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참하려던 나길도 회원들이 사정상 취소를 하는 바람에
혼자서 나서게 되었고 약 한시간 정도 늦게 출발을 했다.
9시 50분에 원효봉 오르는 마을입구에서 시작하여
오후4시 40분경 의상봉으로 내려 왔으니
점심 시간 20분, 백운대 다녀 오는데 35분 포함하여 7시간이 걸렸다.
백운대 다녀 오느라 체력이 조금은 떨어졌던 것 같다.
살갗이 벗겨지고 무릎에 무리가 많이 와서 하산하는 길은
고통이었다.
오르락 내리락도 심하고 쇠말뚝이나 굵은 동아줄을 잡고
오르내려야 하는 구간들도 많아서,
초보자나 근력이 강하지 않거나 무릎이 강하지 않거나
고소공포증이 있는 분들은 절대로 가면 안되겠다.
오르막은 원효봉까지 오르는데 23명을 제낄 정도로 빨랐으나
내리막길은 무릎에 가해지는 통증이 심해서 천천히 걸어야 했다.
중급정도의 걸음이면 5~6시간이 걸린다고 어느 회원분이 말씀해 주셨는데
성곽근처의 흙길을 주로 밟기 보다는 성곽을 최대한 가까이해서 걷고
목책이 있는 곳만 우회를 하다 보면, 중급의 걸음걸이라 하더라도
7시간은 잡아야 할 것 같다.
다만, 원효봉에서 시작해서 의상봉으로 내려 오지 않고
가사당암문에서 국녕사쪽 북한동으로 내려오면 한시간이 절약되므로
6시간이 될 수도 있겠다.
오르막은 중간이상의 속도로 걷고 내리막은 느리게 걸었기 때문에
평균해서 보건대 2주에 한번 정도씩 산을 가는 사람이라면
나와 비슷하게 걷게 되지 않을까 싶다.
문화재청에 문의를 해봐야 하겠지만,
북한산성 일주를 한다고 할 때에 정확한 경로를 어떻게 잡는지 모르겠다.
아는 분이 걸었던 길과 누리꾼들이 올린 글을 봐도
원효봉에서 북문을 지나 위문으로 해서대남문을 거쳐 의상능선으로 가서 하산하게 되면
중성문과 대서문을 놓치게 되는데 그렇게 문을 다 다니지는 않아도
북한산성의 능선들을 일주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다.
반대로 의상봉을 올라서 원효봉으로 내려오는 것도 마찬가지고.
작년에 의상봉 다녀 오면서 이상하다 싶었던 것이 의상봉 정상을 지나면
성곽이 감아 돌아 우측 낭떠러지 쪽으로 돌아 내려가는데도 성곽을 따라가지 않고
그냥 성곽을 타넘어서 의상봉아래로 바로 하산을 하도록 길안내가 표시되어 있었다.
이번에도 의상봉으로 하산을 하고 나니 바로 산성관리사무소로 이어져
대서문과 중성문을 보지 못했다.
몸은 정상이 아니어도 약도 좀 오르고
주제를 걸고 하는 걸음은 할 바엔 제대로 역사탐방을 겸한 길공부를 해야지
근처를 대충 걸은 것으로 만족을 한다면 그냥 평지만 걷지 뭐 하려고
높은 곳까지 오르는 수고를 하겠나?
평소엔 대충대충하다가 꼭 이렇게 분위기전환 삼아 걷는 걸음에
목숨거는 흉내를 내니 달가워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조상의 숨결을 느껴 보는 걸음에 좀 진지하게 임했으면 하는 변명으로 대신하고.
5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에 다시 도로를 거슬러 올라서 대서문을 찾았고
다시 더 오르막길을 올라 중성문을 찾았다.
거기서 성곽길이 산 위로 뻗은 것을 보고 끝을 찾아 보겠노라고 다시 산속을 헤매며
오르니까 능선이 나오는데의상능선과는 또 다른 줄기가 뻗어 내려
아래로 이어진 것이었다.
