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67년 조명, “공산주의 폭력성을 가르쳐준 전쟁”
‘잊혀진 전쟁’아닌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기억해야
공산주의 본질 알린 세계사의 기념비적 사건
공산통일실패한 것을 원통히 여겨서야 되겠는가
김대중 대통령은 ‘통일전쟁’ ,노무현 대통령은 ‘내전’규정
문재인대통령 현충일기념사, 6.25 표현없고 미군-유엔군 언급없어
종북 좌파들, ‘혁명 對 반혁명 전쟁’으로 선동
학교에서 “맥아더가 38선 분단 집행의 집달리”라고 교육
교과서에는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으로 기술
6.25는 불법남침이지‘내전’‘통일전쟁’‘해방전쟁’아니다
‘김일성?스탈린?모택동 3자가 모의한 침략전쟁’세계가 다 아는 일
노무현 대통령은 용산미군기지를 ‘침략의 상징’이라고 했다(조영환 편집인)
『우리 미합중국은 조국의 부름을 받고 생전에 알지도 못하는 나라, 일면식도 없는 그들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분연히 나섰던 자랑스러운 우리의 아들딸들에게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한국전쟁 1950-1953년(Our nation honors her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a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ey never met. 1950 Korea 1953)』
미국 워싱턴의 한국전기념공원(Korean War Veterans Memorial)의 한국참전비에 새겨져 있는 글이다. 참전비에는 사망, 실종, 포로 및 부상한 사람의 숫자를 미군, 그리고 한국군을 포함한 유엔군을 구분해 아래와 같이 명확히 적어놓았다. Dead(사망) Missing(실종) Captured(포로) Wounded(부상) U.S.A 54,246 8,177 7,140 103,284 U.N. 628,833 470,267 92,970 1,064,453. 또한 공원 벽면에는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적혀있다. 많은 한국 관광객이 워싱턴을 방문하고 있지만 ‘영원한 불꽃’(eternal flame)이 타오르고 있는 고 케네디 대통령 묘소만 대부분 참배할 뿐 한국참전비를 둘러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한다.
곧 ‘6.25전쟁’67주년을 맞는다. 6.25전쟁은 우리 역사상 가장 비참한 동족상잔의 비극이었으며, 자유?공산 양대 세력의 세계적인 전쟁이었다. 김일성, 스탈린, 마오쩌둥(毛澤東) 3자가 공모해 공산주의 영향력을 동북아에서 확대하기 위해 일으킨 남침전쟁이자 국제전이었다.
6.25전쟁은 유엔의 집단안보가 적용된 최초의 사례다. 당시 유엔에 가입돼 있던 나라가 93개국인데 6.25전쟁에 직간접으로 개입한 나라가 70개국이다. 대한민국측에 섰던 나라가 63개국, 북한측에 섰던 나라가 7개국이다. 그래서 ‘a little World War’로까지 불린다. 군사적으로 볼 때 6.25전쟁은 동서 냉전기 최초의 열전(hot war)이며, 미국 건국이래 200여 참전 사례 중 최초의 ‘무(無)선전포고’전쟁이다. 또한 전장(戰場)이 한반도에 극한됐고 목표가 공산주의 팽창 봉쇄에 있었다는 점에서 ‘20세기 미국 최초의 제한전’이란 평가를 받는다.
공산주의자들의 전술과 전략은 그들의 시조 카를 마르크스가 1848년 공산당선언에서 설파한 것처럼 “계급혁명과 폭력혁명을 통해 세상을 공산주의로 바꾸자”는 것으로 정리된다. 6.25전쟁은 이래서 민족사뿐 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공산당선언이후 최초로, 그리고 냉전의 시작과 함께 드러난 공산주의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 기념비적인 사건인 것이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해준 세계사적 이정표이다.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미 적화됐을 것이다.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 휴전조인까지 남북한을 통틀어 5백여만의 사상자와 1천만명이 넘는 이산가족을 만들어 냈다. 그 경제적 손실은 전 국토가 초토화되면서 대한민국은 가히 계수로 판단하기 어려운 상태인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미국은 1950년 7월4일 스미스 대대가 참전하면서부터 휴전협정이 조인될 때까지 3년간 연인원 175만 명의 장병이 참전, 5만4천246명이 젊은 목숨을 바쳤고 10만3천284명이 부상했으며, 아직도 8천여명의 실종자를 남기고 있다.
당시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다시는 이러한 식의 전쟁은 치르지 않겠다는 뜻의 ‘Never again Korea’를 토로했으며 휴전 후에도 아물지 않는 상처를 달래기 위해 한국전을 아예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이라고 까지 불렀다. 그러나 한국전쟁은 결코 ‘잊혀진 전쟁’이 아니다. 남북한은 지금도 전쟁을 일시적으로 정지하고 있는 상황 즉, ‘기술적으로 전쟁상태(technically at a state of war)'에 있다.
주지하다시피 6?25전쟁은 김일성이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치밀하게 준비된남침이었다. 김일성은 1950년 3월 30일부터 4월 25일까지 부수상겸 외상 박헌영과 함께 모스크바를 방문, 스탈린과 남침계획을 최종적으로 논의했다. 이어 김일성은 5월13일에 베이징(北京)을 가서 다음날 모택동의 동의를 얻었다. 이같은 사실들은 6.25전쟁이 내전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6.25전쟁은 소련, 중국, 북한이 연대하고 공조해 일으킨 전쟁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냉전이 붕괴되면서 공개된 소련측의 문서와 증언을 통해 전 세계에 다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스탈린과 김일성의 남침 목표는 신생 대한민국을 붕괴시켜서 스탈린이 대리 통치하는 조선인민공화국에 편입하는 것이었다. 공산주의자들은 6.25전쟁 이전부터 대한민국의 건국을 저지해왔다. 1946년의 ‘2.7 구국투쟁’과 ‘대구 폭동’, 1948년의 ‘제주4.3폭동’과 ‘여수·순천 반란사건’에 이르기까지 무장폭동에 기반한 대한민국 건국저지 및 공산화 작업은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무장폭동으로 대한민국의 건국을 저지하지 못하자 마지막 수단으로 나온 것이 바로 전면 남침전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의 허울을 쓰고 한국전쟁을 내전(civil war, internal war)이니, 민족해방전쟁이니, 통일전쟁이니, 혁명세력과 반혁명세력 간의 전쟁이니 하면서 대한민국을 지킨 세력을 반혁명세력으로 몰아가고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린 16개 우방국을 내전에 개입한 ‘제국주의’ 세력으로 매도하는 세력이 날뛰는 곳이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실패한 통일전쟁’, 노무현 전대통령은 ‘내전’이라고 규정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금년 현충일 추념사에서 6.25란 표현 자체를 쓰지도 않았고 피흘려 우리를 도운 미군과 유엔군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하지 않았다. 현충일은 애국선열과 국군장병을 포함,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사람들의 넋을 넋을 위로하고, 충절을 추모하기 위하여 정한 국가기념일이다. 문 대통령은 다만 6.25 67주년을 앞두고 23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국군 및 유엔군 참전 유공자 위로연’에 참석,“참전용사 덕분에 피란민 아들이 대통령이 됐다”고 말했다.

▲소련의 공산당 제1서기 흐루쇼프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역사를 위해 진실을 말하겠다며 6.25는 김일성 계획하에 스탈린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기습 남침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1994년 김영삼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2000쪽에 달하는 6.25관련 문서를 전달했다. 여기에는 1949년부터 1953년 사이 김일성, 스탈린, 모택동이 주고받은 내용이 수록돼 있으며 김일성의 남침계획, 스탈린의 3단계 지원계획, 중공군의 개입계획 등이 수록돼 있다.(사진: 국가기록원 캡쳐)
서옥식 박사(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초빙연구위원, 전 연합뉴스 편집국장)는 “6.25전쟁은 미국의 남북전쟁이나 월남전쟁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전제하고 “이 두 전쟁이 내전이라면 6.25전쟁은 김일성에 의한 분명한 불법남침으로, 6.25발발 직후 소집된 유엔안전보장이사회도 6.25전쟁의 성격을 이처럼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6.25전쟁을 내전으로 보는 것은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류의 수정주의(修正主義, revisionism)의 입장으로서, 수정주의자들에 따르면 남북한 모두가 전쟁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전쟁이라는 것이다. 즉, 누가 방아쇠를 먼저 당겼는지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게 수정주의자들의 논리다.
