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울성곽

6월18일 미탐방 구간 답사기 3-강북삼성병원에서 이화여고 류관순기념관까지

구 고려병원이었던 강북삼성병원안에 경교장이 있다.

경교장의 복원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돈은 당연히 서울시에서 대겠지만,

이거 해놓으면 강북삼성병원 엄청나게 이익이 되겠다. 돈과 인상 양측면에서 모두.


원래 1938년 금광업을 하던 최창학(우리 선배하고 이름이 같네)의 양옥주택이었다.

김세연이라는 분이 유명한가 보다. 그 분이 설계와 시공을 하셨다고 그런다. 경교장이라는

이름은 이 곳이 백범 김구선생의 거처로 쓰이면서 근처개울에 있는 경교라는 다리이름에서

따 온 것이라고 한다. 광복후 3년 7개월간 머무시다가 1949년 6월 26일 돌아가셨다.

그 후 자유중국대사관으로 쓰였고, 6.25때는 미 특수부대 시설로, 휴전후에는 월남대사관저로,

1967년 고려병원에서 인수하여 내부는대대적으로 수리하였다.

2층에 백범이 침실로 사용하던 부분을 복원하여 백범기념실로 사용하고 있다.

총탄이 유리에 남아 있다고 한다. 창틀이라고 생각한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6월26일날 추모행사가 있는데 가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후에 그새 잊어 버렸었다.


도로와 인도를 경계하는 저 아크릴판에 돈의문터가 새겨져있다.


원래 서쪽문은 태조5년(1396년)에서 사직단 부근에 시험문(?)으로 세워졌으나 그 후 도성을

고치면서 세종4년(1422년)에 이 곳에 돈의문을 세웠다. 새로 생긴 문이라 하여 새문 혹은 신문

이라고 불리웠으며 1915년 3월 도로 확장을 위하여 철거되었다.



돈의문터 옆의 횡단보도를 건너 정동골목으로 간다.


정동골목으로 들어가다가,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맞은편 어반가든 골목으로 끝까지 들어가면

건물 1층 중앙에 주차장이 나오고 주차장을 지나서 가다가 의탁자가 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창덕여중 뒷담장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아래). 어반가든의 배려가 아름답다(위).

이렇게 어반가든 속을 지나서 가야 한다(위). 그러면 창덕여중 담장이 나온다(아래)

서울성곽의 흔적이 뚜렷하다.


여기에 서울의 外四山중에서 불암산으로 표기된 것이 틀렸다고 서울시에 얘기해서

바로 고치겠다고 하더니 아직까지 그대로다. 문제가 있다. 접착쪼가리로 때우면 될 것 같은데

외사산 중 동쪽은 용마산이다.


사진의 배열이 거꾸로 되었는데, 저 주차장 속으로 들어가서 왼쪽으로 빠지면

창덕여중 뒷담이 나온다.


이 곳이 정동골목으로 들어와서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가야 하는

지점이다.


골목의 저 끝까지 주욱 직진하여 들어가야 한다.


창덕여중 뒷담을 확인한 후에 다시 정동골목으로 되돌아 나와서 덕수궁쪽으로 걸으면

국토관리청 옆에 옛날 법어(불란서어 프랑스어)학교터가 나온다.


닫힌 철문너머 저 위 공사현장이 창덕여중 증개축 현장이고 철문 틈새로 보면

성곽돌들이 아주 뚜렷하게 보였었는데 확인할 수가 없다. 항상 열려 있었는데

왜 이렇게 되었지?


이화여고를 들어 갈 때엔 늘 경비아저씨가 신경쓰여서 딴 데 보실 때 슬쩍 들어간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 말이야. 당당하게 들어가다가 잡으면 그 때 구경하러 왔다 하고

안된다 하면 나가면 되는데......나가면 안되니까 이러는 거지. 음.......

이화박물관 간다고 핑계를 대려고 해도, 보다시피(아래) 공사중이고


1886년에 설립된 학교. 이 얼마나 부러운 전통인가?

줄줄이 지어졌던 이화여고 벽돌 건축물 중에 현재 남아 있는 것이 이 이화박물관인

심슨기념관이라서 가치가 더욱 크다고 한다.


날짜보면 벌써 끝나야 하는데........


설립자 스크랜튼 여사의 상이 있는 건물앞 잔디 옆에 자랑스레 서있는

아름다운 숲의 "공존상" 기념판


나보다 22년 선배들이시네. 일흔이 넘으신 분들인데.......만감이 교차하시겠다.

가다가 강풍에 쓰러져 있는 팻말을 세워 드렸었는데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서는

아무래도 날짜가 지난 것이 아닌지?.......


멋진 이화여고.......


원형극장위 등나무아래 담장이 창덕여중과 맞닿아 있는데 틈새로 서울성곽발굴 조사현장을

구경했는데 여름이 되니 잎들이 넓어져서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담장위에 오르거나 어렵게 비집고 사진을 찍어 보았는데 시야가 분명치 않다.


왼쪽 철담장과 나무 기둥 사이에 흙으로 보이는 부분이 전에는 성곽돌 큼지막한 기단석

같은 것이 보였는데 이번에는 아예 보이지 않는다. 왜 그렇지?

흙으로 덮어 놓았는지........


속으로 성곽담장을 그려 본다면, 이 원형공연장위 담장을 따라서 간다.

저 하얀 이화여고 본관앞을 지나서 우측으로 흘러 내리고

저 담쟁이가 뒤덮은 담장으로 계속 내려가야지?


이 나무들 너머 저 하얀 건물들 앞으로 이어지겠지?


사진상으로 은행나무들 사이의 좁은 틈이 류관순기념관앞인데 담장 너머 순화동재개발구역

으로 이어질 것인지, 아니면 위에서 보았던 하얀 건물들과 담장을 경계로 이어질 것인지


잠시 성곽상상을 접고, 오래전 이 곳에서 학생들 붙잡고 물어 봤을 때 아무도 모르는데

한 여학생이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현재 저 나무들 밑에 열을 짓다시피

놓여 있는 돌들이 성곽돌을 발굴해서 놓아 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얘기해 주었고

다른 여학생들은 정말이야? 했다. 고놈들....나도 애를 낳았으면 그런 귀여운 아이들이

있었고 때론 다투고 때론 기뻐서 웃음이 터지는 기쁨을 맛볼텐데.....

이런 후회는 억만금이 생겨도 보상받을 수 없는 것이다.

돈으로 안되는 것들.

저 멀리 담장으로 이어진단 말인가?


류관순기념관 우측 담장 너머 벽돌들도 범상치 않았고, 이전까지 사진에서도

난 이쪽으로 성곽이 이어질 것이라고 봤는데 서울시의 성곽복원팀이 그려놓은 성곽종주

표지판은 이쪽이 아니고 배재공원쪽으로 나있는 것 같았다. 뭐 뚜렷하게 갈라지는 것은

아니고 정동골목쪽은 훌쩍 건너띄고 서대문에서 정동골목으로 들어가고 정동교회에서

배재학당역사박물관 골목으로 가다가 배재공원 속을 지나서 순화동 재개발구역 윗길로

걸어서 평안교회로 나가면 성곽종주표지판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