의상능선으로 이어지지도 않고 도로 내려 갈 수도 없이 미끄러웠던지라
해지기 전에 빨리 다시 의상능선으로 가서 용혈봉과 용출봉을 넘고
가사당암문으로 가서 거기에서 의상봉으로 가지 않고 바로 중성문으로 내려오는 길을
찾아야 하는 형국이 되었다.
발과 무릎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지만, 다른 도리가 없으니
의상봉의 무지막지한 하산길은 피하고 용출봉 용혈봉은 선택의 여지 없이
다시 오르내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원효봉에서 의상봉으로 북한산을 빙 둘러 일주를 하고 나면
북한산성관리사무소로 내려가는데 그 쪽은 성이 틔여 있다.
미완성인 셈이다.
그리고 안쪽에 쑥 들어가서 위치한 중성문은 왕이 있는 곳을 보호하기 위하여
별도로 내성이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중성문의 양쪽 끝까지 다 걸어봐야
비로소 북한산성 일주를 했다고 할 수가 있다.
그게 아니라
내성은 확실히 별도로 중성문 좌우측에서 연장되어 어딘가로 이어져 있고
현재의 북한산성 분소쪽을 내려가는 곳 도로의 마지막에 있는 대서문은
의상봉과 이어져 있으며
대서문옆에 서암사 복원공사가 계획 중인데 그 서암사의 승려들이
계곡쪽을 맡아서 지켰다면 성곽작업을 했을 것 같기도 한데
기록에 언급이 없었으니 별다른 설명이 없는 것일 터.
문화재청에 문의를 해서 다시 탐방을 하든지, 무릎상태 좋지 않으면
일부만 가든지 아니면 이론상으로만 구성을 해봐야 하겠다.
일단, 북한산국립공원 사무소측에서 제공한 북한산성 일주 안내지도의 내용은
제대로 그려지지 않은 셈이 되고,
산성안에 군데군데 그려 놓은 탐방로 안내지도도 부정확한 것이 있긴 하나
일반적으로 걷는 일주 탐방로를 걸은 후에 다시 도로를 따라서 거슬러 올라
대서문과 중성문을 찾아서 보고 다시 내려오면 그런대로 성곽을 최대한
다 밟아본 것으로 볼 수가 있고
그래도 산성측에서 생각해서 만들어 놓았을테니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해도
제공한 지도에 근거하여 걷는다면, 조금은 수월하게 중성문과 대서문을 탐방할 수 있으나,
의상봉의 성곽을 송두리째 놓치게 되므로 아쉬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생각해보면,
원효봉으로 올라서 일주한 후에 의상봉으로 내려오는 방향을 기준으로 설명할 때,
대남문을 지나 의상능선의 용혈봉과 용출봉을넘은 후에 가사당암문거쳐
의상봉 정상으로 올라서 성곽을 타 넘어 하산을 시작하게 되는 지점까지 가서
다시 발걸음을 되돌린다면, 의상봉에서 따라 걸을 수 있는 성곽은 다 걸은 셈이 되고
가사당암문까지 가서 800미터 거리인 북한동으로 하산하여
조금만 더 거슬러 올라가면 중성문이 있고 내려오면서 대서문을 통과하면
여정이 마무리 되는 것이니
앞으로 문화재청의 그림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면,
오늘의 걸음을 바탕으로 대문과 암문을 모두 돌아보는 걸음지도는
이렇게 완성해 보고 싶다.
다음 기회에 몸상태를 봐서성 안쪽의 행궁터나 보물이 있는 태고사도 돌아보고 싶다.
혼자 가게 되었으니 좀 느지막하게 출발한다.
예상보다 훨씬 많이 빈 버스의 자리. 홍제여게서 704번을 탔다.
탑승후 35분 경과시점에 목적지에 도착
구판장옆 마을진입로를 잘 찾지 못하였다.
마을인지 농원인지 구별이 잘 안되었기에 그러했다.
들어가서도 산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하여 조금 헤맸다.
구판장옆 골목으로 들어서서 계속해서 큰 길로 가면 안되고
중간쯤에서 왼족으로 골목을 따라 오르면 된다.
농원중간을 가로지르는 북한산둘레길이 나온다.
