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경북 영주 소수서원(조선일보에서 퍼옴)

바람처럼 구름처럼 2011. 7. 11. 08:20

7월 '길 위의 인문학'… 경북 영주 소수서원 가보니

"서원(書院)은 한마디로 조선시대의 사립대학입니다. 소수(紹修)서원은 처음으로 사액(賜額·임금이 이름을 지어 내림)을 받은 서원이니, 최초의 사립대학인 셈이지요. 미국 하버드보다 93년이나 앞선 대학입니다."

9일 장맛비가 내린
경북 영주 소수서원에서는 '선비의 거처, 사상의 거처'를 주제로 '길 위의 인문학' 탐방이 진행됐다.

1542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고려 안향(1243~1306)의 뜻을 기려 백운동서원을 설립한 것이 소수서원의 시초이다. 1550년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부임, 조정으로부터 사액을 받으면서 공인된 사학(私學)이 되었다. 사액서원은 나라로부터 책·토지·노비를 하사받고 면세·면역(免役)의 특권을 가진 서원을 일컫는다. 소수서원은 1871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 조치 때에도 피해를 면한 47서원의 하나. 전국에서 매년 30명 이내를 뽑아 350여년간 4000여명 인재를 배출했다.

“‘벌초(伐草)’란 부모 무덤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풀(草)을 베어낸다(伐)는 뜻 입니다.”경북 영주 소수서원에서 탐방단이 박석홍 국사편찬위 사료조사위원의‘벌초’에 대한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김나진 인턴기자(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4년)

형형색색의 우산을 받쳐 든 52명의 탐방단은 연방 고개를 끄덕이며 강연자 박석홍 국사편찬위 사료조사위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박 위원은 영주시청 문화예술과 소수서원계에서 20여년째 근무 중인 명실상부 소수서원 전문가. 그는 딱딱한 사실(史實)에 우리의 현대적 삶을 연결시켜 청중을 설득했다.

옛 모습 그대로인 소수서원. 원장과 학자들이 기거하던 집무실 겸 숙소 '직방재(直方齋)·일신재(日新齋)'의 오른쪽엔 오늘날의 대학 도서관에 해당하는 '장서각(藏書閣)'이 있다. 임금이 직접 지어 하사한 서책을 비롯, 3000여 장서를 보관하던 곳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적 '좌우지선(座右之先)'의 예를 따라 으뜸 자리에 둔다고 스승의 숙소 우측에 지은 겁니다. '좌우명(座右銘)'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 늘 자리 옆에 두어 가르침으로 삼는 말도 오른쪽에 적어 놓았지요." '직방재·일신재' 왼쪽엔 유학생들이 공부하던 기숙사 '학구재(學求齋)'가 있는데, "해질 무렵 스승의 거처가 드리우는 그림자도 피한다는 의미에서 두 칸(12자·약 3.6m) 물려 지었고, 방바닥도 스승의 숙소보다 한 자(尺·약 30㎝) 낮추었다"고 한다

박 위원은 '직방재'와 관련, "학문을 통해 '곧바로'(직방·直方) 겉과 속을 익히게 되면 선비 또는 선달(先達·문무과에 급제하고 아직 벼슬하지 아니한 사람)이 되지만, 겉만 익고 속이 설익으면 '건방'만 들어 건달(乾達)이 될 뿐"이라며 청중을 웃겼다.

초빙강사인 신창호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의 강연은 굵어지는 빗줄기 탓에 서원 내 충효교육관 강당에서 진행됐다. 신 교수는 '선비, 그들의 공부법과 21세기 우리들'이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유교는 종교가 아니다"라면서 "유교는 일상생활을 가장 합리적, 정상적, 도덕적으로 영위하기 위한 실천 지침"이라고 강조했다.

탐방단은 이날 조선시대 전통가옥을 복원한 테마파크 '선비촌'과 고려 충렬왕 때 처음 지었다가 숙종 때 다시 세운 '순흥향교', 우리나라 화엄종의 근본도량(根本道場)인 부석사도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