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계종주

월간산 서울시계종주 3구간

바람처럼 구름처럼 2010. 12. 23. 14:54
[서울시계(市界)종주 3·4구간] 도봉산역~포대능선~우이동~영봉~위문~지축역 29㎞
북한산 시계에서 두 개의 하늘을 보았다
서울은 전체 면적 약 605㎢ 가운데 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60% 이상이다. 인간의 삶과 문화, 역사가 곧 산과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지형적 조건이다. 조선시대 겸재 정선이 그린 서울 진경산수화도 산 안에서 삶을 영위하는 인간의 모습을 조화시키고 있다.

▲ 가장 높은 곳에서 서울과 경기도 시계를 볼 수 있는 산성길을 등산객들이 가고 있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서울지역으로 뻗어나온 산줄기의 흐름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함경도 안변부 철령에서 나온 한 맥이 남쪽으로 500~600리 달리다가 양주에 와서 자잘한 산으로 되었다가, 다시 동쪽으로 비스듬하게 돌아 돌면서 갑자기 솟아나 도봉산의 만장봉이 되었다. 여기에서 동남방을 향해 가면서 조금 끊어진 듯하다가 다시 우뚝 솟아 삼각산 백운대가 되었다.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 만경대가 되었는데 한 가지는 서남쪽으로 뻗어갔고, 다른 한 가지는 남쪽으로 뻗어 백악산이 되었다. 백악산은 형세가 하늘을 꿰뚫는 목성의 형국으로 궁성의 주산이라고 한다. 동·남·북쪽은 모두 큰 강이 둘렀고, 서쪽으로 바다의 조수와 통한다. 여러 곳 물이 모두 모이는 그 사이에 백악산이 서리어 얽혀서 온 나라 산수의 정기가 모인 곳이라 일컫는다.’

서울시계종주 3·4구간은 서울의 진산 도봉산(3구간)과 북한산(4구간) 주능선으로 종주하는 코스와 비슷하다. 시계종주 전체 10구간 중에 완전히 산으로 걷는 코스는 3·4구간뿐이다. 서울시계종주의 하이라이트인 것이다.

이번에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거인산악회와 54트레킹 동호회원 10여 명이 구간 종주에 참가했다.


[3구간]
도봉산역~다락능선~포대능선~도봉산 주능선~우이암~우이동 10㎞


▲ 용출봉·의상봉 등이 펼쳐진 능선을 따라 가는 길이 서울시경계다.
2구간에서 헤어졌던 도봉산역 그 자리에서 정확히 오전 10시에 다시 모였다. 이번 참가자는 2구간 때보다 조금 줄었다. 2구간을 원체 세게 한 탓인가.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쉬지도 못하고 불암산과 수락산을 GPS 거리만으로 18.3㎞ 오르락내리락하며 종주했으니 질릴 만도 할 것이다. 그래도 참가한 역전의 등산꾼들은 일제히 도봉산으로 향했다.

도봉산은 등산객들로 평일에도 북적거렸다. 요즘은 정말 ‘등산이 국민 레저활동’임을 실감케 한다. 도봉산역 앞 3번 국도를 지나 즐비한 음식점과 상가 사이가 아닌 시계를 걷기 위해 의정부 방향으로 나아갔다. 조금 가다가 공영주차장을 왼쪽으로 끼고 돌았다. 정확한 시계는 조금 더 올라가 하천 쪽이지만 길이 없는 관계로 이곳에서 방향을 틀었다. 차 두 대가 오르내릴 수 있는 제법 넓은 길이다. 큰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다른 길로 빠지기 십상이다. 도봉산 (평화)양봉원 앞에서 오른쪽 좁은 등산로로 접어들어야 한다.

이 길을 제대로 찾으면 이제부터는 ‘알바’할 우려는 없다. 다락능선까지 등산코스는 거의 외길 수준이기 때문이다. 본격 등산로가 시작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군시설물인 화생방 방공호가 나왔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듯 잡초만 무성하다.