한국 현대사 연구를 자부하고 있는 상당수 교수들도 38선의 생성과정을 수정주의적 관점에서 파악하고 있다. 소련이 대일참전을 선언하고 한반도를 향해 파죽지세로 내려오기 시작한 사흘 뒤인 1945년 8월11일 새벽 미 국방부 작전국 소속 딘 러스크(후에 국무장관)육군 대령과 찰스 본스틸(후에 주한 미8군사령관)대령은 한반도에 적당한 선을 그어 소련의 급속한 남진을 저지하라는 상부 지시를 받고 지도를 꺼냈다. 두 대령은 처음엔 북위 40도선을 고려했으나 너무 북쪽이라 소련측이 거부할 것 같아 한반도 중심을 관통하는 38도선을 택했다. 수도 서울과 주요 항구인 인천과 서울, 일본군의 미군포로 수용소가 38도선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38선은 적당하게 보였다. 미국은 즉각 소련에게 38도선까지만 내려오라고 권고했고 소련은 이를 수락했다. 그래서 맥아더 장군이 종전 직후 일반명령 1호로 38선의 존재를 선포한 것이다.
그런데 국내 종북 좌파들은 “맥아더가 38선 분단 집행의 집달리였다”는 주장을 서슴지 않음으로써 마치 미국이 이유 없이 38선을 긋고 한반도를 분단시키기나 한 것처럼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선동하고 있다. 당시 소련은 동유럽 각국을 위성국가로 만들기 시작하면서 동북아의 요충 한반도를 위성화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갖고 있었다. 따라서 미국이 38선을 획정, 한반도를 분단시킨게 아니라 38선을 그었기 때문에 남한만은 적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좌파 교사들은 또한 맥아더 장군의 포고문을 오역하고 왜곡해 교과서에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으로 가르쳐왔다. 고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사상적 대부였던 좌파 학자 리영희 교수는 유엔결의문을 오역해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합법정부가 아니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친 장본인이다.
다음은 서옥식 박사가 6.25전쟁 67주년을 맞아 전쟁의 성격을 왜곡하고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을 찬양, 미화, 옹호하고 있는 우리시대의 소위 종북-반미-진보좌파 인사들의 망언을 정리한 것이다.‘망언’(妄言)의 사전적 정의는 <이치나 사리에 맞지 아니하고 망령되게 말함. 또는 그런 말, 떳떳하지 못한 말, 사려깊지 못한 말, 경솔한 말, 허황된 말, 부적절한 말>이다. 영어사전도 우리말 사전과 그 뜻이 대동소이하다. thoughtless words(remarks, statements), recklesss remarks, improper remarks, ludicrous statements 등으로 나와 있다.(무순, 직책은 발언당시)
◈6.25전쟁 왜곡 망언
▲김대중 대통령=6.25는 실패한 통일전쟁(2001년 국군의 날 행사 기념사)
※이는 6.25를 ‘조국해방전쟁’으로 규정한 북한의 통일관이고 역사관이라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다. 6.25 전쟁이 북한의 통일 시도였다는 말은 국가지도자가 할 말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겪으며 죽고 다쳤다. 6.25전쟁이 통일 시도였다면 그런 말이 전쟁 피해자들에게 어떻게 들리겠는가. 북한이 무력을 사용해 남침한 것은 잘못됐다는 점을 분명히 짚고 넘어갔어야 했다. 북한에서 보면 6.25는 통일 시도겠지만 남한에서 보면 남침전쟁이다. 공산화 통일을 지향했다는 점에서 절대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전쟁이다. 우리 헌법의 기본 이념은 자유민주주의다. 국민 대다수는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한다. 김대통령은 자유민주의를 근간으로 한 우리 헌법 기본정신을 흔드는 발언을 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6.25 전쟁은 내전(2006년 11월 20일 캄보디아 동포 간담회).
※노무현 대통령은 당시 간담회에서 ‘킬링필드’(Killing Field)로 상징되는 캄보디아의 내전을 상기시키며 6.25전쟁을 ‘내전’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6.25전쟁을 내전으로 보는 역사관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내전이란 말을 쓰게 되면 북한의 침략으로 일어난 6.25전쟁의 책임을 남북이 나눠져야 한다. 6.25에 대한 노무현대통령의 이같은 역사관은 국내 좌익과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역사관과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것이다. 6.25전쟁은 북한이 소련과 중공이라는 두 공산주의 국가의 사주를 받아 김일성이 일으킨 침략전쟁(남침전쟁)이지 내전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유엔 감시하의 자유선거 후 유엔총회 승인을 거쳐 탄생했지만, 북한은 반국가단체에 불과했다.
▲노무현 대통령=북한은 패전당사자 아니다...6.25남침 사과 받으라는 것은 비현실적(2007년 10월 19일 청와대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전에 6.25 전쟁에 대한 북측의 사죄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CNN 기자의 질문에)
▲노무현 대통령=(6.25전쟁 모의에 가담하고 개입한) 마오쩌둥을 존경한다(2003년 7월 10일 중국 CCTV 방송 인터뷰)
▲노무현 대통령=한국에서도 공산당이 허용될 때라야 비로소 완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2003년 6월9일 일본 방문 중의원 의장 주최 간담회에서 일본 공산당의 시이 가즈오(志位和夫)위원장에게)
▲문재인 대통령=...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지킨 것은 독립운동가들의 신념이었습니다. 항일 의병부터 광복군까지 국권회복과 자주독립의 신념이 태극기에 새겨졌습니다... 38선이 휴전선으로 바뀌는 동안, 목숨을 바친 조국의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전선을 따라 늘어선 수백 개의 고지마다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찾고자 피 흘렸던 우리 국군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짧았던 젊음이 조국의 땅을 넓혔습니다... 무엇보다, 애국의 역사를 통치에 이용한 불행한 과거를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전쟁의 후유증을 치유하기보다 전쟁의 경험을 통치의 수단으로 삼았던 이념의 정치, 편가르기 정치를 청산하겠습니다(2017년 6월 6일 제62회 현충일 추념사)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에 대해 국내 언론들은 한결같이 감동적인 글이라고 칭찬했지만 ‘6.25 전쟁’이나 ‘한국전쟁’ 등의 표현을 쓰지 않았고 전쟁의 책임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있다. 또한 피흘려 대한민국을 구해준 미군과 유엔군에 대해 한마디 고마움의 언급도 없다는 지적을 받고있다. 이 모두가 북한을 ‘배려’한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6.25전쟁’이라는 표현을 쓰면 그 책임은 김일성과 북한정권에 있다. 하지만 ‘38선’, ‘휴전선’ 하면 그 책임은 ‘미국’에게 있다는 얘기가 된다. 왜냐하면 대일전(對日戰)에 참가한 소련의 한반도 남하를 저지하기위해 38선을 그은 당사자는 어찌됐건 미국이고, 정전협정을 통해 중공, 북한과 함께 휴전선을 획정한 나라도 미국이기 때문이다.
피터 김 ‘미주 한인의 목소리’(VoKA: Voice of Korean Americans)회장은 미 캘리포니아 소재 ‘생명줄성결회’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lifelineholiness.org)에 6월 11일자로 올린 ‘文의 교묘한 국군의 희생 모독 및 미국 때리기 수법’이란 제목의 글에서 ‘38선’과 ‘휴전선’이 미국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 일부러 6.25라는 표현을 쓰지 않은 것 같다고 분석하고 이는 문 대통령의 ‘친북반미’ 성향을 나타내는 대목이라할 수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6.25란 표현을 쓰지않은 것은 북한과의 대화를 강조해온 문대통령이 일부러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위해서라는 분석도 나오고있다. 역대 대통령들도 남북 간 분위기가 좋거나 대화 국면일 땐 6.25전쟁이란 표현을 현충일 추념사에 넣지 않았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6년 현충일 추념사에서 6.25전쟁이란 표현을 쓰지 않았다. 당시는 남북한이 러시아 극동지역 자원분야 공동진출 및 개성공단 통행 절차 간소화 문제 등을 논의하고 있던 때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9년 현충일 때 6.25 표현을 뺐다. 이때도 남북이 개성공단 관련 협의를 하기 위해 51일 만에 접촉하는 등 분위기가 전환되고 있었다.
