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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모습

헝클어진 실타래를 실감하다.

이사를 하고 나서 짐정리를 하던 중, 대학시절 학교 고시원에서 머무를 때

덮고 자던 담요가 나왔다. 불에 탄 흔적......

추운 겨울날 실내에 난로를 피웠음에도나도 도르게난로 쪽으로 웅크리다 보니

결국 덮고 있던 담요가 불에 타고 말았다. 바닥에는 자부동(일본말인데 우리말로 방석,

당시 이렇게 재미삼아 불렀었지)을 깔아 담요대용으로 하고 정작 담요는 이불역할을 했었다.

테두리를 감싸고 있는 천이 낡아서 헤졌으나, 기우면 다시 덮을 만한 상태라

실을 사서 꿰매면 반가운 친구같은 담요와 몇날 몇달이 될지는 모르지만

추운 겨울날 꼭 껴안고 잘 수가 있을 것 같았다.

며칠 전 폐가에서 연실을 주워서 가지고 왔으나 담요를 깁기엔 좀 지저분할 것 같아서

새로 실을 사야 했다.

역시 옛 기억을 되살려주는 실타래였다. 어머니 할머니 때론 누나가 실을 실패에 감을 때

양손에 실타래를 걸고서 이리저리 움직여가며 실일 잘 풀리도록 함께 했던 기억이

있는 추억의 물건이었다. 할머니는 가셨고 어머니도 벌써 팔십을 향하여 가시는 중간걸음이시고

누나도 아이들이 모두 대학나오고 다니고 하는 중년 중의 중년 아줌마가 되었으며

조만간 큰 생질녀 시집가면 할머니가 될 나이가 되었네.......

아무래도 혼자는 무리였다. 양 무릎을 세워서 실타래를 끼우고

두가닥의 실마리를 찾았으니 시작과 끝은 확인을 한 셈인데

어째 풀면 풀수록 엉켜 들었다.

풀다가 풀다가 어찌나 열받던지 아예 가위로 실타래 한복판을 싹둑 잘라서

토막을 내어 버릴까 하다가

최대한 실마리를, 엉킨 실타래 사이로 요리저리 집어 넣어가며 풀어보려 애썼다.

노안이 와서 잘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이불은, 그래도 엉키기 전에 감아 놓은 길이로

전체를 다꿰매 놓은 터라 한 곳에만 정신을 집중할 수 있는상태는 되었으니 다행이었다.

비가 온다 하여 낮에는 밖에 짐부려 놓은 곳에 비닐천막을 청접착띠(청테이프)로

더 촘촘히 붙여 양철처마에 고정시키고, 아랫단에는고추지지대를 끼워 넣고

못쓰는 통신선을 집어넣어 역시 청접착띠로 고정을 시켜서 만반의 준비를

다 해 놓았으니 푸근한 마음으로 도전할 수가 있었다.

새벽 5시까지 하고 나니 더 이상은 무리였다.

잠 좀 자고 나서 9시에 일어나 아침밥 먹고 다시 작업을 해서 완전히 끝맺음을 하였다.

실마리를 하나로 찾아 푸는 건 포기했었고, 최대한 엉키기 전까지 찾아서 풀어 놓고

찾아서 늘어 놓은 실도 길이가 길면 다른 코로 당겨 낼 때에 엉켜서 잘라야 하는 일도

속출을 한다. 가위로 잘라서 실패에 감고, 짧아진 실마리를 실의 험로 사이사이로

빼내 가며 오랜 작업을 했다. 아주 백수의 전형이구만.

그래도 새벽 5시까지 이 만큼 작업을 해놓았으니 거의 9할은 온 셈이었다.


최대한 풀어서 길다 싶으면 실패에 감고 가위로 자른 후 다시 짧아진 실마리를

이리저리 집어 넣고 빼고 하면서 간다.

드디어 성공!!!

열 받아서 전 같으면 바로 잘라 버리거나 까짓 거 1500원 다시 사면 되는데

이번엔 백수이기도 하고 뭔가 무료한 야밤에 일거리를 찾아야 했었고

다음 날도 비 온다는 예보가 있었으니 안성마춤의 도전거리였다.

휴우~ 으이쌰(파이팅 대신에 만든 우리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