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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신부가 설명하는 예수(조선일보에서 옮겨 옴)
바람처럼 구름처럼
2016. 5. 19.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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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못 박힌 예수… 황제를 사칭한 罪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크리스마스에 생각한다] 성공회 신부가 설명하는 '예수'
非그리스도교 문헌 7종에 등장… 마술쟁이·나사렛 도당으로 기록
예수의 '동정녀 마리아 탄생' 그 시대 돌던 민간 신앙과 관련
자신을 따르지 않는 유대인에게 "장례, 죽은 자에게 맡겨라" 질타
◇예수는 왜 '나사렛 예수'라 불리나
우리말로 '예수', 영어로 '지저스(Jesus)'의 히브리어 본래 발음은 '요수아'에 가까운데 헬레니즘 문화권으로 넘어가면서 '이에수스'가 됐다. '하느님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을 가진 '요수아'는 유대인에게 흔한 이름이었기 때문에 구별을 위해 예수의 출신지인 '나사렛'을 붙여서 불렀다. 헬레니즘 세계에서는 히브리어 '메시아'의 헬라어 번역어인 '크리스토스'를 붙여서 '이에수스 크리스토스(예수 그리스도)'가 사용됐다.
◇역사 속 예수는?
예수는 신약성서 외에도 7종의 비(非)그리스도교 문헌에 등장한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37?~100?)가 지은 '유대고사(古史)'에는 '추종자들에 의해 메시아로 받들어진 예수라는 마술쟁이'가 나오고, 유대인 기도문인 '바빌론 탈무드'의 이단 배척 조항은 서기 85년에 '나사렛 도당들'이 추가됐다. 로마시대 역사가 타키투스(55?~117?)의 '연대기(年代記)'는 '본티오 빌라도 총독에 의해 처형된 그리스도'에 관한 서술이 들어 있고, 전기(傳記) 작가 수에톤이 지은 클라우디우스 황제(재위 41~54) 전기는 '크레스토(그리스도)에 의해 선동되고 소요를 야기하는 유대인들'이 기록돼 있다.
◇동정녀 마리아와 예수
예수의 '동정녀(童貞女) 탄생'은 위대한 인물은 아버지의 힘을 빌지 않고 태어난다는 당시 지중해 세계의 민간 신앙과 관련이 있다.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도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예수가 한국 땅에 태어났다면 박혁거세나 김알지처럼 알에서 태어났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예수의 가족 관계는?
예수는 부모인 요셉·마리아와 형제인 야고보·요셉·유다·시몬, 몇몇 누이가 있었다. 이들은 나사렛에 살았다. 세례자 요한을 만나고 공(公)생활을 시작하면서 집에서 나온 예수를 어머니와 형제들이 잡으러 오자 그는 "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냐"고 매정하게 잘랐다. 예수는 혈연을 뛰어넘는 진짜 가족 관계가 하느님을 따르는 공동체 안에 형성된다고 가르쳤다. 유대인은 효심이 깊고 부모를 공경했다. 아버지 장례를 치른 뒤에 제자로 합류하겠다는 효자에게 예수는 "죽은 자들의 장례는 죽은 자들에게 맡겨두라"며 즉각 자신을 따르라고 다그쳤다.
- 스테인드글라스에 표현된 예수 그리스도.‘ 역사의 예수’와‘신앙의 그리스도’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다.
예수는 '테크톤(기술자)'이었던 아버지의 직업을 물려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히브리어의 사투리인 아람어를 사용했던 그는 정식 교육은 거의 받지 못했지만 놀랄 만한 율법 지식을 갖고 있었다. 이스라엘 북부 갈릴레아 지역 출신인 예수는 갈릴레아 호숫가를 공생활의 활동 중심지로 삼았다. 그는 종종 인근 지역으로도 전도 활동을 갔고, 마지막에 예루살렘에 입성해서 가르침을 베풀고 죽음을 맞았다.
◇예수는 왜 박해받았나
예수가 갈릴레아 일대서 활동할 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추종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진격해 스스로 메시아임을 밝히면서 성전에서 채찍을 휘두르자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은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꼈다. 그에게는 처음에 '메시아 사칭'이란 종교적 죄목이 적용됐지만 이것으로는 사형시키기가 어렵자 '유다인의 왕'이라며 황제를 사칭했다는 정치적 죄목으로 바뀌었다. 그에게 로마의 사형 방법 중 가장 극형이었던 십자가형이 선고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부활의 '신뢰도'는?
예수를 묻은 무덤이 비어 있었고, 예수가 부활해서 제자들에게 나타났다는 증언은 그리스도교 신앙에 흠뻑 젖어 있어 역사성을 가려내기 어렵다. 하지만 예수의 추종자로 몰려서 고초를 당하고 두려워서 도망쳤던 많은 사람이 예수 사후 불과 사흘 만에 목숨을 내걸 정도로 열심인 복음 전도자로 변했다. 그들에게 무언가 놀랍고 대단한 체험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고 이 체험을 1세기 그리스도교회는 예수의 '부활'로 설명했다.
- 이선민 선임기자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