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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계종주

월간산 서울시계종주 1 2 구간-2

[서울시계종주 1·2] 시계(市界) 걸으면 역사가 보인다

1구간, 워키힐~아차산~태릉까지…삼국시대 고분·보루, 공원묘지 등 거쳐
2구간, 태릉~불암·수락산~도봉산역… 불암산성 등 유적·사연 많아

워커힐은 전사한 美 장군 이름 딴 휴양지


잠시 대장간마을로 들어가 취재하는 사이 일행이 전부 사라지고 없다. 아직 녹지 않은 길을 부리나케 뛰어올라갔다. 겨우 뒤꽁무니를 찾았다.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팀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54트레킹동호회는 백두대간을 두 번씩이나 종주한 아주머니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그 정도 내공인데, 어찌 감히 따라갈 수 있겠나. ‘오늘 고생 좀 하겠다’ 싶었다.


이젠 아차산 올라가는 길이다. 갈림길에 이정표가 있었다. ‘←아차산성·1보루, 큰바위얼굴·전망대→’로 나뉜다. 우린 아차산성 방향이다. 시경계는 위커힐로 올라가야 하나 워커힐 주변은 철조망으로 둘러쳐져 구리 쪽으로 둘러온 셈이다.


아차산(峨嵯山·286.8m)은 백두대간에서 갈라진 한북정맥이 한강을 앞두고 끝나기 직전에 일으킨 마지막 봉우리다. 이 산줄기는 양주군 광릉의 죽엽산(801m)에서 남하해 천보산, 수락산(水落山·637.7m), 불암산(佛岩山·507m)을 거쳐 그 주맥이 구릉산(검암산)에서 망우리고개를 넘어 망우산, 용마산(龍馬山·348m), 아차산에 이르며 아차산성이 있는 봉우리를 정점으로 한강으로 빠져든다.


▲ 눈이 채 녹지 않은 등산로로 일행이 불암산 정상을 향해 발길을 옮기고 있다.

능선으로 올라서니 아차산성은 문화재보호 및 산불예방으로 입산금지 푯말이 붙어 있고, 살벌한 철조망으로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뒤쪽으로 한강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이제 한북정맥 수락지맥의 끝지점에서 능선을 타고 간다. 한강이 바라보이는 동쪽은 남양주이고, 안개인지 스모그인지 자욱하게 낀 서쪽이 서울이다. 이 수락지맥이 경기도와 자연적인 경계를 이룬다.


능선 위로 잘 조성된 등산로엔 평일인데도 등산객들로 북적거렸다. 경기도 구리시와 서울 광진구를 가리키는 이정표는 180도 양방향으로 서 있다. 길을 따라 가면 된다.


아차산은 삼국시대 전략적 요충지


아차산은 높지는 않지만 삼국시대 전략적 요충지로 고구려와 백제, 신라가 이곳을 점령하기 위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아차산성과 아차산 일대 보루군이 사적 제455호로 지정돼 보호를 받고 있다. 보루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돌이나 흙 등으로 쌓은 축성물을 말한다.


▲ 서울시계종주팀이 안개가 자욱한 제명호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능선길의 전망은 동서남북이 확 트여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남으로는 유려히 흐르는 한강, 북으로는 빌딩 숲속 뒤로 보이는 북한산과 도봉산의 전경이 펼쳐진다. 어느 곳에서나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다. 그러니 평일에도 등산객이 많이 붐비나 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차산 명품 소나무 제1호가 그 좋은 전망대 바로 옆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다. ‘아차산의 바위틈에서 광진구와 한강을 바라보며 오랜 세월 광진구민과 함께한 소나무입니다’라고 이정표에 쓰여 있다. 10m도 못 가서 2호가 모진 세월을 견뎌낸 듯 함께 있다.


용마산 정상으로 가는 갈림길인 헬기장에 도착했다. 왼쪽으로 100여m 가면 용마산 정상이다. 그곳에 신라의 보루 흔적이 남아 있다. 용마산은 서울시 구역이고, 시경계는 망우산 방향이다. 그쪽으로 직진이다.