여기서 회원들이 일제히 옷을 갈아입었다. 그러고 보니 날씨가 꽤 풀렸다. 낮 최고 기온이 13도까지 올라간다는 일기예보도 있었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은 모처럼 따뜻한 기온에 녹아 질퍽거렸다. 신발과 바짓가랑이에 진흙이 연방 튀었다. 봄이 오기는 오는가 보다.

▲ 우이동에서 3구간 출발 직전 서울시계종주팀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다락능선이 서울과 의정부 경계

다락능선을 향해 올라가는 길에 저 멀리 도봉산 정상 자운봉이 보였다. 그 옆으로 만장봉, 선인봉이 연달아 우뚝 솟은 모습이 위엄을 더했다. 화강암의 희고 큰 바위벽이 하늘을 향해 치솟아 만장봉이 되었고, 높은 산봉에 붉은빛의 아름다운 구름이 걸리니 자운봉이라 했다고 전한다.

도봉산의 도봉이란 이름은 조선왕조를 여는 길을 닦았으니 도봉이고, 뜻있는 지사들이 학문을 연마하고 민생을 구제하고자 도(道)를 닦았다고 도봉이라 붙였다고 한다. 실제로 도봉산에 있는 천축사, 회룡사 등 사찰에는 이성계의 왕조 창업과 관련하여 무학대사의 중창 기록이 있다. 경관이 뛰어난 계곡에는 조선 중기 조광조를 모시는 도봉서원이 건립되어 국사를 논하기도 했다. 이 서원은 서울 지역에서 유일하게 남은 서원이다. 결국 도봉이란 이름은 두 가지 의미를 다 내포하는 셈이다.

첫 삼거리가 나왔다. ‘←0.8㎞ 도봉탐방지원센터, 자운봉 3.2㎞↑’라고 이정표에서 안내하고 있다. 다락능선까지는 약 2㎞ 더 가야 한다.

드디어 지능선에서 다락능선으로 접어드는 길목이다. 바로 앞에 높은 암벽길이 떡 하니 막아섰다. 우회로가 있지만 자신 있는 사람은 암벽으로 올라갔다. 안전한 산행을 위해서 왼쪽으로 우회해서 갔다. 올라가는 길 중간쯤 불과 몇 미터 옆에 은석암이 자리 잡고 있다.

우회로 끝 지점은 다락능선으로 올라서는 길이다. 다락능선이 서울 도봉구와 의정부시 호원동과의 경계다. 다락능선 위 조그만 마당바위에선 사방 조망이 가능하다. 뒤(북)쪽으로는 망월사가 산 중턱에 파묻혀 있고, 앞(서남)쪽으로는 도봉산의 3개 주봉이 바로 눈앞에 있는 듯했다. 성냥갑 같은 서울의 빌딩 모습도 발아래 펼쳐져 있다.

다락능선 끝은 포대능선으로 연결된다. 도봉산역에서 출발한 지 2시간을 훨씬 지나 포대능선 바로 밑 휴식처에 도착했다. 포대능선은 대공포대가 있었던 649봉에서 자운봉과 마주보는 신선대까지를 말한다. 지금은 포대능선 정상에 있는 포대 벙커가 그 자취를 전하고 있다. 도봉산의 포대능선은 한국전쟁 때 수락산과 방어진지를 구축해 남침하는 세력들을 막는 역할을 한 천연 방어선이었다.

포대능선의 Y계곡은 철난간을 잡고 오르내리는 위험한 코스임에도 많은 등산객이 몰려, 일방통행을 실시하고 있다. 이 계곡을 통과하면 곧바로 자운봉과 신선대 사이에 도착한다.

철난간을 잡고 포대능선을 탔다. 몇 번을 탔지만 그래도 긴장되는 건 마찬가지. 발 딛는 바위틈에는 아직도 눈이 녹지 않아 미끄러웠다. 있는 힘을 다해 올라섰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건 어찌할 수 없다. 가장 난코스를 넘어서니 신선대와 만장봉이 마주보고 있다. 이 봉우리들이 우이능선으로 이어지는 도봉주능선과 포대능선을 이어준다.

