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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도서관이 국립도서관이 아니라니?

지금까지 남산도서관이 국립중앙도서관인 줄 알고 있었다.

그게 아니었나?

도서관 직원한테 물어보니, 자기도 그런 소리 들었는데

지금은 서초동에 있다고 했다.

1989년 11월 18일 한국무역협회 시험을 치러 서울에 올라 왔다.

예쁜 여학생들 구경할 겸해서 서울교대로 가서, 그 곳의 중앙도서관에

가면 여학생 구경 실컷 하겠지 하고는 기쁜 마음으로 서울교대로 갔고

거기서 서울말씨쓰는 여학생들한테 말을 걸어보니

중앙도서관은 버스타고 가야 한다고 했다.

이상타 어떻게 중앙도서관이 외부에 다 있나? 싶었지만

마침 휴가나온 군인이 자기도 거기 가는 길이라고 해서 동행을 해주었다.

자초지종을 듣더니,

아마 학교의 중앙도서관이 아니고 국립중앙도서관을 안내해 준 것 같다고 했다.

다시 교대로 돌아가려니 귀찮고 해서 그냥 가기로 했는데

그 군인양반을 참 잘 만났었다.

중앙도서관에 그냥 들어가면 자리 잡을 수 없으니, 그냥 열람권을 끊어서 들어가서

공부하는 독서실에 빈 자리에 공부하다가 주인이 오면 옮겨도 되고

혹시 나가는 사람 만나면 열람권과 독서실이용권을 바꾸면 된다고 했다.

기가 막힌 방법이었다.

그 때가 한국통신 4급공채 합격자 발표날이었고,

다음 날은 한국무역협회 시험날이어서 대구에서 상경하여 시험공부를 하려던 때였다.

군인아저씨가 알려 준대로 해서 무사히 독서실에 자리를 잡았고 무거운 책가방

내려 놓고는, 통신공사 시험합격자 발표를 보느냐 마느냐에 생각이 미쳤다.

시험자체를 너무 어렵게 내서 합격했을 것 같지도 않았고 경쟁률도 너무 높아서

기대를 못했다.

(나중에 시험성적을 내가 인사부에 있을 때 확인해보니 70.83점이었다.

연수원에서 1등했던 동기도 70.83점이었는데 번호가 행정직 중에서 제일 꼴찌인 38번

이어서 모두가 꼴등으로 합격했다고 놀렸는데 본인도 그게 신경쓰였는지

충원부에 발령나자말자 확인해보니 자기보다 성적이 낮은 사람이 있어서 꼴찌는

아니었다고 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ㅋㅋ)

저거 보고 혹시라도 떨어졌으면 기분 잡쳐서 다음 날 시험도 못 칠텐데......

하면서도 궁금하니 자리에 붙어 있을 수가 없었다.

슬며시 일어나 신문비치대로 가서 서울신문을 들쳐 대충 훑어보니

합격자 명단에 이름이 없었다.

누가 합격했는지 보자 싶어서 자세히 들여다 봤더니

대구 경북지역에서 가장 번호가 빨라서 윗 칸에 이름이 있는 걸 발견했다.

야호! 하고선 바로 짐을 쌌다.

시험공부고 뭐고 다 치우고 바로

산업은행에 다니는 후배하고, 강남구청에 근무하던 일중이 연락해서 저녁에 만났다.

좀 헷갈리네. 11월 12일 산업은행 시험치러 와서 연락을 했었나?

라마다 르네상스호텔 지하에서 셋이서 푸짐하게 안주 쌓아놓고 자세 좀 잡았었는데......

완이하고 일중이하고 일중이 집 근처에서도 함께 했는데 이때는 또 언제인고?

이렇게 기억이 꼬이다니 역시 나이가 들어가긴 가나보다.

하여튼 중동고등학교에서 시험쳤던 무역협회 시험이 11월 19일이었고

일중이 집에서 자고 다음 날 택시타고 갔던 기억은 확실하다.

친구 어머님이 끓여 주셨던 무쇠고기국을 든든하게 먹고......

무역협회도 합격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꿈많았던 시절이었네........

얘기가 너무 옆으로 샜다.

가만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 위에 쓴 글을 좀 봐야 하겠구만.

오라~ 남산도서관.

지금껏 남산에 있는 것을 국립중앙도서관으로 생각했고

주변에 모두 그렇게 얘기했어도 아니라고 하는 소리를 못 들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일중이도 그 후 서울교대에서 내가 버스타면 남산으로 오느냐고

물었을 때 갸웃하면서도 뭐 올 수도 있지 그랬는데 아닌 것 같다.

406번이 고속터미널로해서 서초동 쪽으로 가는데 남산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러면, 그 때 갔었던 국립중앙도서관은 지금 남산도서관 직원 말마따나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서초동에 있고, 서울교대로부터 가까운 곳이다.

난 지금까지 22년 동안 국립중앙도서관은 남산에 있는 걸로 알고 있었고

그걸 열심히 떠들고 다녔다.

지금까지 내가 떠들 때 토을 달지 않았던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았던

셈이다.

나쁜 사람들.....

충무공집터에 갔다가 지난 번 한강변 장거리 빡센도보 할 때에 뭉친 근육도 풀 겸해서

남산으로 잰걸음을 옮겼다.

그 중에 전에 누가 명동성당 근처에 500에 30정도 하는 집을 좀 봐달라는 글을 본 적이 있어

참고삼아 단칸방(원룸)의 전화번호를 담는다.

충무로에서 걸어와 서울시 소방방재본부쪽으로 해서 좌측으로 꺾어 남산행


일제강점기 데라우치 통감도 이 400년된 은행나무 뒤 관저에서 거만하게 누웠었겠지.

은행나무는 뭐라고 얘기를 했을까? 가소로운 놈


나라를 빼앗아 합치는 와중에 임금의 서명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모양새를 일부러 그렇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완용과 데라우치가 그냥 서명하고

쓱삭했네.

남산의 단풍과 빛이 아름답다.


남산도서관에 도착해서 가만히 살펴보는데 아니?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시립도서관으로 탈바꿈했다는 말조차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