작년에 둘레길 걷다가 원효봉 이정표가 보여서 다녀 오니 3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던 바로 글 출발점이 이 곳이다.
백당나무인지 수국백당인지 나무수국인지 불두화인지......
농원에서 12분 걸으니 시구문(서암문)에 도달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졌다.
작년엔 이 곳이 원효봉인 줄 알고 내려가려다가 좀 더 가보니 원효봉이 나타났었다.
이 위는 협소하여 상당히 위험하고 몸이 떨리는 곳이다.
성곽가까이로 붙어서 걸어본다.
원효봉에 도착. 해발 505미터.
원효봉에서 바라보는 백운대방향.
최고봉인 백운대는 태조 이성계가 조선창업 이전에 이 곳에 올라
"흰구름 가운데 있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졌고,
만경대는 무학대사가 조선도읍을 정할 때 이 곳에 올라서 정하였다 하여
국망봉이라고도 한다.
백운대는 836미터, 만경대는 799미터, 인수봉은 810미터라고 쓰여 있는데
만경대가 제2봉인 걸로 알고 있는데 좀 이상하다. 나중에 확인을 해봐야 할 것.
북문에 도착하였는데 산성에 대한 설명문만 보인다.
바깥에 설명판이 있나? 살펴보았었는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이 곳에서 염초봉을 거쳐 백운대로 오르는 길은 위험하여
공단직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이 곳 뿐만이 아니라 곳곳에 위험한 구간은 막아서서
등산객의 안전을 지켜주고 있었다.
이 지점에서 상운사쪽으로 하산을 하여 백운대 오르는
이정표까지 한참을 내려가야 했다.
상운사뒤쪽으로 가면 되나 했더니 이 곳에는 탐방로가 없으니 더 하산해야 했다.
다람쥐
대동사약수터. 이 곳에서 물이 떨어질 리는 없으니
물통에 물을 보충할 정도는 아니어서 그냥 참고사진만.
햇볕에 그을린 건강한 다리를 자랑하는 청소년이 나를 앞지른다.
대단한 근력이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정구(테니스)선수라고 했다.
고 1쯤 되었을래나?
위문이다. 이 곳에서 그냥 산성을 돌 게 아니라
백운대를 다녀오는 것이 좋다. 힘은 들겠지만.
11시 38분에 위문을 출발하여 백운대로 향했다.
쇠말뚝을 잡고서 오르내리는 곳이 좁아서 내려오는 사람들과
오르는 사람들이 교대로 통과해야 하는 구간이 몇 군데 있다.
시간이 지체된다.
드디어 정상부.
정상에, 삼일운동 기록문이 새겨져 있다.
독립운동가인 정재용선생이 새긴 것이다.
1886년 해주에서 출생하셨고 1976년에 별세하셨다.
탑동공원에서 삼일독립선언 만세를 호창(?)했다고 한다.
백운대에서 본 만경대
목책안의 온도계에만 신경을 쓰고 정작 암각문을 놓쳤다.
아래 사진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목책안 좌착에 기록문이 보이는 것 같다.
멀리서 보던 인수봉이 코앞이다.
낭떠러지 암반 너머 만경대
12시 12분경에 위문으로 돌아 왔으니, 35분정도 외도를 했다.
점심자리
점심먹고 일어나면서 백운대를 오르는 사람들을 촬영했다.
원효봉이 저 아래로 귀엽게 보인다.
우이동 도선사에 가면 용암문으로 오르는 이정표가 있었던 기억이 난다.
동암문인 보국문과 달리 성내부는 홍예(무지개)형이라는데 잘 모르겠다.
유심히 살펴보지 않았다.
문들이 연경된 것 처럼 보이는데
가사당암문에서 대서문까지는 저렇게 이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성곽복원의 흔적으로 돌의 색깔이 다르다.
대피소가 보였다. 용암문에서 5분거리.
곡장안으로 들어섰다.
여기에서는 백운대가 보이지 않는다.
아마 좌측의 것은 노적봉이고 중앙이 만경대 우측이 인수봉인 듯 하다.
