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스크랩

맨 손 최고수 조창조 이야기(끝)-퍼 온 글

조씨는 공갈·협박, 폭행죄로 구속 기소됐다. 57일간 구치소 밥을 먹다가 벌금 1000만원을 내고 풀려났다.

“검사랑 얼마나 싸웠는지. 이놈들이, 그날은 좋게 끝났는데 나중에 다시 싸움이 붙었거든. 그러면서 부산 애들이 나를 고소한 거야. 나도 그때 처음 알았는데, 말만으로도 폭행죄가 성립하더라고요. 나는 잘 알지도 못하는 일인데, 야쿠자가 와서 어쨌다나….”

조씨의 싸움실력은 타고난 것만은 아니다. 평소 꾸준히 단련한 덕분이다. 평생 술· 담배를 하지 않은 그는 하루라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체질이다. 환갑 넘어서까지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섀도복싱을 하고 달리기를 하고 팔굽혀펴기를 했다. 나이 들어서도 섀도복싱을 한 데 대해 그는 “어디 가서 망신은 안 당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섀도복싱은 62세 이후 접었다. 그러나 칠순이 넘은 지금도 몸 관리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인터뷰 전날 밤에도 속보로 3시간가량 걸었다고 한다.

그의 철저한 몸 관리는 교도소에 수감돼 있을 때도 화제였다. 하체운동인 앉았다 서기를 한 번에 700회, 엎드려 팔굽혀펴기도 한 번에 270회씩 했다고 한다. 팔 두께가 46㎝, 가슴둘레가 128㎝였다. 웬만한 주먹들은 그의 근육만 보고도 주눅이 들었다.

“운동을 안 하면 불안했어요. 앉았다 서기를 몇백 번 하면 괜찮아졌지요. 젊은 사람들이 따라 했습니다. 내가 만 53세에 들어가 61세에 나왔으니…. 안동교도소에서는 놀라죠. 저 영감 저러다 쓰러진다고. 달리기도 젊은 사람들보다 잘했어요. 돌이켜 보면 우습죠. 인생을 철없이 산 겁니다.”

교도소에는 전국 각지의 주먹이 모여 있다. 이래저래 싸움이 나게 마련이다. 하지만 큰형님인 조씨는 신성불가침 영역이었다. 누구도 그를 건드리지 못했다.

“이 세계의 상징적 인물이니, 나한테는 누구도 못 덤벼들죠. 나이 차이도 있고. 일반인도 큰 어른한테는 예의를 지키잖아요. 우리 세계도 그런 게 있습니다. 나한테 기어오른다는 건 상상도 못하죠. 할 얘기는 아니지만, 교도소가 건달 양성소예요. 그곳에서 애들이 훈련하고 인맥을 쌓게 됩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거기서 왕이에요. 양은이가 그래서 큰 것 아닙니까.”

“창조 형을 모시고 있었다”

조씨는 안동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300여 명의 주먹에게 신비한 존재요, 경외의 대상이었다. 교도관이 그에게 함부로 대했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었다. 그를 따르는 주먹들이 가만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교도소에서 재소자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종교행사에 참여한다. 조씨는 천주교 신자다. 미사 시간이 되면 수많은 주먹이 그를 가운데 두고 호위하듯이 삥 둘러앉았다. 다른 종교를 믿는 주먹들도 미사에 참석했다. 먼발치에서나마 그를 보기 위해서였다. 젊은 주먹들은 출소해 바깥세계로 돌아가면 “창조 형을 모시고 있었다”고 자랑했다.

“전국 40여 개 교도소에 있는 오야붕들이 ‘가장 큰 형님이 안동에 계신다’고 애들한테 교육을 했습니다. 성탄절이나 연말이 되면 카드가 수백장씩 날아왔어요. 그중에는 사회 나와서 가까워진 애도 많아요. 나 때문에 큰 애도 많고. 어떤 애가 괜찮으면 그 오야붕을 불러 말해줍니다. ‘나하고 몇 년 같이 지냈는데, 사내 기질도 있고 쓸 만한 놈이더라. 잘 돌봐줘라.’ 젊은 애들에게는 내가 우상이죠. 같은 세계에서 공존했으니.”

그의 휴대전화기가 수시로 울렸다. 문자메시지도 자주 날아왔다. “우리는 사람 많은 걸로 살잖아”라고 그가 웃으며 말했다. 그는 대구와 서울을 오가며 매일같이 많은 사람을 만난다. 기자는 그를 호텔 커피숍에서 몇 차례 만나면서 그가 마당발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아는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이런저런 부탁을 받는 경우가 많아요. 누굴 소개해 달라, 정치인한테 얘기 좀 해달라…. 때론 답답하기도 해요. 나도 일을 해야 하는데, 후배들이 자꾸 찾아오니…. 한번은 휴대전화를 끊어봤어요. 난리가 났었습니다. 아예 집으로 찾아오더라고.”

평생 특정 조직을 거느린 적이 없으면서도 주먹계의 대부로 인정받은 것은 한국 주먹사에서 특이한 사례다. 수많은 주먹이 몰려든 그의 칠순잔치는 시라소니의 적통인 맨손주먹 시대의 마감을 알리는 고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젊은 친구들한테는 내가 1대 1 싸움에서 진 적이 없다는 것이 신화로 각인돼 있습니다. 윗 선배들이 나에 대해 좋게 얘기해준 거지요. 나는 이 세계에서 라이벌이 없어요. 조일환이나 구달웅이나 다툴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다들 나이가 들어 친구로 좋게 지냅니다. 그 친구들이 한 가지 인정하는 게 있어요. 싸움으로는 나한테 안 된다는 것. 그걸로 저는 만족합니다. 그렇게 인정해주니 고맙지요. 나도 그들을 존경하고. 또 바로 밑의 이강환 또래가 나를 좋아하고, 나도 그들을 좋아하고.”

이제 한 시대를 풍미한 주먹대부와의 인터뷰를 마무리할 때다.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에게 ‘마지막 멘트’를 주문하면 평소 하고 싶었던 얘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조용히 살려고 합니다. 솔직히 젊은 친구들이 이 길로 가는 걸 원치 않아요. 좋은 길이라면 내 자식부터 이쪽으로 가도록 이끌었겠죠. 하지만 좋은 길이 아니잖아요. 나만 해도 떠밀려서 여기까지 온 건데…. 내 인생이 아니지. 이게 뭐 좋은 직업이라고. 칠순 때 후배들에게 미안했습니다. 건달 아우들아, 가슴으로 안으마. 머리로는 절대 안지 않으마. 그들을 가슴으로 안고 끝내고 싶어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