피터 김 회장은 또 문대통령이 6.25전쟁에서 희생된 선배 장병들의 희생의 의미와 정신을 교묘한 어법으로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수백개의 고지마다 한뼘의 땅이라도 더 찾고자 피흘렸던 우리 국군... 그들의 짧았던 젊음이 조국의 땅을 넓혔습니다”라고 말함으로써 국군의 희생을 칭송하는 듯한 표현을 썼지만 결과적으로 국군의 희생을 깎아 내린 말을 한 것이라고 했다. 6.25때 국군이 목숨을 버리면서도 싸운 것은 북한과 중국 공산침략자들을 물리치고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것인데도 추념사를 보면 북한인민군이나 중공군에 대한 언급없이 한뼘의 땅이라도 더 넓히기 위해 싸운 것 처럼 돼있다고 지적했다.
피터 김은 또한 현충일은 전몰장병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추모’가 먼저인데도 문 대통령은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 얘기부터 제일 먼저 거론함으로 국군장병 희생의 중요성을 부각시키지못하고 희석시켜버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독립 운동가와 그 후손들도 현충일에 ‘추모’와 ‘경의’를 받아야 하는 것은 마땅하지만 현충일에 추모해야 하는 ‘주인공’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바쳐 산화한 군인들이 첫째이며 그래서 대통령은 무명용사비에 헌화한다” 라고 말하고 “현재 국립묘지(현충원)에 있는 대다수의 묘소는 나라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산화한 ‘국군장병’들의 것 아닌가”고 반문했다.
문 대통령의 추념사는 일제로부터 한국의 해방을 위해 도운 미국, 그리고 6.25때 피훌려 대한민국을 지킨 미군과 유엔군의 이야기가 빠져있다는 지적을 받고있다. 이 또한 문 대통령의 친북반미성향을 드러낸 것이란 풀이다. 피터 김 회장은 “현충일에 대한민국의 해방과 독립을 거론하려면 미군의 희생도 거론해야 한다. 2차 대전때 미군의 희생으로 한국이 해방되고 독립이 된 것은 역사적 사실 아닌가? 6.25전쟁에서 북한군과 중공군을 물리치고 한국을 지켜준 것은 미군과 유엔군의 희생위에서 이룩된 것 아닌가? 왜 그에 대한 언급은 없는가”고 말했다.
피터 김 회장은 이어 문대통령은 “애국의 역사를 통치에 이용한 불행한 과거를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전쟁의 후유증을 치유하기보다 전쟁의 경험을 통치의 수단으로 삼았던 이념의 정치, 편가르기 정치를 청산하겠습니다”라고 말함으로써 아직도 6.25전쟁 상이용사들이 때때로 국가가 어려울 때 휠체어에 의지하여 거리로 나서 애국심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는데 그것을 ‘이념에 이용되고 있다고 보는것인가?라고 말했다.
한편 바른정당 주호영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7일 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가 유엔 참전군, 북한정권, 한미동맹에 대한 언급이 없어 3가지 중대한 문제점이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6.25전쟁에 참전해 대한민국을 지키려고 목숨을 희생한 유엔군에 대한 언급이 없었고, 6.25를 비롯한 각종 도발을 일으켜 무고한 희생자를 내 현충일을 만들게 한 장본인인 북한의 3대 김 씨와 북 정권에 대한 단호한 경고 한 마디 없어 아쉽다고 지적했다. 또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로 인한 한미관계 균열 시점에, 추념식에 한미연합사령관도 참석했는데 한미동맹에 대한 신뢰와 굳건함을 표시 안 한 것은 아쉽다며 “어떠한 이유로 이 3개가 빠졌는지 청와대에 묻는다”고 말했다.
▲강정구 동국대 교수=6.25는 북한 지도부가 시도한 통일전쟁이자 내전(2005년 7월 27일 인터넷 매체 ‘데일리 서프라이즈’에 올린 글)
▲강정구 동국대 교수=6.25가 국제법 기준으로 ‘내전’인지 ‘침략전쟁’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6.25가 남한의 공식 규정인 침략규정이라 하더라도 통일전쟁이나 민족해방전쟁이 될 수 있다(2005년 9월 30일 민교협 주최로 열린 ‘요동치는 한반도 어디로 가나’ 토론회)
▲강정구 동국대 교수=우리는 광복후 공산주의를 택했어야 했다. 6.25전쟁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으면 한달안에 전쟁은 끝났고 인명피해는 1만명이하였을 것이다(2005년 9월 30일 민교협 주최로 열린 ‘요동치는 한반도 어디로 가나’ 토론회)
▲강정구 동국대 교수=한미동맹은 본질적으로 반민족적, 예속적, 반평화적, 반통일적이다. 한반도의 자주적 역사행로를 가로막고 평화권을 침탈한 전쟁주범은 미국과 주한미군이다. 6.25 전쟁에서 전쟁전후에 희생당한 약 2백만 명, 학살당한 약 1백여만 명, 중국군 약 90만 명, 미군 등 5만-6만 명 등 총 4백만 명에게는 미국이 원수다.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전쟁은 한달 이내에 이승만 정권의 몰락으로 끝났을 것이고 사상자는 남북한 주민(군인,경찰) 1만 명 미만에 불과했을 것이다(2005년 9월 30일 민교협 주최로 열린 ‘요동치는 한반도 어디로 가나’ 토론회)
▲강정구 동국대 교수=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공산화됐을 것이기에 결과적으로 잘됐다고들 하는데 당시 조선 사람들은 공산주의를 자본주의보다 훨씬 더 좋아했다. 1946년 8월 미군정이 전국 8천 45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공산 -사회주의에 대한 지지 세력이 77%였고 자본주의 지지는 14%였다...공산주의든 무정부주의든 그 당시 조선사람 대부분이 원하는 것이면 응당 그 체제를 택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2005년 9월 30일 민교협 주최로 열린 ‘요동치는 한반도 어디로 가나’ 토론회)
▲강정구 동국대 교수=미국 때문에 제2의 청일전쟁이 한반도에서 발발할지 모른다. 대만이 독립선언을 하게 되고 중국이 침략하게 된다면 한반도는 미국의 최전방기지로서 대중국 침략전쟁의 발진기지가 된다. 그런데도 주한미군에게 대중국 침략기지가 될 평택 땅 8백만평을 바치고 기지 이전 비용 5조5천억이라는 돈까지 부담한다. 이는 자기분열증적이고 숭미(崇美) 자발적 노예주의며 제2의 청일전쟁을 자초하는 자살정책이다...이제는 한미 동맹을 철폐하고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는 새 판짜기를 해야 한다(2005년 9월 30일 민교협 주최로 열린 ‘요동치는 한반도 어디로 가나’ 토론회)
▲강정구 동국대 교수=한미동맹이 없었더라면 친일파 청산, 통일국가 수립, 민족정기 확립 등 해방공간의 민족사적 핵심과제들이 좌절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박관용 전 국회의장, 조순형 전 민주당 대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이회창 전 총재 같이 친일파의 후손들이 활개 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자발적 노예주의적 발언을 서슴치 않는 일제 헌병 오장의 아들 신기남 전 여당 대표도 존재치 않았을 것이다... 한미동맹은 한국사회 주류의 심성을 ‘자발적 노예주의’로 만들었다. 한미동맹이 없었다면 지난 1-2년 사이 소위 ‘반핵반김세력’들이 전쟁광 부시의 사진과 성조기를 들고 서울시청 앞에서 활개 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2005년 9월 30일, 민교협 주최로 열린 ‘요동치는 한반도 어디로 가나’ 토론회)
▲김영승(미전향장기수)=6.25는 위대한 민족해방전쟁, 김일성은 ‘수령님’, 김정일은 ‘장군님’(자신의 블로그(http://blog.voiceofpeople.org/kimys3587)를 통해 각각 쓴 ‘피로 물든 불갑산은 말한다’(2006년 1월 16일), ‘남조선 혁명열사 박영발 동지 52주기를 맞이하여’(2006년 3월 5일), ‘역사기행과 열사묘소 참배’(2006년 4월 30일)라는 제목의 글에서 빨치산을 미화하며)
※김영승씨는 1935년 8월 7일, 전라남도 영광군 묘량면 삼학리 신성부락에서 7남매 중 3남으로 태어났다. 국정원 자료에 따르면 김영승씨는 “6·25 때 노동당에 입당한 후, 20여회 민가에 침입해 식량 등을 강취하고, 군부대를 습격하여 국군 5명을 살해한 자”로 기록돼 있다. 김씨는 중학교를 다니던 1950년 15세에 ‘소년 빨치산’으로 입산했다. 1954년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은 후 감형됐다가 1989년 출소했다. 현재 비전향장기수 모임인 통일광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씨는 소설 ‘태백산맥’의 실제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다. 조국 청와대민정수석은 서울대 교수 시절이던 2007년 6월 25일 ‘한겨레신문’에 쓴 자신의 칼럼에서 김영승씨가 김일성을 ‘수령님’으로 부른 것은 단순한 ‘친북적 표현행위’라며 김씨를 옹호했다.