목책을 둘러 놓은 곳에 들어가서 막걸리 마시고 잔다.
참으로 한심한 족속들이다.
대동문은 주변이 넓어서 많은 사람들이 쉬는 곳이다.
대동문의 여장도 대서문같이 하나의 대리석에
구멍이 하나씩 나 있는 것 처럼 보인다.
대서문의 설명에만 그렇게 되어 있었던 거 같은데
대동문도 그러하네. 확인요망.
대동문은 늦은 점심이나 막걸리잔치가 벌어지는 곳인 듯 하다.
칼바위능선으로 나가는 길이 담장위로 나있다.
시간도 지체되었고 힘도 빠지고 위험하기도해서 칼바위능선을 구경만.
보국문에서 5분 걸어와서 전망대에 서니 팔당대교부터 남산탑까지 조망이 되는데
흐려서 잘 보이지 않는다.
늘 궁금했던 보현봉이 손에 잡힐 듯 하다.
대성문은 형제봉능선을 타고 평창동과 정릉동으로 이어지는 통로다.
7분을 더 걸으니 대남문이 나왔다.
구기동에서 올라 고개를 하나 넘고 나면 저 멀리 높은 산에 우뚝 선
대남문을 볼 수가 있었는데.....
그 곳이 바로 이 곳이다.
보현봉의 서쪽편을 여기에서본다.
대남문에서 성곽을 따라 보현봉으로 가는 길이 보인다.
대남문에서 6분후 청수동암문에 도착
백운동암문은 어디있지?
측량점에서 인증
북한산성은 이런 위험한 구간이 많다.
오르내림도 심하고
12시 12분에 위문으로 내려 왔을 때가 백운대 바로 아래였는데
두시간이 흐른 이 곳에서 보니 아득하다.
이렇게 최대한 성곽가까이(이 곳은 성곽위)를 걷는다.
그게 바로 역사탐방이라고 생각을 한다.
내가 아는 후배는 이런 역사탐방을 미친 일이라고 생각한다.
고통을 느끼면서도 보람을 느끼는 맛을 모르고 산에 갈 때는
즐거우야 한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다.
나름대로 일리는 있지만 나는 아니다.
역사를 알고 조상을 느끼고 나를 찾는 것은 즐거운 일만은 아니다.
그건 고통후에 즐거움이 온다는 고진감래를 깨닫는 하나의 일이기도 하다.
반백의 나이에도 끊임없이 배우고 느끼고 나를 내려 놓고 남을 아우르는 법을 배울 일이다.
죽을 때까지 철이 들지 않을 수도 있는데 순수하다고 보기 보다는
정신을 못 차렸다는 말이, 최소한 나에게 있어서는 더 다가온다.
청수동암문에서 40분후 부왕동암문에 도달.
이 곳은 설명문이 없었다.
2시간 반 후에 다시 이 곳에 온다.
하산하였는데 대서문과 중성문을 못 봐서 찾는다고
도로를 거슬러 올라 두 문은 찾았으나 연결성곽이 어떻게 이어졌는지
공금하여 걷다 보니 물도 다 떨어졌는데 난감하게도 다시 꼭대기로 올랐기 때문이다.
풀잎을 입에 물고 있는 낭만파 바위아저씨
까마귀의 비상
사모바위와 비봉이 보인다.
이 곳도 2시간 반 후에 다시 온다.
웬 거대한 황금불상이 보였다.
이 곳으로 내려 갔으면 중성문과 대서문이 가까웠는데......
국녕사다.
부왕동암문에서 37분후 가사당암문에 도착
2시간반후 다시 용혈봉과 용출봉의 2봉우리를 넘고서 의상봉으로 가지 않고
여기에서 국녕사쪽으로 하산을 한 곳이다.
그렇지만 처음 길은 의상봉으로 해서 내려 갔다.
무진장 험한 하산길이다. 무릎에 통증이 심하게 전해졌던 구간.
증취봉은 우회를 하게 했었는지 보지 못했다.
삼각산을 남쪽에서 조망
원효봉이 수더분하게 생겼다.
