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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누군가 독침에 살해당한다면(동아일보 주성하 기자 블로그에서)

늘 느끼지만 동아일보의 주기자는 참으로 대단한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다.

물론 정보의 출처가 확실하니까 그렇기도 하고

객관적인 눈을 유지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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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서울에서 누군가 독침에 살해된다면 (85)

by 주성하기자   2014-01-06 9:11 am

천안함을 떠올리면 늘 가슴이 아프다. 화끈하게 복수를 못해 몇 배로 아프다. 우리는 “강력한 응징”을 입버릇처럼 되뇌지만 북한의 교묘한 테러에도 이 다짐은 유효한 것일까. 동아일보DB

“북한은 ‘은하’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 뒤 약 두 달 만에 국제사회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을 강행했다. 동시에 개성공단 법규 전면 무효화와 통행 차단을 일방적으로 선포했다. 북한군 총참모부는 ‘전면적 대결 태세 진입’을 선언한 뒤 남북한 군사적 긴장을 급격히 고조시켰다.”

 

장거리 로켓 발사-핵실험-전면적 대결태세 진입-개성공단 무효화-정전협정 무효….

 

올 상반기 남북 간에 벌어진 일들을 새삼 나열한 이유는. 놀라지 마시라. 이것은 2009년 상반기에 일어난 일이다. 하지만 올 초 우리가 본 것과 전율이 일만큼 똑같다.

 

지금은 2009년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기억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우리는 과거를 너무 쉽게 잊는다.그렇다면 그해 하반기는 어떠했을까.

 

“남북은 6월~7월 개성공단 실무회담을 3차례 개최했다. 이어 8월 북한은 개성공단 관련 모든 제한을 풀었다. 북한은 추석 이산가족 상봉과 개성공단 활성화, 금강산 관광 재개 카드를 내밀었다.”

 

이것 역시 올해 하반기 초에 일어난 일들과 너무나 똑같다. 하지만 올해의 북한 행태에서 4년 전의 데자뷰를 느낀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하반기 초의 일시적 평화공세에 이어 2009년 10월부터 남북관계는 다시 악화됐고 11월에는 ‘대청해전’이 벌어졌다. 올해도 북한은 10월부터 “최고 존엄을 무시한 자들을 끝까지 처단하겠다”고 연일 협박해왔고 얼마 전 청와대에 “예고 없는 타격”을 통보했다.

 

2009년을 새삼 떠올린 이유는 바로 우리 모두가 생생하게 기억하는 2010년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2010년 3월 북한은 ‘천안함’에 어뢰를 쏘았고, 11월엔 연평도에 포탄을 퍼부어댔다. 이명박 정부의 급조한 대북정책 ‘비핵개방 3000’과 ‘그랜드바겐’ 정책도 그렇게 어뢰와 포탄에 침몰했다.

 

4년 뒤 남한은 청와대도, 정부도 모두 바뀌었다. 북한도 김정일 체제에서 김정은 체제로 외형이 바뀌었다. 그러나 사실 북한은 바뀐 것은 거의 없다.

 

2008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김정일은 김정은에게 군부부터 맡겼다. 지금 와서 되돌아보건대 2009년 상반기 북한의 강경정책 역시 군 통수권을 쥔 김정은의 초기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최근 “북한이 내년 1월 하순에서 3월 초순 사이에 대남 도발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우리는 또다시 4년 전의 분노를 되풀이해야 하는 것일까.

 

2006년작 할리우드 영화 ‘데자뷰’에선 주인공 덴젤 위싱턴이 과거로 돌아가 한 시점을 바꾸어 결말을 변화시키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우리도 과거로 돌아가 2009년 MB 정권의 대북정책이 어디서부터 틀어졌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해 8월 화해 무드를 타고 김대중 전 대통령 장례식 참석차 서울에 온 김기남 노동당 비서와 김양건 통전부장은 청와대를 방문했다. 그런데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이명박 대통령에게서 “당신들 그렇게 놀면 ‘국물’도 없어”라는 투의 ‘훈시’를 들었다고 한다. 이어 북한이 인도적 대북지원을 요청했을 때 우리의 대답은 옥수수 1만 톤이었다.

 

그때 나는 “큰일 터지겠다”는 예감으로 가슴이 서늘해졌다. 매년 쌀 40만톤+@를 얻어가던 북한에게 옥수수 1만 톤은 조롱과 모욕이다. 차라리 주지 말았어야 했다.

 

당시 청와대가 그렇게 나온 근저에는 오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상반기 강공정책을 펼치던 북한이 하반기 급격한 화해무드로 전환하자 MB 정부의 대북정책 관계자들은 ‘원칙적 대북정책의 승리’라며 기고만장했다.

 

‘원칙적 대북정책의 승리’. 오. 놀랍게도 이 말조차 올해 우리는 너무나 많이 들었다.