▲이재정 통일부장관 지명자(현 경기도 교육감)=(6.25는 남침인가?라는 질문에) 규정해서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2006년 11월 18일 국회 통외통위 인사청문회)
▲이정희 민주노동당대표=6.25가 남침인지, 북침인지는 좀 더 치밀하게 생각해서 나중에 답하겠다(2010년 8월4일, KBS 라디오 ‘열린토론’에서 ‘6.25가 남침이냐, 북침이냐’는 청취자의 질문에)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6.25를 전후로 진정한 애국자들과 양심적 지도자들은 남한을 버리고 북으로 갔다...이북에서는 새나라 건설을 위해서 ‘새술을 새 부대’에 담는 민족정기가 넘쳐있는 데 같은 시각 남한은 ‘썩은 술을 낡은 부대’에 그대로 담고있는 꼴이었다(2007년 4월 19일 한겨레통일문화상 시상식)
▲장영달 열린우리당 최고위원=맥아더 장군 동상철거주장은 민족적 순수성(2005년 9월 12일 인천 맥아더동상 철거논란과 관련)
▲강희남 목사(대법원에서 이적단체판결을 받은 전 ‘우리민족연방제통일추진회의’ 의장)=6.25당시 맥아더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우리는 양키의 식민지 지배를 받지않고 살 수 있었다(2005년 5월 19일 ‘통일뉴스’ 인터뷰)
◈김일성의 유훈-연방제 통일방안 옹호 지지 발언
▲노무현 대통령=우리의 통일은 독일처럼 흡수통합이 아니라 남북 지방정부를 전제로 한 국가연합이 바람직하다...통일수도는 판문점이나 개성 일대에 서울이나 평양보다 규모가 작게 대단히 상징적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국가연합의 사무국과 의회 등이 여기에 건설되고, 대부분의 권한과 행정은 지방정부가 각기 해 나가는 것이 장기적인 통일과정에서 합리적일 것이다(2004년 2월 24일 전국에 생중계된 방송기자클럽 초청 기자회견에서 ‘고건총리가 최근 통일수도로는 서울이 좋다고 말했는데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 발언의 문제점은 ‘지방정부’라는 대목이다. 남북한의 두 정부가 지방정부가 되고, 공동의 사무국과 의회 등을 두자는 안은 바로 북측의 연방제통일방안(1민족 1국가 2정부 2체제)이다. 남측의 국가연합방안은 ‘1민족 2국가 2정부 2체제’로, 남북의 두 정부는 각각 주권국가이지 결코 지방정부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그의 발언은 실정법상 헌법위반이다. 북한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할 수는 있지만 국가로 승인하겠다는 말은 헌법을 고친 후에나 해야 한다. 이는 북한을 주권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헌법 3조의 영토조항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러나 당시 보수언론이라는 조선, 동아를 포함한 모든 언론들은 노 대통령의 이 말에 대해 ‘수도’ 문제만 문제제기를 했을 뿐 그 말이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국가연합제의 실시라는 무시무시한 얘기에 대해서는 침묵해버렸다. 노 대통령의 말은 남한과 북한간의 국가연합이 이루어질 것이며, 이에 따라 대한민국은 연합제하의 일개 지방정부로 전락할 것이라는 경천동지할 내용이다. 이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영토로 하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사라진다는 의미다
▲노무현 전 대통령=통일위해서는 ‘대한민국과 대한민국헌법’수호라는 금기 깨야(2008년 10월 1일 서울 밀레니엄 힐튼호텔에서 개최된 ‘10.4 남북정상선언 1주년 기념 학술회의’ 격려사)
▲노무현 전 대통령=진심으로 (남북한의)통합을 성취하고자 한다면 주권의 일부를 양도할 수도 있고, 양보가 항복도 이적행위도 아니라는 인식을 수용해야 한다(2008년 10월 1일 서울 밀레니엄 힐튼호텔에서 개최된 ‘10.4 남북정상선언 1주년 기념 학술회의’ 격려사)
▲노무현 전 대통령=흡수통일 주장하는 사람들은 생각이 짧은 사람들(2008년 10월 1일 서울 밀레니엄 힐튼호텔에서 개최된 ‘10.4 남북정상선언 1주년 기념 학술회의’ 격려사)
▲노무현 전 대통령=통일 이후의 체제를 자유민주주의로 해야 한다거나, 남북회담의 과정에서 ‘정체성’을 유지해야 한다거나 하는 소모적인 체제논쟁은 그만두어야 한다(노무현 민주당 의원, 2000년 8월28일 A4 용지 한 장 분량의 小品(소품)
▲노무현 대통령=연방제로 가는 통일방안을 바꿀 아무런 이유 없다(2007년 10월 19일 청와대 인왕실에서 손지애 CNN 서울지국장 등 주한 외신기자들과 가진 간담회)
▲노무현 대선후보=왜 우리가 북한의 대남적화통일을 전제로 연방제를 해석하느냐(2002년 5월 14일 관훈클럽 초청토론에서 동아일보 남찬순 위원의 질문을 받고)
▲노무현 대통령= 흡수통일 없을 것이므로 독일식의 통일비용 없다( 2007년 10월 19일 청와대 외신기자 간담회)
※국가연합은 남한이 1989년 9월 11일 발표한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민족공동체헌장 채택 →남북연합→통일헌법 제정으로 통일민주공화국 건설)이래로 추진하는 통일 방안이고,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북한이 1973년부터 주장한 고려민주연방공화국안을 느슨한 형태로 개정하여 추진하는 통일 방안으로,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제2항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 국방위원장 김정일은 이 둘이 공통성이 있다고 합의한 바 있다. 이러한 통일방안 합의는 노무현 정부시절의 2007년 10.4남북공동선언에서 재확인 된다.
그러나 연합은 유럽연합과 같이 중앙정부의 구속력이 약한 복수 국가들의 연합 체제이고, 연방은 미국과 같이 중앙 정부가 지방정부들을 상당 부분 통제하는 단일국가 체제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북측의 연방제 통일방안은 적화통일이 목적이고, 남측의 통일방안은 자유민주통일이 목적인 만큼 공통점이 있을 수 없다. ‘낮은 단계 연방제’는 북한과 남한 내 종북진영의 전형적인 공산 통일 논리다. 북한의 통일방안인 연방제는 ‘과도적 연방제(1960년)’→‘고려연방제(1980년)’→‘낮은 단계 연방제(1991년)’로 변화해 왔다.
