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계종주

월간산 서울시계종주 1 2 구간-3

바람처럼 구름처럼 2010. 12. 23. 14:58
[서울시계종주 1·2] 시계(市界) 걸으면 역사가 보인다
1구간, 워키힐~아차산~태릉까지…삼국시대 고분·보루, 공원묘지 등 거쳐
2구간, 태릉~불암·수락산~도봉산역… 불암산성 등 유적·사연 많아

[2구간] 태릉 담터고개~삼육대 후문~제명호~불암산~수락산~망월정~진달래능선~근린공원(조성 중)~도봉산역 GPS 거리 15.6㎞


담터고개에서 다시 출발이다.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일기예보엔 오전에 잠시 비가 내리다 오후부터 갠다고 했으나 이날 하루 종일 그치지 않았다. 내 기억으로는 일기예보가 맞는 날보다 안 맞는 날이 훨씬 많은 것 같다. 그것도 꼭 필요할 때는 항상 틀렸다. 틀렸던 기억만 뚜렷하기 때문일 수 있겠지만.


담터고개는 태릉과 남양주시 별내면과 경계다. 불암산 방향으로 가다가 한사랑한의원을 앞에 두고 논골편의점을 왼쪽으로 끼고 돌아 동네길로 계속 간다. 삼육대 후문으로 들어가서 제명호수로 찾아가면 제대로 가는 것이다. 길은 아직 녹지 않은 상태라 미끄럽다. 제명호를 앞에 두고 오른쪽으로 가면 불암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가 나온다. 불암산중으로 접어들었다.


▲ 망우산 공원묘지 능선 위로 종주팀이 지나고 있다.

불암산은 화강암의 큰 바위로 된 봉우리가 마치 송낙을 쓴 부처의 형상과 비슷하다 하여 붙여졌다. 불암산에 얽힌 전설도 재미있다. 불암산은 원래 금강산에 있었으나 조선왕조가 건국하면서 도읍을 정할 때 한양에 남산이 없다는 소문을 듣고 자기가 한양의 남산이 되겠다고 내려왔으나 벌써 남산이 들어서 있는 것을 보고, 돌아선 채 그 자리에 머물렀다고 한다. 이 때문에 불암산은 서울을 등지고 있는 형세라는 것이다. 이러한 형세는 수락산과 더불어 조선시대 서울의 북쪽 방어선을 이루며, 서울을 수호하는 기능을 했다. 정상 부분은 온통 바위산을 이루고 있으며, 작지만 웅장한 기품을 자랑한다.


불암·수락산은 6·25 서울 방어선


부슬부슬 내리는 비 사이로 불암산의 호젓한 등산로가 이어졌다. 밑에서 정상을 바라본 바위산의 모습과는 달리 걷는 길은 전형적인 육산이다. ‘맨발길’이란 이정표가 붙은 길도 있다. 그만큼 부드러웠다.


주능선을 따라 계속 앞으로 향했다. 샛길이 나올 땐 항상 이정표가 붙어 있어 길을 잃을 우려도 없다. 등산로 곳곳에 유명인사들의 시(詩)도 간간이 걸려 있다. 자욱한 안개는 노송 사이로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듯하다. 나무 사이로 저 멀리 보이는 도시는 운무에 가려 전혀 보이질 않았다.


불암산 제2봉 정상 조금 못 미쳐 불암산성이 나왔다. ‘웬 산성이지’ 싶었다. 문화재 지정 예정이라는 이정표가 있다.‘신라가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불암산성은 규모는 작지만 삼국시대 석축 산성의 전형적인 축성기법을 보여주는 유적이며, 인근의 수락산보루·봉화산보루·아차산보루군 등과 함께 한강을 중심으로 삼국의 각축 양상과 고대 교통로 연구에 중요한 자료’라고 쓰여 있다. 일부에서는 산성의 규모가 협소해 산성이라기보다는 ‘보(堡)’라고 보는 게 적합하다는 의견도 제기한다.


▲ 수직에 가까운 계단을 종주팀이 내려오고 있다.

제2봉 정상엔 헬기장이 있다. 운동기구도 몇 가지 설치돼 있다. 비는 좀체 그칠 줄을 모르고, 운무는 서울 도심을 완전히 덮고 있다. 운무에 가려 빌딩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마치 바다에 잠긴 도시 같아 보였다. 그 운무의 바다 위로 북한산과 도봉산이 우뚝 솟아 있다. 우뚝 솟은 북한산과 도봉산은 하나의 섬이고, 빙산의 일각이었다. 구름 낀 날의 또 다른 멋진 풍광이다. 정말 진경산수화를 보는 느낌이다. 일행 모두 탄성을 자아내고 있다. 비와 추위는 잠시 잊은 듯했다. 이런 풍광이 있으리라고 전혀 기대를 못하고 “비가 와서 사진이 제대로 되겠나”라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출발했는데 전혀 의외였다. 그 멋진 풍광을 올라가는 전망대에서 감상하고 디카에 담을 수 있는 데까지 담았다.