 

북한이 개성공단 재가동 회담에 나오고 이산가족 상봉까지 동의하자 보수층에선 “박근혜 정부의 원칙적 대북정책이 승리했다”고 환호했다. 그러나 냉철히 말하면 바로 이것이 오만과 자만이다.

 

북한이 개성공단 통행을 막아 먹을 것이 떨어진 상황에선 어느 정부였더라도 근로자들을 철수시켰을 것이다.

 

올해 상반기 강경모드와 하반기 화해모드는 북한이 저 홀로 북 치고 장구 친 것이다. 우리는 가만히 있었을 뿐이고, 지금도 통일부는 개점휴업 상태다.

 

물론 북한군이 다시 도발해오면 우리 군이 강력한 응징을 할 것이라는 점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천안함 공격 때는 ‘군 미필 정부’라는 야유까지 받았지만 지금은 ‘대장 정부’이니 말이다.

 

하지만 과거를 돌아보면 북한의 특기는 전면 도발이 아니었다. 북한군은 자신들의 뿌리를 치고 빠지는 숨는 것이 특기인 비정규군 성격의 빨치산에 두고 있다. 천안함 공격이 대표적 사례이고, 1983년 아웅산 테러, 1968년 청와대 습격 사건 등 유사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그런데도 우리 군이 북한군의 도발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성폭행 및 폭행 전과자를 상대로 “폭행에 대해선 용서하지 않겠다”고 경고하는 격이다. 성폭행을 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대답은 없고 그냥 본인만 알아서 조심하라는 격이다.

 

만약 전면 공격이 아닌 공격자 불명의 테러가 벌어지면 우리 정부는 어떤 단호한 응징을 할 수 있을까. 정말 너무 궁금하다. 이에 대해선 모두 입을 다물고 모르는 체 한다.

 

가령 서울에서 누군가 독침에 살해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누구는 복수를 외칠 것이고, 또 누구는 “북한의 소행이란 증거가 있느냐”고 따질 것이다. 자칭 독극물 전문가도 나타나 “그 독은 북한제 독이 아니다”고 떠들 것이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보복대신 논쟁으로 혼란에 빠져 들 것이다.

 

우리 사회의 혼란을 노린 북한의 테러 앞에선 항시 협박을 당하는 탈북자보단 오히려 친북 인물들이 더 위험할 수도 있다. 탈북자가 살해되면 북한 소행이란 심증이라도 있지만 북한을 두둔하던 사람이 살해되면 “북한이 했을 리 만무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심지어 ‘정부의 자작극’이란 괴담마저 돌 수 있기 때문이다.

 

옥수수로 무시당해 이를 간 북한은 2009년 11월 황장엽 암살단을 파견했고, 천안함 공격 특공조도 그즈음 만들어져 맹훈련에 들어갔다는 정보도 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 여름부터 준비한 것이었다.

 

김관진 장관의 내년 1월~3월 공격설이 나름의 정보에 기초한 것이라면 지금쯤 북한 어디선가 대남 공격조가 맹훈련을 하고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제부터 시작이어야 한다. 4년 전의 대북정책은 “절대 기고만장하지 말라”는 교훈을 남겼다. 새해엔 2010년의 데자뷰를 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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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초고를 줄이고 순화시켜 12월 31일자에 게재된 것이 아래 칼럼입니다.

 

참고로 동아일보도 그렇지만 어느 신문이나 기사나 칼럼 한번 게재되려면 보통 4단계의 데스킹 관문을 거치며 논리상 오류나 문제가 되는 구절들을 수정합니다.

 

지적당한 부분을 드러내거나 새로 삽입하고, 또는 수정합니다. 자기 손으로 할 때도 있고 데스크가 직접 할 때도 있습니다.

 

제 경험상 칼질을 많이 당했을 때 열 번에 두 번 쯤은 초고보다 못해진 것 같아 불만이 생기지만 여덜번쯤은 내가 쓴 초고보다 더 나아짐이 느껴집니다. 그러니 데스킹 과정은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언론인이 자기가 쓴 초고 거의 그대로 내려면 한 30년 정도의 경력은 있어야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만큼 책임도 무겁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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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마지막 날이다. 본보를 포함한 많은 언론들이 올해 10대 뉴스 첫머리를 장성택 처형으로 선정했다.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던 남북관계였다. 올 한 해 남북관계는 온탕과 냉탕을 오갔다. 잠시 4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은하’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 북한은 약 두 달 만에 핵실험을 강행했고 이어 개성공단 법규 전면 무효화와 통행차단을 선언했다. 북한군은 ‘전면적 대결 태세 진입’을 선언한 뒤 남북한 군사적 긴장을 급속히 고조시켰다.