따라서 문후보가 옹호하는 ‘낮은 단계 연방제’ 역시 공산주의 통일 실현의 한 방법일 뿐이다. 김일성의 유훈이기도 한 고려연방제는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라는 논리에 따라, 낮은 단계의 연방제 수준으로 개정된 이후에도 북한은 대남적화(공산화)를 위해 끊임없이 남한에서의 국가보안법 폐지, 용공활동 허용등 공산주의 합법화, 주한미군 철수, 인민민주정권수립 등을 선결 조건으로 견지해 왔다. 이래서 이러한 통일방안 합의는 반헌법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에 따르면 6.15 선언에 언급된 남측의 연합제는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 만들어진 국가의 공식 통일방안 제2단계에 나오는 남북연합이 아니고 김 대통령의 사적인 3단계 통일방안(국가연합→연방제→완전통일)의 1단계에 나오는 연합제이다. 즉, 김정일과 김대통령은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와 김대통령 개인의 1단계 연합제를 연결시켜 헌법개정(국회의원 3분의 2찬성) 없이 ‘통일개시’를 선언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그래서 6.15 선언이 김대중-김정일 사이의 명백한 역모(逆謀)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무엇보다 김대통령이 국가 공식 통일방안을 무시하고 자신의 친북적인 ‘무허가 통일방안’을 평양에 가지고 가서 김정일의 적화통일방안과 합의한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남북한의 공식 통일방안에 공통성이 전혀 없는 데도 있다고 국민들을 속인 점도 큰 문제다. 이런 통일방안은 대한민국 헌법에 반하는 것인데도 문재인 후보가 2012년 대선때 정권을 잡으면 실현하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한국의 제도권 언론들은 이러한 문후보 주장의 문제점을 외면하거나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남북이 평화통일에 가까워졌다. ‘국가연합’ 혹은 ‘낮은단계의 연방제’에 이를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정도가 됐다. 하지만 지금은 통일은 커녕 전쟁을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2011년 2월 12일 ‘한국일보’ 인터뷰)
▲문재인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김대중 대통령이 꿈꾸셨던 국가연합 또는 낮은단계 연방제 정도는 다음 정부 때 정권 교체를 통해 반드시 이루겠다(2011년 8월 18일 현충원에서 열린 김대중 3주기 추도식)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6.15선언을 통해서 남북 간에 합의했던 통일방안이 국가연합인데, 이 국가연합을 경제 분야에서 부터 먼저 이루자는 것이다. 경제적인 국가연합을 먼저 이루고 나면 그 뒤에 군사, 외교, 정치, 이런 분야의 합의가 추가되면 그것이 국가연합이 되는 것이다(2012년 10월4일 문재인 후보-문정인 교수 대담 발언)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는 2012 대선 기간중 수 차례에 걸쳐 북한의 고려연방제 전 단계 전략인 ‘낮은단계연방제’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에 따르면 북한은 대한민국 영토 내에서 국가를 참칭하고 있는 반국가단체일 뿐이다. 따라서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거나 대한민국과 대등한 통일의 주체로 보는 것은 헌법위반일 뿐만 아니라 헌법파괴행위라 할 수 있다. 나아가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통일방안을 인정하게 되면 이는 명백한 국가반역행위가 된다.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고 남북 간의 대등한 ‘연합’을 의미하는 국가연합이나 대한민국을 북한과 같은 위치에서 일개 지방정부로 격하시키는 ‘연방제’는 우리 헌법을 근본부터 부정하는 발상이다.
2000년 6월15일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된 6.15공동선언은 제2항에서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점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겠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 조항은 비록 ‘낮은 단계’라는 수식어가 붙기는 했지만 북한의 한반도 공산화 통일방안을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유민주통일’을 규정한 헌법을 위반한 것이다.
북한의 ‘낮은단계연방제’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기존의 연방제와 달리 ‘선결조건’(주한미군철수, 국보법 폐지, 공산활동 합법화)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북한이 쳐놓은 함정이다. 남북한이 ‘낮은단계연방제’에 따라 통일을 하게 되면 하나의 국가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남한의 외국군(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자연스럽게 대두된다. 곧이어 남한에서는 국보법이 폐지되어 공산 활동이 사실상 합법화되고, 북한 정권을 고무-찬양하는 이적행위에 대한 처벌이 불가능하게 된다.
이처럼 ‘낮은단계연방제’는 북한의 연방제 공산화 통일 전략의 주요 단계로서 북한의 대남혁명 노선이라 할 수 있는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 실현을 위한 핵심 과정이다. 여기서 ‘민족해방’이란 북한 입장에서 남한 사회의 실질적 지배자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을 남한 땅에서 축출하고 소위 남한 민족의 해방을 이룬다는 의미이다. ‘인민민주주의 혁명’이란 미제(美帝)의 대리통치정권이라 할 수 있는 남한 정권을 남한 인민의 힘으로 타도하고 사회주의로 이행하기 위한 과도 체제인 인민민주주의 정권(자주적 민주정부)을 수립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민족해방’은 북한의 반미자주화 전술에 따라 미제축출(예: 한미연합사 해체, 주한미군철수)로 이어진다. ‘인민민주주의 혁명’은 ‘남한 정권 타도 후 인민민주주의 정권 수립’을 의미하며, 이후 2단계로 남북합작에 의한 사회주의 혁명을 진행시키겠다는 의도이다.
※북한은 6.15공동선언 제2항에 대해 대한민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통일방안인 연방제안에 합의해온 것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북한의 대남선전-선동 매체인 ‘반제민족민주전선’은 2005년 7월 17일자로 작성한 문건에서 “6.15공동선언 제2항을 실현하는 것은 낮은단계 연방제를 실현하는 것이며, 그것은 당연히 ‘고려연방제’(북한명칭: 고려민주연방공화국창립방안)로 가기위한 전술목표라고 밝혔다.
※‘낮은단계 연방제’의 실체는 통합진보당 내 최대 계파로 알려진 ‘경기동부연합’의 연계조직이었던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의 문건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전국연합은 1991년 출범 이래 줄곧 국보법 철폐, 주한미군철수, 6.15공동선언 2항의 실현인 ‘낮은 단계의 연방제’구현 및 자주적 민주정부(인민민주주의 정권)수립 후 1민족 1국가 2제도 2체제의 ‘연방통일조국건설’을 지향했던 단체이다. 헌법재판소는 2014년 12월 19일 통합진보당(통진당) 해산 결정을 선고하면서 “통진당 주도세력(국민연합)이 연방제 통일을 추구하고 있는데 ‘낮은 단계 연방제’ 통일 이후 추진할 통일국가의 모습은 과도기 진보적 민주주의 체제를 거친 사회주의 체제”라고 밝혔다. 이러한 헌재의 논리는 ‘낮은 단계 연방제’에 의한 통일은 결과적으로 남한 체제의 사회주의로의 변환이라 할 수 있다.
▲오종렬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현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연방통일조국을 실현하는 힘은 우리 위대한 민중들에게 있지만 그들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것은 굳건한 민족민주전선이다...식민지 지배질서가 온전하고 있는 우리사회에서 전민중의 전면적 항쟁은 미국의 식민지배와 분단장벽을 허물고 자주와 민주, 통일의 새 세상을 안아올 수 있는 지름길(2001년 9월 22-23일 충북보람원수련원에서 열린 ‘민족민주전선일꾼전진대회’에서 <3년의 계획, 10년의 전망 광범위한 민족민주전선 정당건설로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하여 연방통일조국 건설하자>는 이른바 ‘9월 테제’(별칭 ‘군자산의 약속’)를 채택하면서)
▲정세현 전통일부장관=김일성이 죽기 전 이미 ‘남북정부에 많은 권한을 주는 느슨한 연방제가 바람직하다’고 말했기 때문에 북측이 이건 못 고친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문구에 또 속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잘못 생각한 것이다(2004년 10월 6일 통일법 포럼 강연)
▲이종석 국방부 국방정책자문위원(전 통일부 장관)=민간 통일운동 진영이 흡수통일을 원한다면 연방제를 고집하라. 연방제가 실현되면 자유 왕래가 확산되는데 북한은 이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월간 ‘말’지 2000년 9월호 인터뷰)
▲서주석 통일부 통일정책자문위원(전 청와대 안보수석 비서관)=6.15남북공동선언 관련 첫 번째 항의 ‘자주통일’에 대해서 남북간 해석을 두고 분쟁이 일어날 것으로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2000년 6월 15일 한겨레신문 기고문)
