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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기동 역사 사진전 3

1970년대 초반, 회기동과 인접한 이문동 도로에서

경희고등학교 학생들이 거리 청소를 하고 있다.

당시 유일한 대중교통수단이었던 시내버스가 인상깊다.


1970년대 초반, 이문동 도로의 모습이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상점의 간판들과 택시, 버스 등의

모습이 이채롭다.


1970년대, 아침에 등교하는 학생들로 북적이는 경희대학교 정문 앞 풍경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양품점과 학교 관련 물품을 취급하던 '경희센터', 음식점 '호반" 등의 모습이 이채롭다.


1970년대, 회기동 도로에서 경희대학교 관계자들이 거리청소를 하고있는 모습이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당시에는 이처럼 거리청소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1971년에 촬영된 사진이다. 공장의 높은 굴뚝, 하단에 보이는 "삼화자동차공업사" 등

지금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1974년, 1974년에 찍은 항공사진으로 회기역 일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기와집 사이로 늘어가는 2층 양옥집을 통해 주거문화의 변화를 짐작해 볼 수 있다.


1974년 동안교회 주변지역 모습이다.

도로앞 상가들, 주택의 형태, 골목길 등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1979~80년으로 추정, ㅇㅇ 고등학교 주변 주택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1984년, 3월 5일자 경희대학교 <대학주보>에 실린 만평이다. 신입생들에게 경희대학교 주변을

소개하는 이 그림에서 당시 대학생들의 문화를 어림짐작해 볼 수 있다.


1980년대 전반, 학교 앞 도로 상가들은 많이 발전했지만, 산정현(?)교회와 청량초등학교

주변의 주택가는 70년대와 별로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1980년대 전반, 건설 중인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 모습으로 보아 1983년 무렵의 사진으로

추정된다.


1998~99년으로 추정, 회기동 일대 주택가도 많이 발전했지만 멀리 보이는 종암동 일대에는

아파트 단지가 많이 들어섰다.


1998년~99년으로 추정, 경희대학교 주변 주택가가 많이 변화된 모습이다.

특히 경희의료원 주변은 음식점 등 상가 골목으로 탈바꿈했다.


2009년, 신현대아파트 방면에서 경희대학교와 그 주변지역을 촬영한 사진이다.

1950년대와 비교하면 실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회기동 어린이집, 회기로에 위치한 구립 회기동 어린이집을 1987년도에 촬영한 모습이다.


연화사, 폐비 윤씨의 회묘를 회릉으로 승격시킬 때 함께 조성된 능의 관찰(?)이었다.

이후 각지의 사찰이 파괴되면서 사라졌다가 1725년(영조1년)에 복구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경기민요연수원,

중요무형문화재 제 57호인 경기민요 예능보유자 후보(?) 김금숙 명창이 제자들과 함께

노래하는 모습이다. 김금숙 명창은 후진양성과 경기민요 보급을 위해 회기동에서 경기민요

연수원을 운영하고 있다.


서삼릉 회묘,

연산군의 생모이자 성종의 왕비였던 폐비 윤씨의 묘다.

원래 현재 경희의료원 자리에 있었다가 1969년에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으로 이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