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05/09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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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삼전도비-삼전도청태종공덕비'(三田渡淸太宗功德碑)-
사적 101호
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실동 47 부근(석촌호수 교차로)
병자호란 당시 '조선이 청나라에 항복한다.'는 기록이 새겨진 삼전도비(三田渡碑·사적 101호)가 원래 위치인 석촌호수 주변으로 옮겨진다.
송파구는 "조선 인조 17년인 1639년 청나라와의 전쟁에 패배해 굴욕적인 강화협정을 맺고 세운 비석인 삼전도비를 원위치 고증을 거쳐 오는 25일 원래 자리인 송파구 잠실동 47번지 석촌호수 서호언덕으로 이전해 공개한다."고 22일 밝혔다.
비석의 원래 이름은 '삼전도청태종공덕비'(三田渡淸太宗功德碑)로 높이 3.95m, 폭 1.4m 규모다. 비에는 청나라가 조선에 출병한 이유, 조선의 항복 사실, 청나라 태종이 피해를 끼치지 않고 회군(回軍)했다는 등의 굴욕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 원래 위치는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 송파리 187번지로, 인조가 항복의 예를 올렸던 수항단이 세워졌던 자리로 알려져 있었으나, 1895년 고종 때 땅에 묻힌 이후 정확한 위치가 불분명해졌다.
이후 비석은 일제강점기 때 다시 세워졌으나 1956년 다시 땅속에 묻혔고, 1963년 홍수로 모습을 드러내는 등 수난을 겪었다. 송파구 석촌동 내에서도 2~3차례 자리를 옮겨 다니다 1983년 주택가 한가운데인 석촌동 289-3번지에 자리를 잡았다. 2007년 2월에는 삼전도비 철거를 주장하는 시민이 붉은색 스프레이 페인트로 '철거하라'는 낙서를 하기도 했다.
송파구는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에 의뢰해 위치 고증 작업을 벌여 비석의 본래 위치가 석촌호수 서호의 북동쪽 물 속(현재 매직 아일랜드 옆)임을 확인하고, 인근 석촌호수 변에 이전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비석이 비를 맞지 않도록 지붕을 설치하고 균열된 비신을 보수하는 등 문화재 보존 작업도 벌였다.
《글의 출처 : 조선일보[2010. 4.23(금)] 김성민 기자》
참고로 강요에 의해 이 굴욕적인 삼전도청태종공덕비문을 쓰지 않으면 안 되었던 당시 한성판윤오준(吳竣)은양심을 구하고자 벼슬을 버리고 붓을 꺽어 두번 다시 글씨를 쓰지 않았다 한다.뿐만아니라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글을 써야민 했던 그는 오른손을 돌로 찍어 병신을 만들기도 했다.
[현 삼전도비(三田渡碑)]
[여기까지가 이전 후 삼전도비(三田渡碑)]
[여기부터 이전 전 삼전도비(三田渡碑)]
서울특별시 송파구 석촌동 289-3
[출처] (송파)삼전도비-삼전도청태종공덕비'(三田渡淸太宗功德碑)-|작성자 개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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