▲강정구 동국대 교수=만경대정신 이어받아 통일위업 이루자(2001년 8.15축전행사 참가차 남측대표단의 일원으로 평양을 방문, 김일성 생가인 만경대 방명록에 남긴 글)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찬양 등 북한정권 지지 발언
▲김대중 대통령=김정일 총비서는 지도자로서의 판단력과 식견 등을 상당히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2000년 2월 9일 일본 도쿄방송 인터뷰)
▲김대중 전 대통령=(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총명한 사람이었고, 이쪽 말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면 그 자리에서 즉시 수용하는 결단력을 보였다(2006년 3월 21일 대구 영남대에서 명예 정치학 박사 수여식에 참석해 ‘남북의 화해협력과 민족의 미래’라는 주제로 행한 특별강연)
▲노무현 대통령=인공기와 김정일 위원장 초상화를 불사르는 것은 적절치 못한 행동 같다. 유감스럽고 앞으로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2003년 8월 19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
▲노무현 대통령=김정일 위원장이 오래 사셔야 인민이 편안해 진다(2007년 10월 평양방문 중 김영남 최고회의 상임위원장이 주최한 만찬에서 건배를 제의하며)
▲노무현 대통령=김정일은 북에서 가장 융통성이 있으며 유연하게 결정을 하고 대화가 되는 사람(‘성공과 좌절-노무현 대통령 못 다 쓴 회고록’ 중)
▲노무현 대통령=나는 외국정상들과 회담 때 북한측 대변인-변호인 노릇했다(2007년 10월 3일 김정일과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나는 국제회의와 정상회담에서 북한 변론가였다(2008년 10월 1일 서울 밀레니엄 힐튼호텔에서 개최된 ‘10.4 남북정상선언 1주년 기념 학술회의’ 격려사)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남북정상회담 때 북한에 직접 가지는 않았지만 전체 준비를 맡은 준비위원장을 했기 때문에 김정일 위원장 사망에 애도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김정일 사망 이틀 뒤인 2011년 12월 19일 노컷뉴스 코멘트)
한편 김정일 사망 후, 노무현재단에서 문재인이사장과 노 전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를 비롯한 김정일 조문단을 파견하기로 추진했으나 논란 끝에 실현되지 못했다. 문재인 이사장은 이해찬 전 국무총리, 정동영·이종석·이재정 전 통일부장관, 고영구·김만복 전 국정원장, 윤광웅 전 국방장관 등 참여정부 외교·안보 각료 출신들과 긴급 간담회를 가진 후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당시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이 발생한 지 얼마 안 되는 시점이라, 보수 단체 및 인사들을 중심으로 이같은 결정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커다란 반발이 일었다. 정부 여당은 국민정서를 고려해 정부와 국회 차원의 조문은 하지 않기로 하고, 민간 차원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의 유족 조문만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나창순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의장=김일성 주석의 통일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 김정일 총비서를 ‘민족의 영수(領首)’로, ‘조국통일의 구성(救星)’으로 충직하게 받들자(1999년 8월 8일 범민련 남측대표 자격으로 북한을 불법 방문해 결의한 내용)
▲황석영(소설가)=김일성은 을지문덕, 이순신, 세종대왕 같은 위인(1989년부터 1991년까지 다섯 차례 밀입북(密入北)하고, 일곱 차례 김일성을 만난 뒤, ‘노둣돌’이라는 잡지의 1992년 창간호 인터뷰에서. 이 같은 언급은 그가 1989년 북한을 다녀와서 쓴 북한방문기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책에도 실려 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김일성 주석은 비록 이북의 역사가들이 주장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조선인민혁명군을 이끌고 일본군을 삼대 쓸 듯 물리치며 군사적 해방을 쟁취한 짜릿한 순간을 연출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 세계사에서 이 수준의 혁명을 달성한 지도자는 몇 안 된다 - 분명히 혁명의 창건자로서 위치를 누릴 수 있었다. 혁명의 창건자, 이는 스탈린이나 덩샤오핑도 넘볼 수 없는, 한 나라에서 오직 한명의 혁명가만이 누릴 수 있는 자리였다...김일성은 1992년 자신의 80살 생일을 맞이하여 <세기와 더불어>라는 이름의 회고록을 펴냈다...<세기와 더불어>라는 제목이 상징하듯 김일성은 20세기의 인간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부국강병에 기초한 근대화를 추구한 20세기형 민족주의자였다. 그는 누구보다 철저한 실용주의자였다. 덩샤오핑은 쥐를 잘 잡는다면 검은 고양이면 어떻고 흰 고양이면 어떻냐는 흑묘백묘론을 설파하여 유명해졌지만, 많은 사람들은 김일성이 그보다 25년 전에 밥만 잘 먹을 수 있으면 되었지 왼손으로 먹건 오른 손으로 먹건 무슨 상관이냐는 말을 하였다는 것을 기억하지 않는다(2004년 7월 8일 ‘한겨레21’에 기고한 칼럼)
▲윤민석(친북-반미-반정부 노래와 촛불집회 주제가 전문 작곡가)=혁명의 길 개척하신 그때로부터 오늘의 우리나라 이르기까지 조국의 영광위해 한생을 바쳐 오신 (김일성) 수령님 그 은혜는 한없습니다, 언제라도 이 역사와 함께 하시며 통일의 지상낙원 이루기까지 조국의 영광위해 한생을 바쳐 오신 수령님 그 은혜는 한 없습니다(김일성 생일을 축하하기위해 1991년 11월 만든 ‘수령님께 드리는 충성의 노래’)
▲윤민석 =조국의 하늘 그 위로 떠오는 붉은 태양은 온 세상 모든 어둠을 깨끗이 씻어주시네. 아 김일성 대원수 인류의 태양이시니 여 만년 대를 이어 이어 충성을 다하리라(1992년 4월에 김일성의 대원수 직위 추대를 축하하기 위해 만든 ‘김일성 대원수는 인류의 태양’ 중 일부. 이 두 노래는 북한 당국에 보고된 것으로 1993년 3월 안기부가 발간한 ‘남한 조선노동당사건 수사백서’에 기록돼 있다)
다음은 '평양에 가보세요' 중 일부.
▲윤민석=사는 게 힘들다 느낄 땐 평양에 가보세요. 어려워도 웃으며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 있죠. 사람의 정이 그리울 땐 평양에 가보세요. 평양에 꼭 가보세요 고향가는 마음으로(‘평양에 가보세요’에서)
윤민석은 한양대 무역학과 84학번 출신으로 1992년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에서 노동당 중부지역당 산하 단체인 ‘애국동맹’에 가입해 김일성 찬양노래를 작곡, 유포한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는 등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4차례나 구속된 좌익선동꾼이다. 그의 이름으로 된 시와 노래는 효선-미선양 추모 촛불집회, 노무현 대통령 탄핵반대촛불집회, 광우병촛불집회, 세월호 유족 등의 단식 농성집회, 박근혜 대통령 탄핵-구속촉구 촛불집회장에 어김없이 등장했다. 윤씨는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이전에도 ‘전대협진군가’, ‘가두투쟁가’ 등 총 35곡의 운동권가요를 작곡했다. 2002년 효순이·미선이 촛불시위 당시에는 ‘fucking U.S.A.(미국 엿 먹어라)’, ‘또라이 부시’, ‘기특한 과자’, ‘반미반전가’, ‘반미출정가2002’, ‘전쟁 한번 합시다’, ‘주한미군에게 고함’, ‘결전가’, ‘범민련진군가’, ‘날아라 한총련’ ‘한민전(조선노동당의 대남선전기구인 한국민족민주전선, 현 반제민전)찬가’, ‘한민전10대 강령’ 등 일련의 친북-반미가요를 만들어 유행시켰다. 그는 또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반대집회에서 탄핵반대집회의 주제가 역할을 해 온 ‘너흰 아니야’를 비롯해 ‘탄핵무효가’, ‘헌법 제1조’, ‘격문1’, ‘격문2’ 등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이 외에도 ‘편지 시리즈’, ‘연대투쟁가’, ‘꽃다지 2’, ‘진짜 노동자’, ‘서울에서 평양까지’, ‘평양에 가보세요’, ‘전사의 맹세’, ‘애국의 길’,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하늘’, ‘사랑하는 동지에게’, ‘경의선 타고’.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등이 있다. 윤민석은 2008년 통합민주당, 국민참여당, 민주통합당 당가(黨歌)와 문성근이 주도한 ‘백만민란 운동’의 대표곡 ‘하나가 되라’를 만들었다.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터져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이게 나라냐 ㅅㅂ’이라는 노래를 작곡, 촛불집회 현장에 유행시켰다. 이 노래는 시위현장에서 늘품체조와 엮여 쓰이기도 하며 일본 방송에 소개되기도 했다. 특히 “야비한 나라, 더러운 나라, 분단의 원흉 fucking U.S.A. 우리가 식민지 나라의 노예인가. 이제는 외치리라 미국반대. 아직도 북한이 죽여야 할 적인가. 이제는 외치리라 양키 고 홈”이라는 ‘fucking U.S.A’라는 노래를 비롯 그가 지은 친북-반미 시(詩)들이 세월호사고나 다른 촛불시위와 관련 없는데도 세월호 유족들의 농장장과 기타 촛불시위현장에 붙여져 눈길을 끌었다. 한국의 제도권 언론 대부분은 이러한 윤씨에 대한 노래나 그의 과거 행적에 대해서는 제대로 소개하지 않았다.