의상봉에서 바라보니 의상대사와 원효대사의 경쟁의식이 느껴진다.
그랬을까?
의상봉의 성곽. 정상에서 13분을 내려 온 지점이다.
오른쪽으로 성곽이 이어지는데 그걸 따라서 내려가고 싶으나
위험하니 안될 일이고, 길도 없다.
어쨌든 이 곳에서 산성은 더 이상 따라가지 못하니 아쉽다.
모자를 보듬고 있는 야수남편
하산완료.
9시 50분에 출발하여 약 7시간을 걸었다.
백운대 다녀오지 않았다면 1시간은 절약해서 6시간 정도가 걸렷겠다.
의상봉아래에서 대서문으로 흐르는 등산로가 폐쇄되었는데
아무래도 저 곳이 성곽이 이어지는 그림인 것 같다.
가사당암문에서 국녕사쪽으로 내려가면 대서문과 중성문이 가깝다.
도로따리 십분을 거슬러 올라가서 대서문에 도달
이 곳도 대동문처럼 대리석 한 장에 여장 하나의 모습으로
일반적인 성벽의 그 것과는 다르다.
대남문은 어떠했었지?
대서문과 서암문에 성곽그림이 보이는데 위쪽으로 거슬러 올라가
중성문 좌우측에도 성곽그림이 있어야 한다.
내성이 별도로 존재했었는데 그 표시가 없다.
대서문에서 약 30분후 중성문에 도착.
드디어 북한산성의 모든 문을 다 섭렵했다.
좌측아래에는 물이 통과하는 작은 문이 있고
계곡너머에도 성곽이 이어져 있는데
원효봉으로 이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계곡 반대편은 이런 모습이다.
중성문위로 올라 산으로 이어진 이 곳을 잠깐 둘어 본다는 것이
어쩌다가 다시 정상으로 올라서 용혈봉과 용출봉을 다시 넘게 된다.
미끄러운 흙길이라 다시 내려가는 것이 더 어려운 길이엇다.
다시 오른 길은 바로 이 의상능선으로 이어지지 않고 의상능선에서 산성안쪽 계곡방향으로
뻗어내린 산맥이어서 의상능선으로 돌아오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힘은 빠지고 무릎통증은 심해 지는데 저 봉우리를 다시 2개나 넘어야 하다니......
용출봉을 지나면 의상봉으로 이어지는데
이번에는 의상봉이 아니라 북한동쪽으로 하산하여
대서문과 중성문 가까이로 간다.
이 가사당암문에서 북한동으로 하산하다가
국녕사에서 갈증을 달랜다.
등산객을 위하여 제공하는 물주전자가 여러개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국녕사.
하산을 하니 법용사로 빠져 나왔다.
산성입구에서 오르면 이런 이정표를 만나게 된다.
내가 걸었던 방향과 거꾸로인데 이렇게 올라서
원효봉으로 걸어도 일주를 하게 된다.
의상봉을 생략하게 되는 아쉬움을 있으나......
이번에는 중성문으로 가서 살펴보고 되돌아 하산하여
대서문쪽으로 간다. 그러면 일주완성.
가사당암문에서 30분이 걸렸다.
북한동역사과이 만들어진다.
계곡탐방로 하산길을 택하면 대서문을 못 본다.
중성문에서 23분후 대서문에 안착.
국립공원관리공단 북한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 산성분소이겠다.
두루미인가 백로인가? 버스정류장에서 무심히......
그러나 저는 먹이 찾느라 눈이 빨갛겠지?
힘은 들어도 보람찬 북한산성일주였다.
무릎이 회복하는대로 남한산성을 다시 돌아보고 싶다.
'북한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6.20.(수) 북한산 보현봉에 오르다. (0) | 2012.06.21 |
---|---|
6.15.(금) 북한산 형제봉~대성문~대남문 (1) | 2012.06.15 |
북한산,삼각산,백운대,백운봉 등-주소 복사 (2) | 2011.12.21 |
북한지-브리테니커 사전 (0) | 2011.12.21 |
북한지-북한산성의 축조, 퍼온 글 (0) | 2011.1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