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해야 하는 짧은 이유
보수적인 걸 자처하는 나도 늘 변해야 한다는 숙명같은 과제르 안고 있다.
지금까지의 내가 성공적이었다 하더라도 스스로가 끊임없이 변하고
좋아지지 않는다면 문제인데 하물며 난 내리막길을 걸어 왔으므로
당연히 변해야 한다.
그러나 보수라는 핑계로 변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어릴 때의 생각과 교육에 매달려서 그 것이 금과옥조가 되어 버린 경우인데
고집스런 그 모습이 일관성있어 좋은 면도 있으나,
생각해보자.
옛날 양반들은 뛰지를 않았다. 경망스러우니까.
운동부족이다.
사냥을 가도 하인이 뛰어가서 화살에 떨어진 새를 주워 왔을 것이고
고작 하는 운동이래야 산책정도였을 것이다.
그 것도 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그럼 지금 세상에서도 뛰지 않아야 양반일까?
우리가 어릴 때 배웠던 많은 것들이 익숙해져 있으니
정이 가고 붙들고 싶은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내 삶이 팍팍하다면 변해야 한다.
지금 과거를 붙들고 있을 때가 아니다.
수천년에 걸쳐 변해왔던 것들이 지금은 단 몇 달 며칠 사이에 변한다.
생각은 더더욱 빠르다.
수천년 전과 몇 십 년 전은 다르다는 얘기를 한다면
바로 이런 차원에서 한심하다고 말 할 수 있다.
우리가 변하지 않는다는 건
과거 수천년의 세월전 가지고 있던 사고방식을 지금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진화생물학적 차원에서도 도태되기 마련이다.
적자생존
어쩌면 너무 서글프지만 그런 부류의 인간은 하늘이 일부러 도태를 시킨다.
열악한 종을 멸종시키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내가 바로 그런 처참하고 비참한 하류동물의 신세가 됨을 모르고
보수적이고 옛 것을 존중한다는 착각 속에서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이런 이치를 깨달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