‘밥시(밥 먹을 시간)’가 되어갔다. 정상 바로 밑 거북바위 옆에서 점심을 먹고 가자는 의견과 밥 먹으면 힘드니 넘어가서 먹자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의견통일을 보고 같이 갈 줄 알았는데 먹을 사람 먹고, 갈 사람은 가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자율성의 존중인지, 중년의 고집인지.


시계(市界)는 불암산(509,7m) 정상 옆 쥐바위를 지나쳐 가지만 정상 조망에 혹시 뭔가가 있을지 몰라 올라갔다. 정상에 올라가기 직전 꼭 쥐같이 생긴 쥐바위가 등산객들을 반겼다.


정상에 오르니 사방이 확 트였다. 앞으로 나아갈 시계가 한눈에 들어왔다. 수락산과 불암산이 가르는 시계가 쭉 펼쳐졌다. 양쪽에 있는 서울과 남양주는 운무에 가렸고, 나아갈 능선만 우뚝하게 솟은 모습, 그 자체가 더없이 장관이었다.


이젠 불암산과 수락산의 경계를 이룬 덕릉고개 방향으로 하산이다. 산 밑으로는 불암산터널이 지나고 있다. 덕릉고개는 노원구의 북동쪽 시계에서 남양주 별내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조선 선조의 아버지인 덕흥대원군의 묘소인 덕릉(德陵)이 고개 동쪽에 자리 잡은 데서 유래했다.


덕릉고개 위로 육교를 놓아 불암산과 수락산을 연결하고 있었다. 육교가 없던 시절엔 횡단보도를 건너는 등 한참을 돌아서 올라갔으나 지금은 편하게 지나쳤다. 불암산과 수락산의 시계종주 코스는 불수사도북(서울 5산) 종주하는 그 길이다.


비 오는 날 운무로 서울 도심 잠겨 장관


이제 수락산이다. 수락산은 내원암 일대 계곡의 병풍 같은 바위벽에서 물이 떨어지는 모습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산봉우리 형상이 마치 ‘목이 떨어져 나간 모습(首落)’과 같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또 사냥꾼 아버지가 호랑이가 물고 간 아들 ‘수락’이를 부르다 바위 아래 떨어져 죽은 뒤, 비 오는 날이면 “수락아, 수락아”하는 소리가 들려 수락산으로 했다는 전설도 전해온다. 유적, 경승 못지않게 전해오는 일화도 특히 많은 산이다. 6·25 때는 육군 사관생도들까지 나서 불암산과 함께 서울 사수선으로 격전을 치렀던 산이기도 하다.


수락산 능선 조금 못 미쳐 얼마 전에 탄 듯한 산불의 흔적이 있었다. 다행히 조기진화에 성공한 것 같다. 산림이 심하게 소실되지는 않았다.


물이 많을 것 같은 이름과 달리 수락산은 올라갈수록 웅장한 바위를 드러내고 있었다. 치마바위 삼거리에 이르렀다. 눈이 녹지 않고 얼어 좁은 바위틈새와 바위 옆 등산로로 지나가기엔 위험했다. 날씨도 비가 내리고 추워 손까지 얼어붙었다. 등산로에 로프는 있지만 손을 제대로 펼 수 없어 불편하기 짝이 없다. 일행 전부 조심조심 올랐다. 준족의 아주머니들도 이런 길에서는 굉장히 조심스럽다. 엉덩이가 무거워 그런지 로프를 잡아도 오르기가 쉽지 않다.


▲ 수락산 거북바위를 오른쪽에 두고 일행이 올라가고 있다.

지나가는 길에는 바위들의 연속이다. 하강바위, 바로 그 옆에 남근 비슷하게 생긴 바위, 코끼리 바위, 종바위를 지나 마침내 정상 바로 옆 철모바위에 도착했다. 주말엔 막걸리 파는 비닐 천막집이 있는 곳이다. 잠시 안에 들어가서 비를 피했다. 이정표는 ‘←4.7㎞ 수락산역(수락골), 수락산 정상 0.3㎞→, 수락산역(노원골) 5.2㎞↓’를 가리키고 있다. 정상까지는 불과 300m밖에 안 되지만 시경계가 아니고 의정부라 전부 수락골로 하산했다. 비가 내리니 가기도 그렇고, 또 갔다 하면 따라잡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정상에 들렀다 가는 걸 포기하고 곧장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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