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벌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스스로를 학대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때가 있다.
밤을 새워서 일을 하고 난 후에 느끼는 뿌듯함,
지칠 정도로 운동을 하고 나서 느끼는 벅참,
잠이 올 때 허벅지를 꼬집어서 느끼는 시원함,
모르긴 해도 자기자신에게로 향하는 따끔한 피로와 통증이
오히려 쌓인 답답함을 해소시켜 주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요즘 학교에서 체벌금지하고 학생인권조례다 뭐다 해서 난리다.
좌파교육감의 때이른 반항적 교육정책은 별론으로 하고
체벌 자체를 인권유린으로 보는 시각자체가 문제다.
다분히 감정으로 매를 들어서 자기의 맺힌 응어리를 풀려고 하는
교사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런 부분은 종래에 형사적 처벌을 받아 왔다.
앞으로도 체벌이 허용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조치하면 될 일이다.
우리는, 주로 교육의 효과이겠지만 지극히 이기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
월등한 정신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남을 미리 생각하고 예의가 갖추져서
그런 문제가 거의 없기도 하지만,
요즘은 그런 공중도덕, 예의범절을 얘기하면 구태의연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이상한 관념이 형성되었다.
운동권 좌파들이 소위 인권이라는 포장으로 눈을 흐려 놓아 온 탓으로 본다.
토론을 하면, 때로는 빙빙 돌 때가 있다.
서로의 약점을 들추지 않고 얘기들을 하다보면 겉돌다 시간만 간다.
무슨 말인가 하면, 자존심과 승부욕을 서로가 존중해 주다 보면
아무런 결말도 못 맺고 만다.
반대의 경우는 중간에 전투로 끝이 나버리고 만다.
체벌은, 신체에 가해지는 충격은 상당히 단기적인 효과가 있다.
정신에 가해지는 충격이 오래 갈 것은 당연한 일이고.
단기적인 효과가 반복이 되고 교육으로 유지가 되면 장기화된다.
체벌은 그렇게 오만하고 이기적인 방어적 정신무장을 해제시켜 준다.
바람직한 방햐으로.
체벌은 쾌도난마이다.
예쁘게 포장되어 온 생일선물을 보고 싶을 때,
꽁꽁 동여 매어 있는 끈을 차근차근히 풀어갈 때도 있을 것이고
단번에 가위나 칼로 싹둑 잘라낼 때도 있을 것이다.
체벌은 가위나 칼로 싹둑자르는 것이다.
달래고 규정으로 제도하는 것은 끈을, 매듭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일이다.
둘다 필요하다.
체벌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자기방어로 똘똘 뭉쳐진 혐악한 자아를 외부충격으로 물리쳐 줄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일본 관광객들이 자기네 나라의 그 유명한 온천을 제껴 두고
우리나라 강남 신사동의 불가마를 찾는다고 한다.
가마니를 뒤집어 쓰고 들어 갔다가 몇 초도 못 버티고 비명을 지르고 나온다고 한다.
그런데 몇 번 온 사람들은 2분 정도 버틴다고 한다.
초짜들도 일본에 돌아가서 한국여행을 추억하다 보면, 불에 데일 듯한 그 충격을
곱씹어 보며, 깔깔대며 얘기하고 다시금 우리나라의 그 불가마를 찾을 것이다.
그들도 조만간 2분을 버티는 관광객이 될 것이다.
고등학교때 몽둥이 찜질을 가한 선생님이 졸업후 더 보고 싶고
정이 간다. 그렇게 나한테 가한 체벌이 정이 되어 가슴 속에
살이 되어 솟아난다.
체벌이란 하기에 따라서 말로 백번 하는 것 보다 낫다.
완벽하지 않은 교사가 하는 말을 아이들이 그대로 다 수용할 것 같은가?
차라리 매를 들어서 인품보다는 방법으로 가르치는 것에 대하여 수긍할 것 같지 않은가?
그건 완벽한체 하는 인간으로서의 교사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사회질서를 방해하지 말라는 경고음이다.
바로 매는, 체벌은 사회와 교육의 기초질서를 유지하려는 경광등이란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