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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둘러보기

서울역사박물관 국가재건시대 사진전 2

일전에 한번 다녀 왔었는데 시간이 없어서

미처 다 돌아보지 못한 것이 아쉬워

오늘 취업정보원에 가서 명함만들어 놓은 것 건네받고

바로 서울역사박물관으로 향했다.

완연한 봄기운이 가슴을 설레게 하는 길을 좋은 구경하러 간다는

기대와 어우러져 너무나 멋진 날이었다.

감기기운이 있어서 힘이 들어도 구경한번 잘했다.

4월 14일부터는 체코사람이 1901년에 서울에 구경왔느지 사진전이 열린다는 안내가

크게 걸개로 걸려있다.


1954년에 정비석의 자유부인이라......빨랐네.

1957년에는 진달래 라는 담배가 1.3원으로 나왔고

1958년도에 청계천복개공사가 시작되었으며

같은 해에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인 종암아파트가 신축되었단다.

1959년도에 광화문전화국도 지어졌고, 다닐 때는 몰랐었네......

그런데 정말로 광화문전화국이었을까? 아닌데.......당시에는 우체국이었을텐데......

아니지 우체국은 지금 동아일보 옆에 있는데


박정희대통령이 후보3번으로 벽보에 나와있고,

당시 민주공화당의 상징인 "황소"가 언급되어 있으며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구호가 등장하였다.

다른 후보들은 솔직히 별 볼 일이 없다.

수주 변영로의 형인 변영태씨도 입후보하였고, 윤보선, 송요찬 등 낯익은 이름도 있고

1번은 장이석인가 하는 양반인데, 당 이름이 앞에 "신"자만 보인다.


1963년에는 삼양라면 1봉에 10원이니, 지금보다 60배 정도 쌌구만.

의료보험도 이 때 시행되었네. 가입이 자율이었나?

병원에 비싸서 못 갔었으니


1957년과 2010년의 물가를 비교하면,

쌀값은 100배 조금 더 넘고

자장면은 300배

밑에 나머지는 왜 물가가?.....

버스요금도 300배

담배가 300배



이때는 북한과 비슷하네. 이승만대통령 84세 생일 때의 전국민 행사


한자를 안 쓰니, "전재"가 "전쟁"의 오자인 줄 알았는데

가만 생각하니 "전쟁의 잔재"를 뜻하는 전재인가 보다.


1960년대가 우리나라 영화계의 전성기라고 한다.

서울시내 극장현황판까지 붙일 정도로......


재건시대에 일하는 국민들을 위로하기 위한 각종 행사가 열렸다.


펌프물에서 수도로 바뀌어, 수돗물밑에 시멘트로 물가두는 곳을 만들어

수박도 담가 놓곤 했었지.


이미용사자격시험 현장


서울시내에서 온 철거민들이 임시로 천막학교를 세워 공부하고 있다.


1960년대초에 우량아선발대회를 하고 있다.


혼식장려운동의 일환으로 밀가루음식을 먹자는 운동이 벌어져서

빵을 먹는 사람들 모습을 담았다.


극빈층에는 3홉의 쌀로 3일치 식량을 나누어 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