 하거든요. 쓱쓱 들어가 어깨로 퉁 쳐 엎어뜨리고 다리 걸어 자빠뜨리고…. 자기가 하는 무술과는 영 다른데 참 잘하거든요. 그 양반이 ‘참 재미있게 싸운다’며 말을 걸어왔고 이후 친해졌습니다.”
조씨는 서씨의 요청으로 그의 고향인 순천에 갔다가 한 수 배우고 왔다. 서씨는 순천에서 태극권 도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의 스승은 한의사였다. 조씨와 서씨의 스승은 서씨의 도장에서 일합을 겨뤘다. 조씨는 이날 그의 몸에 손 한 번 대지 못했다.
“틈이 없는 거예요. 내가 전진하면 그만큼 물러서고. 몸이 무척 가볍더라고요. 내가 들어가면 다리를 탁 차내면서 거리를 주지 않아요. 뱅 뱅 뱅 한 5분 돌았나. 땀은 비 오듯 나는데 때릴 데가 없는 겁니다. 잡히지도 않고. 정말 미치겠더라고요.”
서태현씨한테 “이게 뭐냐”고 물으니 “거리를 주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열이 난 조씨는 이번엔 서씨와 붙었다. 결과는 똑같았다. 조씨는 태극권을 통해 거리 조절하는 법을 배웠다. 서씨가 조씨에게 가르쳐준 귀한 기술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이마와 무릎이 동시에 들어가는 공격법이다. 조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시범을 했다. “둘 중 하나는 맞게 돼 있다”면서.
“주먹은 정치인과 어울리면 안 돼”
정치권과 주먹의 관계는 악어와 악어새로 비유한다. 조씨도 예외가 아니었다. 1987년 대선 때 노태우 후보의 사조직인 태림회에서 활동했다. 정치권과의 관계를 캐묻자 그의 표정이 바뀌었다.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맺힌 게 많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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