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울시계종주

월간산 서울시계종주 1 2 구간-4

[서울시계종주 1·2] 시계(市界) 걸으면 역사가 보인다
1구간, 워키힐~아차산~태릉까지…삼국시대 고분·보루, 공원묘지 등 거쳐
2구간, 태릉~불암·수락산~도봉산역… 불암산성 등 유적·사연 많아

김시습 흔적 매월정 근처에 되살려


과거 기억에 쇠줄을 잡고 아슬아슬하게 하산한 적이 있었던 길이 이제는 나무계단으로 깔끔하게 단장돼 있다. 변신한 등산로로 전혀 힘들지 않게 내려왔다. 길 한쪽 옆으로 독수리바위가 비상할 듯한 자세로 앉아 있다.


수락골에서 길이 이어진 깔딱고개 사거리에 도착했다. 일행은 매월정 방향으로 직진이다. 매월정에는 김시습의 흔적을 곳곳에 되살려 놓았다. 어린 시절 김시습이 살았던 자취를 좇아 그의 업적과 그가 지은 시를 보기 좋게 단장했다. 여유만 있으면 죽 둘러보고 가련만….


2구간 끝 지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운무 때문에 보이진 않지만 의정부로 가는 3번 국도로 쌩쌩 달리는 차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들으며 진달래능선으로 한 걸음씩 터벅터벅 걸었다. 그러고 보니 수락산에도 진달래능선이 있었다. 봄에 얼마나 아름다운 군락을 이룰지 궁금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임도가 나왔다. 제법 큰 길이다. 그런데 시계종주는 임도를 따라 계속 내려가면 낭패다. 왼쪽으로 빠지는 오솔길을 유심히 봐야 한다. 오솔길 들머리에 54트레킹동호회에서 제법 큰 리본을 달아놓았다. 오솔길을 따라 내려서면 노원구에서 근린공원을 한창 조성 중이다. 2월 말 현재 거의 완성 단계다.


▲ 수락산 등산로는 반듯한 흙길에 의외로 호젓한 숲길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육교로 3번 국도를 건너 새로 지은 아파트를 지나 서울 창포원을 거쳐 도봉산역이 2구간 끝이다. 오전 10시20분에 출발해서 오후 5시20분에 도착했다. 1구간보다 거리는 짧았지만 시간은 조금 더 걸렸다.


[서울시계종주 가이드] 지하철·버스로 접근할 수 있게 10개 구간으로 나눠


10개 구간으로 나눈 서울시계종주는 우선 편리하게 접근하기 위해 대중교통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구간을 끊었다. 즉 지하철과 버스로 접근 가능하게 했다. 1구간은 지하철 2호선 강변역이나 5호선 광나루역에서 내려 워커힐로 올라가면 된다.


2구간 출발지점인 태릉 담터고개도 7호선 태릉역에서 내려 7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버스정류장이다. 거기서 7-3번, 1155번, 1156번 등 담터고개로 가는 버스는 많다. 3구간은 7호선 도봉산역이 바로 출발지점이다.


한 구간거리는 보통 15㎞ 정도 되기 때문에 간단한 도시락과 간식을 갖고 가는 편이 낫다. 등산과 마찬가지로 주로 산을 넘기 때문에 중간에 사 먹을 장소가 없다고 보면 된다.


서울의 경계를 걷기 때문에 둘러볼 구간에 대한 서울의 역사를 대강 훑어보고 가는 것도 지식을 넓히는 한 방법이다. 한국의 역사는 산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산은 무궁무진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서울시계종주를 계기로 역사와 산에 대한 안목을 키우는 기회로 삼으면 좋을 것이다.


[서울시계종주 동행팀] 거인산악회·54트레킹동호회


한결같은 준족들…이구씨가 총대장 맡아


▲ 거인산악회와 54트레킹동호회가 연합한 서울시계종주팀을 이끌고 있는 이구 대장과 김옥희 총무, 유상헌 부대장(오른쪽부터).

54트레킹동호회는 1954년생들의 모임으로 간혹 남자들이 있긴 하지만 아주머니가 대부분이다. 남자들은 조용한 이들이라 별 농담도 하지 않고 걷기만 한다. 아주머니들도 백두대간을 두 번 종주한 사람들이라 종주 중에는 거의 얘기를 하지 않는다. 오로지 걷는 데 열중할 뿐이다. 간혹 휴식이나 식사 중에도 산과 관련된 얘기만 오갈 뿐 웃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별로 없다.


거인산악회는 그보다 나이가 많은 이들이 더 많다. 한 번 종주에 나설 때마다 20명 내외씩 참가해 수적으로는 풍부했으나 분위기는 다소 무미건조했다.


거인산악회의 이구 대장은 이 두 모임을 주도하고 있다. 1974년 거인산악회 창립 멤버로 본격적인 활동에 뛰어든 이구 대장은 1976년 창단한 회장의 갑작스런 이민으로 거인산악회 회장을 맡게 됐다. 얼떨결에 맡은 거인산악회 회장과 산행대장 자리가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다. 만 34년 장수 회장 겸 산행대장의 관록을 자랑하고 있다.


거인산악회는 전국에 회원이 3000여 명 되지만 매달 한 번 이상 활동하는 회원은 300여 명 정도다. 운영진은 대장 5명, 부대장 10명 등 총 15명이다. 이들이 백두대간 2팀, 정맥 1팀, 명산 1팀, 해외트레킹 1팀 등 5개 팀을 대장 1명과 부대장 2명으로 각각 나눠 맡아 책임지고 있다.


54트레킹동호회는 2008년 순전히 트레킹 목적으로 창립한 모임다. 만든 지 몇 년 되지도 않은 단체가 백두대간 2회 종주, 백두산·키나발루·일본 아소산과 북알프스·중국 황산 등에 다녀왔다. 1년 내내 산만 다니는 사람들 같아 보인다.


이 두 단체가 서울시계종주를 위해 모였다. 총대장은 이구씨, 총무는 김옥희씨, 부대장은 유상헌씨가 각각 맡았다. 54트레킹동호회의 김옥희씨는 ‘준족의 철녀’급에 속한다. 월 2회 산행에 답사·번개산행까지 책임지고 있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사뿐사뿐 나는 것 같은 걸음으로 산을 탄다.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발걸음으로 항상 제일 앞장선다. 한참 가다가 한 번씩 물어본다. “내가 너무 빨리 가냐”고.


같은 모임의 유상헌 부대장은 뉴질랜드로 이민 갔다가 한국에 잠시 둘러보러 왔는데, 등산 다니느라 아직 돌아가지 않고 있다. 지금 1년이 넘었다고 한다. 오로지 산만 다니고 있다. 이런 팀들과 서울시계종주를 하고 있다. 거의 가랑이 찢어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 글 박정원 차장 jungwon@chosun.com
사진 이구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