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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여군수기-예성강에 뿌린 피

군 복무 시절 나는 개성-평양고속도로 건설에 동원됐었다.

우리 군단이 맡은 구간은 개성-판문점 지구부터 황해북도 금천까지로 김일성의 생일인 4월15일까지 완공하라는 지시가 하달됐다.

나는 그때 공사장의 치료와 함께 오후 1~2시까지 진행되는 위생선전 방송프로를 맡았다. 그 때문에 늘 군의소와 선전부를 번갈아 오르락내리락하며 바삐 살았다.

군단 선전부가 쓰는 방송차는 소니 방송장비를 갖춘 일제차다. 그걸 타고 오후 마다 군인들의 위생선전도 하고 혁신적 성과도 방송해주면서 돌아다녔다.

위생선전은 동기 계절에 군인들의 손발과 얼굴 트는 것을 어떻게 하면 막는가 하는 등의 상식을 알려주는 것이다.

학교 때부터 화술에 취미를 붙이고 있었던 지라 사단에서 제기되는 행사 때마다 드문드문 결의문, 축하문을 읽어주는데 선발됐었다. 그랬더니 선전부 간부들이 그것을 기억해두고 나를 방송요원으로 발탁한 것이다.

방송시간이 아닌 나머지 시간은 군의소에 머무르며 치료 사업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군의소에 급한 무전 전문이 떨어졌다.

우리 군단 고속도로 건설 구간인 금천군 례성강(예성강) 다리 공사장에서 대사고가 일어났다는 내용이었다.

급히 구급준비를 하고 개성에서 떠났다. 작전부들과 정치부, 참모부. 군의소 등 여러 부서들과 함께 몇 시간에 뒤에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례성강 다리는 무지개 형식으로 건설되던 다리다. 여기선 아치형 다리라고 하는 것 같다.

완공일로 정한 김일성 생일까지 며칠 남지 않은 때였다. 낮과 밤이 따로 없이 수많은 군인들이 공사장에 내몰려 일했다.

그때 북한의 공사는 거의 인력에 의존해 했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인원이 공사장에 달라붙는가가 곧 공사 진척 속도를 좌우하는 변수였다. 지휘관들은 무조건 맹세를 지킨다면서 군인들을 새까맣게 다리 상판 몰탈(모르타르) 다짐 현장에 올려 보냈다.

더구나 례성강 다리는 수중 공사가 까다로워 공사 진척이 가장 늦었다. 다른 구간들은 노천 공사라 거의 다 마무리하고 완공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곳 다리만은 기한을 맞출지 말지 모르게 된 것이다.

구간을 완공한 곳에서 부대들이 이동해왔다. 인력은 충분하고도 남았다. 다리 꼭대기에 새까맣게 올라가고 다리 아래에선 몰탈 이기는 인력이 북적거리고, 거기에 각 부대 선전대가 번쩍번쩍 나팔과 북을 들고 나와 전투가요를 연주하고...말 그대로 그런 소란법석이 없었다.

그런데 시간에 쫓기던 것이 결국 사고를 냈다. 몰탈이 굳으면 다시 새 몰탈을 올려야 하는데 그런 초보적 상식도 어기고 몰탈이 미처 굳기 전에 새 몰탈을 올려 부었다. 거기에 수많은 인력과 기계가 다리 꼭대기에 올라가 일하니 결국 무게를 견디지 못한 다리가 무너져 내렸다.

김일성 생일이 뭐라고 결국 숱한 생떼 같은 젊은 군인들이 제물로 바쳐졌다.

우리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금천군 인민병원, 지역의 병원, 진료소들이 이미 총동원한 상태고 간호양성전문단체인 x군단 xx호병원 군인교도소대(간호양성소대)원들도 위생복도 없이 전투복장으로 총동원되어 사고현장의 시신처리. 처지, 호송. 대피작업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사고 당시 공사장에 없었던 군단 직속 경보대대까지 벌써 총동원돼 내려와 있었다. 금천군 행정일꾼들과 군당 일꾼들도 일반 주민들을 데리고 달려왔다.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누구인지 모르겠으나 인원장악(점호)을 하더니 느닷없이 여성군인들에게 알코올을 군용밥통뚜껑으로 떠서 무작정 입에 들이 밀어준다.