▲문성인 전 민주노동당 대표(2012년 대선 직전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함께 구성한 ‘정권교체와 새정치를 위한 국민연대’ 공동대표)=그동안 북한을 포위 고립해 압살하려는 미국의 기류가 작년 북한의 과감한 핵실험으로 무력화됐고, 이후 평화의 길로 들어섰다. 이것은 북이 모진 고난을 딛고 일어난 성과다...작년 북핵실험 때 모든 언론과 정치계가 북을 비난했을 때 민주노동당만이 비난하지 않았다...미국이 강요하는 일방적이고 악랄한 한미동맹을 끝내는 투쟁으로 가야한다. 한미군사훈련을 민주노동당이 앞장서서 저지시키고 미군철수를 위해 앞장서겠다(2007년 8월 15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8.15민족통일대회”연설. 문재인 후보의 ‘국민연대’는 문성현, 노회찬, 이인영, 임수경, 강만길, 한홍구, 황석영씨 등 김일성 찬양론자, 국가보안법 폐지론자,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도발 불신론자, NLL 부정론자, 한총련 합법화론자 등 온갖 김일성주의자와 종북주의자들로 구성됐다)
▲정동영 민주당 대선후보=김정일 위원장을 ‘실패한 지도자’로 규정한 이명박 후보의 발언은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보다 위험하고 무책임한 발언(2007년 10월21일 정동영·이해찬 회동)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전 상지대총장)=김일성 전 주석의 항일 빨치산 운동도 독립운동으로 봐야 한다(광복 60년 기념사업 추진위원장 자격으로 2005년 4월 11일 임시정부 수립 86주년 기념식의 상하이 개최와 관련한 기자간담회)
▲조국 서울대 교수=김일성 삼촌이건 누구건 일제 하 민족해방투쟁에 헌신한 분들의 공은 인정돼야 하고 이분들에 대한 서훈은 확대돼야 한다(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2016년 6월 28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가보훈처 업무보고에서 보훈처가 동족학살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 삼촌 김형권에게 2010년, 외삼촌인 강진석에게 2012년 각각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는 등 김일성 친인척에게 서훈한 것을 비판한데 대해)
▲정동영 민주당 의원=김정일 위원장은 소탈하고 솔직하며 시원시원하게 합의하고 이끌어내는 스타일(2007년 8월 8일 증권선물거래소 방문 시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
▲도올 김용옥 세명대 석좌교수(철학자)=민족의 문제를 위해서 당신(김정일)도 사상가고 나도 사상가인데, 여기 김정일 위원장이 쓴 주체철학의 대화라는 책을 가지고 왔는데 이 양반도 사상가란 말이다. 유물철학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견해가 대단하다(2007년 10일 7일 방송된 KBS 일요스페셜 ‘남북정상회담 특별기획·도올의 평양이야기’에서)
※ 김정일이 쓴 논문은 1964년에 나온 ‘사회주의 건설에서 郡(군)의 위치와 역할’이라는 대학졸업 논문뿐이다. 김정일 명의로 된 나머지 모든 논문들은 모두 황장엽을 비롯한 철학자들과 당 선전선동부, 문서관리실에서 썼다. 대학졸업 논문도 사실은 지도교수가 대신 써준 것이다.
▲도올 김용옥=국민대중(북한주민)이 당의 지도를 받는다. 당의 지도는 수령의 지도를 받는 것이다. 이는 너무나 명백한 것이다. 북한은 모든 국정을 한 사람의 판단력으로 움직인다. 그런 의미에서는 김정일 위원장이 판단력이 있는 분이니 북한사회를 이끌어 주길 우리는 바란다(上同)
▲도올 김용옥=노무현 대통령이 (북한에 가서)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을 기원한 것은 현명한 발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보니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를 태음인(太陰人)으로 봤는데 포도주를 절제해 주셨으면 좋겠다(上同)
▲도올 김용옥=아리랑 축제 한번 봐야 한다. 인간이 하는 쇼로서는 최상의 쇼다. 그런데 아리랑은 쇼가 아니다. 그 사람들의 삶이다. 이를 위해 매일매일 훈련할 것이고, 이 같은 참여를 통해 일체감을 얻고 그들의 가치관이 형성된다. 모든 전국의 인민들이 모여 쇼를 보면서 우리는 주체적으로 의식적으로 자발적으로 창조적으로 능동적으로 이 세계를 개혁해나간다. ‘굶어죽어도 좋다 우리는 도덕적으로 명예롭게 살자. 잘 사는 게 뭐가 중요하냐’고 북한주민들은 느낀다. 어마어마한 가치의 세계다. 이는 쇼가 아닌 삶의 양식이다. 여러분들이 꼭 가서 봐야만 이해가 된다(上同)
※아리랑공연은 북한정권의 체제선전극일만 아니라 아동까지 체제선전과 외화벌이 수단으로 삼는 ‘아동착취극’ 내지 ‘아동학대극’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연습 중 쉴 틈을 주지 않아 남녀노소할 것 없이 용변은 그 자리에서 해결해야한다. 여성들은 간이 칸막이를 만들고, 남성들은 비닐 주머니를 사용한다. 문제는 이 같은 학대와 고역으로 돈을 버는 주체는 김정일의 로동당이라는 데 있다. 탈북자들은 거의 1년 내내 계속되는 훈련의 강도가 너무 심한데다, 한 사람이라도 기계적인 동작을 익히지 못하면 그가 속한 단위(팀) 전체가 휴식 없이 훈련을 받아야하므로 온갖 욕설과 구타가 난무 한다고 말한다.
▲이정희 민주노동당대표=(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이 나와 민주노동당의 판단(2010년 10월8일 자신의 다음 블로그에 올린 글)
▲문정현(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나 역시 북한을 방문하였을 당시 만경대에 가서 “김일성 장군 조금만 오래 사시지 아쉽습니다”라고 썼다(2002년 5월 22일 경북대학교 ‘제1기 통일아카데미’ 강연에서 자신이 1998년 통일대축전 참가차 평양에 갔을때 만경대 방명록에 이같이 썼다고 고백)
▲문규현(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김일성 주석의 영생을 빈다(1998년 평양통일대축전에 참가해 김일성 시체가 안치된 금수산 궁전 방명록에 기록)
▲김기종 우리마당 독도지킴이 대표(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살인미수 혐의자)=남한에 김일성 만한 지도자가 없다(김씨 살인미수사건 수사본부장 김철준 경무관은 2015년 3월 13일 범인 김씨를 살인미수혐의 등으로 검찰에 구속송치하면서 김씨가 수사과정에서 이같이 말했다고 기자들에게 밝혔다)
▲정동영 통일부장관=김정일 위원장은 통 큰 지도자라고 밑에서 얘기하고, 노무현 대통령은 화끈한 지도자라고들 한다( 2005년 10월 31일 서강대 특강)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현 서울시장)=광화문 네거리에서 ‘김일성 만세’ 부르면 어떻게 하느냐는 우려는 헌법에 나와있는 표현의 자유를 포기하고, 이를 억압하겠다는 뜻( 2004년 9월 24일 미디어오늘 인터뷰)
▲이종석 남북정상회담 대통령 특별수행원(전 통일부 장관)=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합리적이고 결단력 있는 지도자라고 느꼈다(2000년 6월 17일 중앙일보 보도 ‘방북 뒷이야기’에서)
▲정세현 경희대 객원교수(전 통일부장관)=김정일 위원장은 남한 국민에게 예의 바른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북한을 정상적 대화가 가능한 상대로 인식토록 할 것이다(2000년 6월 13일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보일 태도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인민의 행복이 나오는 인민주권의 전당...인민은 위대하다(2007년 10월 북한방문 중 만수대의사당과 서해 갑문을 각각 방문하면서 방명록에 남긴 글)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10월 2일 우리의 국회에 해당하는 평양 만수대의사당을 방문하면서 방명록에 “인민의 행복이 나오는 인민주권의 전당”이라고 쓴데 이어 10월4일 서해갑문을 시찰하는 자리에서는 “인민은 위대하다”는 글귀를 남겼다.