아차산 전역엔 150여 기의 고분이 산재해 있다. 확인된 파괴 고분만 해도 70여 기에 이른다. 이곳 용마산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은 항아리, 석제, 병 등으로 전형적인 신라 토기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들이다.


아차산에서 이어지는 능선은 망우산으로 연결된다. 자연히 망우산으로 넘어왔다. 망우산은 서울의 유일한 공동묘지다. 1933년 공동묘지로 지정된 이래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이곳에는 우리나라 어린이운동의 효시인 방정환 선생을 비롯해 독립운동가이며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인 오세창·한용운 선생 등이 안장돼 있다.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 선생, 도산 안창호 선생 등 많은 애국지사들의 묘역도 있었으나 국립묘지 독립유공자 묘역으로 이장했다. 시경계길은 능선 위로 걷지만 공원묘지 순환길을 따라 가면 이들의 묘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망우묘지엔 한용운 선생 등 안장


망우리묘소 입구 주차장에는 13도참의군탑이 세워져 있다. 1907년 일제에 의한 조선군의 강제해산에 저항하는 의병이 전국에서 봉기했다. 그 해 11월엔 경기도 양주에 13도 의병이 모여 서울 진격작전을 벌였다. 비록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그들을 기리기 위해 지난 1993년 건립한 것이다.


길이 이어지듯 시경계도 계속된다. 망우리 고개를 지나 망우산 밑으로 뚫린 중앙선 전철을 발아래 밟고 건넜다. 걷는 사람은 모르지만 지도엔 나타나 있다.


갑자기 급경사가 나왔다. 위에서 보니 경사가 80도 이상은 족히 될 것 같다. 그 아래로 태릉-구리 간 고속화도로가 지나고 있다. 오금이 저려 발걸음을 조심조심 옮겼다. 도로 관리하는 직원들이 사용하는 듯한 거의 수직에 가까운 계단이 눈 아래 세워져 있다. 거기로 내려가야 한다. 양 팔을 뻗어 양쪽을 꽉 잡고 천천히 한 걸음씩 옮겼다. 백 수십 개 되는 계단을 내려오는 데 5분 이상은 걸린 것 같다. 초심자들은 이 길을 찾기 쉽지 않아 보였다. 이 길을 사람들이 어떻게 찾았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내려서니 서울 신내동과 경기도 구리의 경계다. 해치상이 일행을 맞았다. 고속화도로를 건너기 위해 구리 방향으로 조금 올라가서 횡단도로를 건넜다. 다시 서울 방향으로 내려와 오른쪽 이정표가 있는 망우산 극락사 방향으로 진입했다. 시경계가 계속되는 길이다.


▲ 망우산 공원묘지에서 종주팀이 유려히 흐르는 한강을 바라보고 있다.

1구간 마지막 산인 구릉산으로 들어섰다. 조선시대 아홉 왕의 능이 동쪽에 있다 하여 동구릉이라 불렸다. 이곳은 원래 검암산이었으나 조선 왕실에서 이름에 ‘칼’을 연상케 하는 ‘검’자가 있어 역대 왕의 영혼이 잠들어 있는 곳에 불길하다 하여 이름을 못 쓰게 해서 구릉산으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구릉은 조선 건국 초기부터 왕릉터로 주목을 받은 곳이며, 가장 많은 왕이 안장돼 있다. 태조의 건원릉, 5대 문종과 왕비 현덕왕후의 헌릉, 14대 선조와 왕비 자인왕후 및 계비 인목왕후의 목릉 등 조선 왕조의 17위가 모셔져 있어 사적 제199호로 지정돼 있다. 동구릉은 시경계에서 구리 쪽으로 조금 내려가야 한다. 잠시 들렀다 가려니 준족의 일행을 놓칠까 싶어 멀찌감치 쳐다만 보고 지나쳤다.


구릉을 내려서면서부터는 평지다. 47번 국도를 따라 계속 걷다가 갈매주유소에서 왼쪽으로 꺾어 육군사관학교를 구리 방향으로 우회해서 간다. 이어 경춘선 철로를 건너 삼육대 앞을 지나 태릉 담터사거리까지 가면 1구간 끝이다. 오전 10시5분에 출발해서 오후 4시40분쯤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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