 

위의 사건들은 2009년 상반기에 일어난 것들이다. 그런데 올 초 우리가 겪은 사건과 전율이 일어날 만큼 똑같다. 2009년 하반기는 어떠했을까. ‘남북은 6∼7월 개성공단 실무회담을 3차례 개최했다. 이어 8월 북한은 개성공단 관련 모든 제한을 풀었다. 북한은 추석 이산가족 상봉과 개성공단 활성화, 금강산 관광 재개 카드를 내밀었다.’

 

역시 올 하반기 상황과 똑같다. 하지만 올해 북한이 보여준 행태에서 4년 전 데자뷔(기시감)를 느낀 사람은 몇이나 될까. 우리는 과거를 너무 쉽게 잊는다.

 

2009년의 경우 하반기 초 일시적 평화공세에 이어 그해 10월부터 남북관계는 다시 악화됐고 11월에는 ‘대청해전’이 벌어졌다. 올해도 마찬가지로 북한은 10월부터 “최고 존엄을 무시한 자들을 끝까지 처단하겠다”고 연일 협박해왔고 얼마 전 청와대에 “예고 없는 타격”을 통보했다.

 

2009년이 2013년과 똑같다면 새해 2014년에 2010년에 벌어졌던 일들이 반복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2010년 한국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이란 두 사건으로 요약할 수 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도 최근 “북한이 내년 1월 하순에서 3월 초순 사이에 대남 도발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4년이 흐른 지금 한국은 이명박 정부가 박근혜 정부로 교체됐다. 북한도 김정일 체제에서 김정은 체제로 바뀌었다. 실은 북한은 바뀐 게 거의 없다. 2008년 8월 뇌중풍으로 쓰러진 김정일은 김정은에게 군부부터 맡겼다. 2009년 상반기에 보여주었던 북한의 강경정책은 군 통수권을 쥔 김정은의 초기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

 

어떻든 북한의 대남 정책이 지금이나 4년 전이나 별 다름없이 되풀이된 반면 우리는 어땠을까. 2006년작 할리우드 영화 ‘데자뷰’에선 주인공 덴절 워싱턴이 과거로 돌아가 한 시점을 바꾸어 결말을 변화시키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우리도 과거로 돌아가 2009년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을 되짚어보자. 그해 8월 화해 무드를 타고 김대중 전 대통령 장례식 참석차 서울에 온 김기남 노동당 비서와 김양건 통전부장은 청와대를 방문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이명박 대통령에게서 “당신들 그렇게 놀면 ‘국물’도 없어”라는 투의 ‘훈시’를 들었다. 이어 그들이 인도적 대북지원을 요청했을 때 우리의 응답은 옥수수 1만 t에 불과했다.

 

당시 필자는 이 소식을 듣고 “큰일이 터지겠다”는 예감에 가슴이 서늘해졌던 기억이 있다. 매년 쌀 40만 t에 플러스알파를 얻어가던 북한 입장에서 옥수수 1만 t은 조롱과 모욕으로까지 받아들여지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당시 청와대가 그렇게 나온 밑바닥에는 오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북한이 하반기 급격한 화해무드로 전환하자 이명박 정부는 “원칙적 대북정책의 승리”라고 환호했다.

 

‘원칙적 대북정책의 승리’라고? 그러고 보니 이 말도 올해 너무나 많이 들었던 말 아닌가. 북한이 개성공단 재가동 회담에 나오고 이산가족 상봉까지 동의하자 보수층에선 “박근혜 정부의 원칙적 대북정책이 승리했다”고 환호했다.

 

냉철하게 보면 올해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로 요약된다. 4년 전처럼 말이다. 북한이 통행을 차단하고 식품 반입도 막으며 무조건 항복하라 요구하는 상황에선 어느 정부라도 굶어죽을 위기의 우리 근로자들을 철수시켰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도 우리는 가만히 있을 뿐이고, 통일부는 개점휴업 상태다. 북한만 4년 전에도, 올해도 저 홀로 북 치고 장구를 쳤을 뿐이다.

 

북한의 행태도, 우리의 자신감도 4년 전과 판박이이니 내년이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군은 북한이 도발해오면 강력한 응징을 하겠다고 지속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과거를 돌아보면 북한의 특기는 전면 도발이 아니었다. 북한군의 뿌리는 몰래 치고 빠지고 숨는 것이 특기인 빨치산식 비정규전이다.

 

옥수수로 무시당해 이를 간 북한은 2009년 11월 황장엽 암살단을 파견했고, 천안함 공격 특공조도 그즈음 만들어 맹훈련시켰다는 정보도 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 여름부터 준비한 것이었다.

 

김관진 장관의 내년 1∼3월 공격설이 그 나름의 정보에 기초한 것이라면 지금쯤 북한 어디선가 대남 공격조가 맹훈련을 하고 있을 것이다.

 

4년 전 우리는 자만하다가 너무나 뼈저린 교훈을 얻었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도 이제부터 시작이어야 한다. 새해엔 2010년의 데자뷔를 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