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계종주

월간산 서울시계종주 10구간

바람처럼 구름처럼 2010. 12. 23. 14:38
[서울시계(市界)종주 9·10구간] 197.3㎞ 종주 마쳐…산·고개·성곽·하천과 문화유적 두루 살펴
한성 백제의 혼 서린 ‘위례’
선사 주거유적지 거쳐 ‘끝’

[ 10구간 ]
복정역~장지천~장지근린공원~천마산~새우고개~일자산~명일근린공원~샘터근린공원~고덕산(매봉)~암사선사주거지~광진교~광나루 29.5㎞


오전 9시30분 복정역에 모였다. 서울시계종주 마지막 구간은 지난번 9구간을 조금 줄여서 마치는 바람에 약 30㎞ 가까이 된다고 했다. 가야 할 거리에 중압감을 느꼈는지 모두 줄행랑치듯 갔다. 복정역 1번 출구로 나와 장지천으로 걸어 올라갔다. 장지천 주변은 온갖 야생화가 만발했다. 걷기 편하도록 타탄트랙도 깔아놓았다. 야생화 즐길 정신도 없다. 오로지 걷기에 일념이다.


이번 구간은 야트막한 산에 조성한 근린공원과 주택가, 들판을 가로질러 선사주거지를 거쳐 한강을 지난다. 특히 남한에서 가장 오래된 산성을 남북으로 멀찌감치 쳐다보고, 또한 선사시대 주거지를 스쳐 지나가는 의미 있는 구간이다.


장지천이 끝날 즈음 대단위 아파트 단지 뒤편에 조성된 장지근린공원으로 들어간다. 운동시설과 휴식처를 갖춘 아담한 공원으로 꾸며놓았다. 정원엔 들국화 같은 야생화와 양귀비꽃이 만발해 있다. 꽃들이 울긋불긋 서로 자랑하는 듯하다.


공원을 지나자마자 서울외곽순환도로 바로 옆길로 합류한다. 도로는 방음벽으로 둘러쳐져 있지만 워낙 달리는 차들이 많아 소리는 그대로 들린다. 소음 때문인지 방음벽 안으로는 은행나무와 소나무를 3중으로 심어 놓아 가로수 사이로 두 개의 길이 나 있다. 이 길도 제법 운치 있는 길이다.


▲ 강동그린웨이 못미처 누에머리공원 끝 지점엔 시민들을 위해 분수대를 운용하고 있다.

천마산은 임경업 장군 전설 지녀
서울시계는 외곽순환도로 반대편으로 가야 하지만 군부대 통제구역으로 통행이 쉽지 않아 외곽순환도로를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그 반대편 지역은 위례 신도시 조성예정지이기도 하다.


위례성은 한성 백제 초기의 도읍지인 곳이다. 백제의 건국은 기원전이므로 2000년이 훨씬 넘는 역사를 지닌 성이다. 서울 수돗물의 이름인 ‘아리수’도 위례와 관련 있다.
위례 명칭 유래에 대한 3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한강을 뜻하는 ‘아리수(阿利水)’·욱리하의 아리·욱리에서 어휘변화를 일으켜 위례가 됐으며, 모두 크다는 뜻이다.


둘째로 백제에서 왕을 가리키는 어라하(於羅瑕)의 어라가 위례의 기원이고, 곧 왕성이라는 뜻이다. 셋째는 ‘우리’, 즉 울타리에서 기원했는데, 그 뜻은 성곽·성책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어느 것이든 위례는 한강과 성곽, 왕 등과 관련이 있는 말이다.


외곽순환도로 따라가는 길을 벗어나 거여동사거리에서 거여동 방향 오른쪽으로 틀었다. 여기서 남한산성 등산로 입구인 만남의 장소까지 줄곧 가면 된다. 서울시계를 충실히 따르기 위해 중간에 국방과학연구소 서울 제2 기술연구본부로 우회했다가 나오는 길도 있다.


만남의 장소는 등산객, 일반인 구분없이 북적거린다. 서울시계는 남한산성으로 올라가는 길이 아니고 왼쪽 신명실업고교 방향, 즉 천마산으로 가는 길이다. 빌라 등 주택가를 지나 은빛 천사의 집에서 야트막한 천마산 등산로로 올라선다.


천마산이 송파구 마천동과 하남시 간의 경계를 이룬다. 정상이 GPS로 151m밖에 안되는 구릉지이지만 그래도 임경업 장군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병자호란 때 천마산에서 용마가 나와 임경업 장군이 그 말을 타고 개농리에서 갑옷을 꺼내 입고 투구봉에서 투구를 쓴 뒤 전장에 출전했다고 전한다. 주변 일대에 산이 없어 얕은 산이지만 정상에 오르면 조망이 확 트였다. 정상엔 산불감시탑이 있어 주변을 샅샅이 살피고 있었다.


