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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둘레길

도봉산둘레길 왕실묘역길 -1 ( 40분)

정의공주묘에서 우이우이령길입구에 이르는 1.6킬로미터, 45분이 소요된다고 안내한다.

걸어보니 40분이 걸렸다.

이 구간은, 방학동길에서 빠져 나오자 말자 사천목씨의 재실이 눈앞에 나타나고

곧이어 정의공주묘가 있다.

세종대왕의 따님이신데 한글창제에 역할을 많이 한 것으로 소개된 내용을 본 적도 있었다.

정의공주묘를 보고나서 차도를 조심스럽게 건너면 연산군묘역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차도를 건너자 말자 고깃집이 보이는데 늘 비오는 날 여기를 다녀가서

처마밑에 앉아서 비오는 소리 들으면 지글지글 고기안주에 소주한잔이 간절했었다.

연산군묘역에 들르면 좋은데 이 날은 통과했다. 두세번 정도 갔었으니까.

파평윤씨들이 모여살면서 만든 원당샘은 폐쇄한 건지 집은 잘 지어 놓았는데

먹을 공간을 나무판자로 막아 놓아서 좀 그렇네.

그 밑에 물을 떠서 손과 손수건을 적실 정도는 되긴 하는데.

바로앞에 820년이 된 도봉의 10대 명소 중 하나인 커다란 은행나무. 그 둘레를 한번 돌면서

역사를 생각하며 다시 길을 이어가면 좋겠다.

연산군재실이 나오고 뒤로 돌아오르며 작은 동산으로 들어간다.


사천목씨의 재실이 보인다. 둘레길 이정표에 그걸 적으면 좋겠다고 제안을 했다.


기둥형이정표에 방학동길구간이 아니라 왕실묘역길구간이라고 적어야 한다.


둘레길은 사실 근처의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 보며 둘러보는 것이 진정한 의미이니

여러번 방문하면서 그 맛을 느껴봐야 하겠다.


정의공주묘




신도비가 모서리에 가려져있다.


부마 죽산안씨와 정의공주

양효공 안맹담은 14세때 세종대왕 둘째딸 정의공주와 혼인을 하는데 초서를 잘 썼으며 음악과

의학에도 통달하였다 한다. 한강 가운데 있는 저자도와 낙천정을 세종대왕으로부터 하사받았다.

왼쪽이 정의공주의 묘다.


차도를 건너서 연산군묘로 찾아가는데 차들이 이렇게 몰지각하게 주차되어 있다.



이 고깃집이 구미가 당긴다.


연산군묘역은 건너 띄었다.


820년된 은행나무


도봉서원과 천축사를 가봐야 하겠다.

도봉서원은 국립청소년수련원을 짓고 있는 도봉탐방지원센터 쪽, 도봉암문이 있던 근처고

천축사는 모르겠다. 찾아봐야 하겠다.


은행나무 둘레길 돌고


원당샘은 물을 어떻게 먹으라고?




능참봉이라는 말을 종종 들어 봤는데 종9품 최말단직이다.


양로재


담장밖으로 나온 복숭아를 하나땄다. 못 먹는 거


연산군묘 뒷편의 동산도 역시 왕실묘역길인데 잠시후 오류가 발견된다.

기둥형이정표에 소나무숲길이라고 되어 있다.

소나무숲길이라니? 소나무숲길은 우이우이령입구(이렇게 부르는 것은 서울 우이동과

양주시 교현리를 우이령길이 이어주니 양쪽에 다 우이령입구가 있어서 반대쪽은 교현우이령

입구라 부른다)에서 부터

덕성여대앞 솔밭근린공원까지인데 영 아닌 이 곳에 엉뚱하게 서있다.


계속되는 기둥형이정표에도 오류




쉼터라고 표시된 곳을 가보니 전망대가 있다. 여기에서 보면 오봉과 영봉 등이 보일 것 같다.


이건 새똥도 아니고......뭐지? 비와도 씻겨나가지 않고


위에서 이야기한대로 우이우이령입구가 종점인데 벌써 종점을 알리나?

아래의 지도를 보자. 아래쪽 미니스톱앞이 구간경계점인데 잘못되었다.

사실 저것도 맞는 건 아니다. 거기에는 한점에서 삼방향으로 줄을 뽑아서

왕실묘역길/소나무숲길/우이령길 이렇게 3구간을 동시에 적어줘야 한다.


내려와서 뒤돌아보니 여기서부터는 왕실묘역길이라고 되어 있다.

여기는 왕실묘역길 이라고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