도봉주능선에서 서울과 경기도의 모습을 보면서 걸었다. 도봉산 주능선은 신선대·자운봉에서 출발해서 종착지인 우이암까지를 말한다. 이 구간의 암릉은 뜀바위, 피바위, 칼바위, 기차바위, 오토바이바위 등이 있다.

신선대에서 출발해서 곧 앞을 가로막는 바로 그 바위가 뜀바위다. 대부분의 등산객은 우회해서 가기 때문에 뜀바위를 접할 기회가 별로 없어 생소할 것이다.

▲ 1 하루재 고개에서 종주팀이 백운산장을 향해 방향을 가리키며 가고 있다. 2 종주팀이 산성을 따라 시계를 걷고 있다. 3 철제 사다리를 잡고 올라가고 있는 시계종주팀. 4 시계종주팀이 도봉산 전망대에서 산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망월사와 도봉산 능선을 보고 있다.

도봉주능선은 암릉에 갖가지 바위 널려

뜀바위에서 오봉능선 갈림길까지의 암릉을 칼바위능선이라 부른다. 암릉이 마치 칼처럼 양쪽으로 날카롭게 서 있어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

갖가지 이름을 가진 이들 바위를 지나서 우이암에 도착했다. 우이암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모양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원래는 소의 귀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남성의 성기처럼 생겼다는 사람도 있다.

우이암 가는 길에 통천문이란 조그만 바위를 지나게 돼 있다. 지리산과 월출산의 통천문과 조금 비슷하게 생겼다면 전부 통천문이라 부른다. 도봉산 지나온 길에서만 두 번이나 그런 바위가 있었다. 또 웬만한 산에는 전부 통천문이 있다. 통천문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건 아닌지.

이젠 3구간 마지막 능선인 우이암 능선을 타고 우이동까지 가면 끝이다. 우이암 능선은 도봉산과 북한산을 연결하는 가교 능선이다.

우이동에서 도봉산으로 올라오는 등산객은 별로 없다. 북한산으로 접근성이 좋고 길도 좋아 대부분 그쪽으로 간다. 덕분에 우이암능선 등산로는 한적하면서 푹신했다.

우이동으로 내려가기 직전, 바위의 정중앙을 뚫고 올라온 소나무 한 그루가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마치 바위가 소나무를 품고 있는 형상이다. 일행 중 한 명이 신기한 듯 말했다.

“야, 저 소나무 봐라. 얼마나 생명력이 강한지. 나중에 소나무가 이길지 바위가 이길지 모르겠지만 소나무가 이겨 저 바위를 갈라버릴 것 같아.”

“아니야, 아무리 나무라도 저런 상태로는 자라기 힘들거야. 분명 나무가 고사해서 죽을거야.”

의견이 분분했다. 마침내 우이동에 도착했다. 참나무바베큐집이 하산로 바로 옆에 있다. 우이동 방향으로 조금 내려오니 ‘한정식 백란’이란 거창한 집이 있다. 4구간은 그 집을 거쳐서 북한산으로 올라간다고 한다.

이날의 3구간은 일종의 도봉산 종주코스다. 도봉산역에서 다락능선을 거쳐 포대능선~도봉주능선~우이동까지 무척 길 것 같은데, GPS로 측정한 바로는 9.8㎞밖에 안 된다. 알바한 거리나 출발지와 목적지까지의 접근 거리를 포함하면 전부 걸은 거리는 15㎞ 이상이 될 것 같다. 오전 10시에 출발해서 오후 4시30분쯤 끝났다.

▲ (좌)종주팀이 도봉산 마당바위에서 자운봉과 신선대, 만장봉을 배경으로 환호하고 있다. (우)도봉주능선에서 암릉 위로 걷고 있는 종주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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