천마산 맞은편엔 남한산성 자락인 금암산이 지척에 있다. 성곽은 능선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그 밑에 있는 골프장의 골프 치는 모습까지 눈에 들어왔다.


▲ 왼쪽)범바위산에서 내려오면 세곡3교를 지나 서울과 성남의 경계를 알리는 해치상이 있다. 오른쪽)시계종주 마지막 출발지점인 장지천 위의 장지교를 종주팀이 지나고 있다. 장지천 주변엔 다양한 야생화가 만발해 있다.

천마산을 내려와서부터 지겨운 주택가와 아스팔트길이 연속된다. 남천초등학교 후문을 지나 개나리어린이집에서 우회전해서 한스세븐빌에서 잠시 구릉지로 올라간다. 누에머리공원 관리사무소로 내려와 거여초등학교 뒷담을 끼고 돌아 고덕동 도로를 따라 나온 뒤 서하남IC 입구 사거리에서 일자산 방향으로 들어간다.


이곳이 강동그린웨이 출발지점이다. 강동그린웨이는 일자산공원에서 출발해서 허브천문공원~길동생태공원~명일근린공원~방죽근린공원~샘터근린공원을 거쳐 고덕산 등산로까지 10㎞가 넘는 길로서, 구청에서 직접 조성한 걷는 길이다.


강동그린웨이 일자산공원 첫 쉼터엔 한국생활안전연합에서 서울시 보행환경 실태를 조사한 결과 ‘강동구가 걷기에 최적’이라는 발표를 커다란 이정표에 붙여 놓고 있다.
일자산은 강동구 둔촌동과 하남시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높낮이가 거의 없이 일자처럼 생겨 이름 붙여진 야산이다. ‘강동구가 걷기에 최적’이라는 이정표 바로 옆에 둔촌동의 유래에 대한 안내판도 있다.


‘이집(李集·1327~1387) 선생은 고려 말에 등용된 대학자로 이색, 정몽주, 이숭인 등과 더불어 절개로 널리 알려진 인물로서, 공민왕 17년(1368) 신돈의 실정탄핵을 계기로 신돈의 박해를 피해 이곳에 일시 은거하였던 것으로 전한다. 은거 동안의 고난을 자손 후시까지 잊지 않기 위해 호를 둔촌(遁村)으로 바꾸었다. 현재 둔촌동의 동명 유래는 이집의 호인 둔촌에서 비롯된 것이다.’


강동그린웨이는 정말 걷기 좋게 돼 있다. 공원을 빠져나가더라도 차도 옆 인도엔 타탄에 강동그린웨이 표시를 해놓아 걷기도 편하고 찾기도 쉽게 단장했다.


근린공원을 거쳐 고덕산에 도착했다. 아름다운 한강 야경으로 특히 유명한 곳이다. 정상을 향해 가는 오른쪽 한강변에 뵈는 어마어마한 별장은 영화배우 신영균씨의 소유라고 한다.


비릿한 밤나무꽃 냄새가 어디서 난다. ‘아, 그렇지. 밤나무꽃이 필 무렵이 됐구나’ 싶다.


고덕산은 고지봉이라고 하며, 정상은 응봉, 매봉이라고 한다. 정상이라 해봤자 GPS로 해발 100m밖에 안된다. 삼각점이 있는 정상에서는 한강이 바로 조망되고, 약간의 체육시설이 있어 시민들의 운동과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잠시 휴식을 취했다.


강동그린웨이 길은 걷기 좋게 단장
지나온 길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서울시 경계를 찾아 지하철 광나루역에서 지난 한겨울 눈 내릴 때 시작한 종주가 이젠 거의 끝이 보이는 지점에 왔다. 한강이 바로 눈앞에 있다. 감회가 새롭다.


마지막 있는 힘을 다해 선사주거지로 향했다. 너무 많이 걸어 발바닥이 화끈거렸다. 고덕산 끝자락엔 광릉약수터와 함께 바로 그 옆에 조선시대 영의정을 지낸 광주 이씨 광릉부원군 이극배의 묘소와 그 후손들의 묘소가 있다. 서울시 문화재 제90호로 지정된 곳이다.


들판을 가로질러 선사주거 유적지에 왔다. 약 6000년 전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집터 유적으로,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밝혀진 신석기 시대의 최대 집단취락지라고 소개하고 있다. 농경문화 시작을 입증하는 한국선사문화 이해에 매우 귀중한 유적이다. 1979년 7월 국가사적 제267호로 지정됐다.