알코올을 보자마자 언젠가 들었던 이야기, 즉 전쟁 시기 여성 간호원들이 시신처리를 하기 전에 알코올을 마셨다는 이야기기 머리에 스쳐 지나갔다.

급히 주는 알코올을 종이컵으로 반 컵 정도씩 마시고 무작정 구급기방과 군용담가를 들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사고 현장에 도착한 순간 머리가 핑 돌고 눈을 차마 어디에 둘지 몰랐다.

피비린내와 아우성소리. 다급히 간호원을 찾는 소리...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떠밀리면서 얼떨떨한 상태로 주위를 살펴보았다.

손목과 팔 다리가 끊어져 돌아다니는 것은 기본...콧구멍과 목구멍에 시멘트 몰탈이 들어가 꺽꺽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사람들...눈에 마른 시멘트가 들어가 맹인처럼 허우적거리면서 살려달라고 짐승 같은 소리를 지르며 허우적거리는 사람들...머리가 절반 없어진 사람...기계장비에 끼운 사람...철근에 꽂혀 있는 사람... 아비규환이란 그런 곳을 의미하는 단어일 것이다.

간호원들과 사회 의료 종사자들은 움직이는 사람들부터 구출했다. 동원된 일반 민간인들은 시신을 운송하는 것을 담당했다.

죽은 사람들은 대다수가 한창 새파란 군인들이었다. 다리 상판에 올라가 있던 것이 주로 군인들이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환자들을 x병원으로 후송 되었다. 사고 현장에서 가까운 병원은 금천군 병원과 x병원이었다.

시체는 사고 현장 밖으로 업어 내어 따로 눕혀 놓았다.

대부분의 사인은 시멘트 몰탈이나 마른 시멘트가 얼굴을 모두 막아버려 호흡곤란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였다.

무너져 내린 시멘트 몰탈들은 빨리 굳어지게 하는 시약을 넣다보니 사고가 난 뒤 시신을 미처 꺼낼 사이도 없이 마구 굳어져버렸다. 그래서 알콜 먹은 군의들이 시신을 콘크리트 덩어리에서 뜯어내다시피 꺼냈다.

x호병원의 복도까지 환자들이 차고 넘쳤다. 복도에서 피를 쓰레받이로 양동이에 퍼 담을 지경이었다.

아마 여기 현장에 있었던 다른 탈북자도 있을 것이다.

사고가 발생한 시각은 오전 9시 경. 오후 2~3시가 되자 평양에서 구급대 장비들과 만수대창작사, 무력부에서 연방 날아왔다.

헬기가 내리더니 항일투사 김철만 대장이 내렸다. 그는 곧장 방송차로 가서 이렇게 소리쳤다.

“인민군장병들과 지원자들을 조국은 잊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갈팡질팡 하지 말고 침착하게 의료일군들이 하라는 대로 움직여 주십시오. 최고사령관동지께서는 여기 상황을 지켜보십니다.

용기를 내서 현장에서 빠져 나오십시오.

서로 힘이 되어 손잡고 나오십시오.”

그런데 그런 수라장 속에서 방송차 소리가 귀에 들릴 리 만무했다. 아니 누가 왔는지 관심도 없었다. 모두 시멘트를 뒤집어 쓴 사람들이 서로 살겠다고 허둥지둥 허우적거린다.

남자들이 몰탈 속에서 부상자나 시신을 겨우 뽑아주면 여자들은 담가에 이를 싣고 후송차로 보낸다. 동시에 구급 지혈하고 지혈 시간을 적어서 몸에 끼워준다.

시신들을 보니 우리도 넋이 나갔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온 몸에 피범벅이 되고도 그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전쟁터에서도 이 정도의 사망 밀도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울고 소리치며 죽어가는 환자들을 하나라도 더 꺼내기 위해 우리는 모두 정신이 나갔다.

(다음에 이음)

-이순실- 전 북한군 간호장교.

(※주성하 역주-이 사고 소식을 저도 현장에 있었던 사람의 입을 통해 들었는데 최소한 한개 대대 이상이 몰살됐다고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