선사주거지에서 토끼굴을 지나 한강 광나루유원지까지는 얼마 되지 않는 거리다. 그러나 이제는 지칠 대로 지쳐 걸을 힘도 없다. 길이니까 본능적으로 발이 옮겨지는 느낌이다. 발바닥부터 발목까지 아프기 시작한다. 그래도 끝내야지.


한강 광나루유원지는 지금까지와는 색다른 분위기라 조금 힘이 났다. 석양에 반짝이는 갈대를 쳐다보고 있노라면 눈이 부셨다. 아름다운 경관을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았다. 힘든 것도 잠시 잊었다. 이정표가 하나 보였다. ‘암사동 생태경관보전지역’이라고 적혀 있다.


한강 연안에 형성된 퇴적부에 독특한 육상 및 연안 생태계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부가설명을 하고 있다. 수변을 따라 자연적으로 형성된 버드나무 군락과 갈대 군락이 뛰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일부러 그 옆으로 한참 걸었다.


이젠 마지막 광진교로 올라갔다. 이 다리만 건너면 서울시계종주 끝이다. 다리 길이는 1㎞가 더 됐다. 왜 그리도 길게 느껴지는지. 다리 중간에 드라마 ‘아이리스’ 촬영지이며 한강 조망지인 ‘리버뷰 8번가’도 있어 아무리 힘들어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리버뷰 8번가에서는 발아래로도 한강을 조망할 수 있다.


마침내 광나루 비석에 도착했다. 무려 30㎞를 걸은 날이다. 태어나서 하루에 이렇게 많이 걸은 날은 처음인 것 같다. 마라톤 풀코스 완주를 하지 않는 이상 이같이 걸을 일은 없을 것 같다.


[ 서울시계종주를 마치며 ]


산전수전 겪으며 1회 평균 20㎞씩 서울시계 한 바퀴 돌아


겨울이 채 가시지 않은 지난 2월 서울시계종주를 거인산악회와 54트레킹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시작하기로 했다. 첫 출발지는 아차산 광나루역. 그곳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서울시계를 한 바퀴 돌기로 뜻을 모았다. 모두 두툼한 등산재킷에 모자와 장갑, 마스크까지 완전무장하고 모였다. 아차산, 불암산, 수락산, 도봉산, 북한산 등을 차례로 거쳐 갔다.


매월 둘째 넷째 화요일, 즉 한 달에 두 번씩 어김없이 걸었다. 애초 대략 140㎞쯤 된다고 한 서울시계종주는 걸을수록 길이가 늘어났다. 5구간부터는 한번 걸을 때마다 보통 20㎞ 이상씩이었다. 무슨 극기훈련하는 것도 아니고, 생각할 여유도 없이 오로지 걸을 뿐이었다. 걷는 사람들에게는 머리 비우고 걷는 게 좋을지 모르지만 이것저것 살펴보고 물어보고 취재하는 사람에게는 ‘이게 아니다’ 싶었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시작한 일정을 그대로 마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상황을 바꾸지 못하면 그 상황을 즐길 수밖에 없다’는 심정으로 먼저 가서 살펴보고 물어보며 따라붙었다. 그렇게 하기를 10회, 헤맨 거리를 빼고 무려 197.3㎞를 완주하며 취재했다. 1회에 평균 20㎞다. 평지는 1시간에 평균 4㎞, 산길은 2㎞ 걷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산길, 평지 상관없이 오전 9시 내지는 10시에 모여 출발했다. 저녁 도착시각이 고무줄같이 늘었다 줄었다 할 뿐이었다. 눈 쌓인 산길을 걷기도 하고, 비를 맞으며 하천을 건너기도 하는 등 산전수전 겪으며 무사히 마쳤다.


서울시계종주 시작한 지 얼마 안돼 서울시에서 마침 서울 외사산 트레킹 코스 200㎞를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동 용마산, 서 덕양산, 남 관악산, 북 북한산으로 이어지는 역사·문화·생태 트레킹 코스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외사산 트레킹 코스는 서울시계종주와 중복되는 노선과 우회하는 노선이 반반 정도 된다고 한다. 우회하더라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서울권을 벗어날 때는 다른 시군과 업무협조 문제가 뒤따르기 때문에 작업이 크게 지연될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계종주를 먼저 마친 입장에서 서울외사산 트레킹 코스를 문화유적지와 아름다운 산수 경관을 찾아 연결한다면 그 어떤 걷는 길보다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계종주는 54트레킹동호회와 거인산악회가 없었다면 아마 원활하지 못했을 것이다. 끝까지 동행해 준 그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그리고 튼튼한 내 다리에도 감사할 뿐이다.


/ 글 박정원 부장대우
jungwon@chosun.com
사진 정정현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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