▲허문영 통일연구원 기획조정실장=많은 사람들이 김정일에 대해 단순히 ‘포악하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김정일은 등소평이 되길 원한다( 2002년 8월 28일 방미중 ‘The Korea Weekly of Florida’ 인터뷰)
▲한상렬 목사(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북한의 선군정치는 남쪽을 향한 것이 아니라 미제국주의와 싸우기위한 한반도 평화정치다(2004년 8월 8일 평택 팽성읍 농협앞 주한미군 철수 결의 대회)
▲천정배 민주당의원=이명박 정권이 북한체제 붕괴론에 근거해 비현실적인 대북정책을 펴고있다(2010년 6월 15일 자신의 티스토리 블로그에 올린글)
▲조정래(소설 ‘태백산맥’의 저자)=(김일성 동상의 꽃을 보며)저 꽃송이에 담긴 인민의 순결한 마음 그 자체야 왜곡할 건덕지가 없지요(2007년 10월 4일 노무현대통령의 평양방문에 동행, 김일성 동상밑에 놓인 꽃다발은 보며 옆에 있던 철학자 김용옥씨에게 한말)
▲황선(39) 전 민주노동당 대변인=(노무현 대통령을 ‘서울 할아버지’로 지칭하면서) 내 아이가 태어났을 때 참 기뻐하셨던 ‘평양 할아버지’(김정일을 지칭)가 2011년 12월 17일 돌아가셨다는 뉴스를 보며 평화를 먼저 배운 아이들이 ‘평양 할아버지’한테 절하러 안 가?(2005년 만삭의 몸으로 방북해 평양산원에서 딸을 낳아 화제가 됐던 황씨가 김정일 사망 직후 인터넷 매체 ‘자주민보’에 기고한 ‘내가 방북신청을 한 이유’라는 제목의 글)
▲신은미(재미 종북인사)=개성공단을 북녘의 돈줄로 생각하는 이 천박한 정권아. 남과 북이 마지막으로 잡고있던 손마저 잘라버리는 이 악랄한 정권아. 너희들이 사이비 언론들을 동원해 무려 두 달 동안이나 나를 종북몰이하고, 출국을 금지하고, 검경을 동원해 수사놀음을 벌일때도 모두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막장으로 치닫는 이 천박한 정권아!(2016년 2월 11일 통일부가 북한의 4차핵실험과 6차 미사일 발사를 이유로 개성공단을 폐쇄하자 자신의 트위터에 핵과 미사일 문제는 일체 언급하지않고 올린 글)
▲전교조 의식화-통일 교육지침서 ‘이 겨레 살리는 통일’=북한을 우리의 잣대로가 아니라 북한의 입장에 서서 바라보는 시각을 길러 주어야 한다(책 119쪽). 북한사회 나름의 논리와 가치를 이해하고 수용하자(20, 68, 119쪽). 남북한 체제 우열을 비교하지 마라 남북한 경제를 비교하지 마라 경제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평화라는 것을 가르쳐라 북한을 남한 입장에서 보지 말고 북한 입장에서 보는 방법을 반복 교육하라(191쪽). 국가보안법은 사상과 학문, 진보적 사회운동을 가로막고 패거리 의식을 양성하는 악법이다(226쪽). 이승복 사건은 조작된 것일 수 있으며 이승복을 이용하는 교육은 통일교육에 어긋난다(228쪽). 북은 북침이라고 주장하고 한국은 남침이라고 주장한다고 가르쳐라(25쪽). 전쟁의 원인은 남한 정부에 있으며 제주 4.3항쟁, 여수 순천 항쟁 등 수많은 ‘작은 전쟁’의 연장선상에 6.25가 있었고, 이 모든 전쟁들은 외세에 의한 민족분단을 극복하려는 정당한 전쟁이었다(26쪽: 제주4.3사건, 여수순천 반란사건 등을 ‘항쟁’으로 미화하고있다)
◈대한민국 건국 폄훼?정통성 부정발언
▲노무현 대통령=우리의 근-현대사는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하는 굴절을 겪었다(2003년 3.1절 기념사)
▲노무현 대통령=반민특위 역사 읽노라면 피가 거꾸로 돈다(2004년 8월 25일 독립유공자 초청 청와대 오찬)
▲노무현 민주당 의원=김구 선생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존경할 만한 사람은 왜 패배자밖에 없는가? 하는 의문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왜 패배했는가? 역사에서 올바른 뜻을 가진 사람은 왜 패배하게 되는가? 이런 질문은 우리 역사에서는 정의가 패배한다는 역설적 당위로 귀착되었고, 나는 그것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노무현이 만난 링컨’, 학고재, 2001)
▲노무현 민주당 의원=한국은 미국을 등에 업은 자본주의 분열세력이 세웠다(2001년 11월 18일 안동시민학교 특강)
▲노무현 대통령=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것은 역사에서 분열세력이 승리했다는 사실(2005년 7월1일 청와대에서 열린 ‘민주평통 12기 전체회의’ 대회사)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대한민국이 1948년 8월15일 건국됐다고 하는 주장은 헌법에 반하는 것은 물론,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없애는, 북한을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다...박근혜 대통령과 황교안 총리,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에게 묻겠다. 대한민국이 1919년 3.1 독립운동에 의해, 그리고 임시정부에 의해 건국된 게 아니라 1948년 8월 15일 처음 건국됐다는 게 정부의 견해인가(2015년 11월 5일 국회에서 열린 시도당-지역위원장 연석회의에서 황교안 국무총리의 대국민담화(11월 3일 발표)에 관해 공개질의하며)
※문재인 대표의 이같은 발언은 아이러니하게도 당장 전임대통령이자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주인 김대중, 노무현대통령의 건국개념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건국 50주년을 기념하는 거창한 행사를 개최했고, 건국 50주년 기념우표 등 기념품들과 함께 고속도로카드까지 만들었다. 문재인이 모신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1948년 오늘) 민주공화국을 세웠습니다. 바로 국민이 주인되는 나라를 건설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이러한 해방과 건국의 역사 위에서...”라고 말했고, 2007년 정동영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대한민국은 내년 2008년으로 건국 60주년을 맞이합니다”라고 했다. 2008년 2월 25일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올해로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을 맞이합니다”라고 했다. 어떤 대통령도 대한민국의 1948년 건국을 부정하지 않았다.
▲김삼웅 ‘평민신문’(평민당 기관지) 편집국장(전 독립기념관장)=2차 대전 후 민족반역세력이 주류가 된 나라는 한국과 남베트남(월남)뿐이다...분단-독재-외세-전쟁 세력은 이 나라 지배집단으로 군림해 온갖 전횡(專橫)과 패덕(悖德)을 일삼아 왔고, 양심세력은 항상 패배하고 탄압받고 착취 대상이 됐다(2008년 3월 21일자 조선일보 사설)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한국은 철저히 미국의 속국이다. 군인은 철저히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이 돼야한다. 주한-주일 미군은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돈을 대줘가면서 하기 때문에 ‘of the people’은 맞지만 작전통제권을 미국이 갖고있고 미국의 이익을 위해 주둔하고 있다는 점에서 ‘by the American, for the American’이다(2003년 7월 12일 ‘프레시안’ 인터뷰)
▲조국 서울대 교수(현 청와대 민정수석)= “김일성을 ‘수령님’으로, 김정일을 ‘장군님’으로 부르는 것은 단순한 ‘친북적 표현행위’로 체제위협을 초래한다고 보지 않는다”(6.25발발 57주년인 2007년 6월 25일 ‘한겨레신문’이 게재한 ‘주체사상파 처벌이 능사인가’라는 제목의 칼럼)
▲조국 서울대 교수(현 청와대 민정수석)=햇볕정책, 즉 대북경제지원은 돈으로 평화를 사는 것으로 본다. 돈을 주는 방식과 절차의 투명성 등은 비판할 점이 있지만 그 기간 동안 국력이 높아지고 북한에 비해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적 우위가 강화된다…대부분의 연구 결과 햇볕정책 시행 이후 북한의 인권수준이 개선되고 남한에 대한 동경은 증가한 반면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 의식은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미흡하지만 이 정도 개선을 이끌어 낸 것도 햇볕정책의 공이다(2007년 8월17일, 자유민주연구학회 주최 ‘제1차 남남통합을 위한 보혁 대토론회’)
▲조국 서울대 교수(현 청와대 민정수석)=송두율 사건은 21세기 한국 사회의 포용력과 민주주의의 수준을 보여주는 실례였다. 송 교수는 독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가 책임져야 할 만큼을 훨씬 넘어 그를 난도질했던 구조, 사람, 논리, 의식은 여전히 이 땅에 살아 있다…반공과 냉전의 잣대로 칼날을 휘두르는 공안세력에게는, 남북한 현대사의 굴곡과 연동된 송두율 교수의 사상적·철학적 모색, 고뇌, 성찰, 변화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2010년 3월16일자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
▲조국 서울대 교수(현 청와대 민정수석)=UN에서 비정부기구가 해당 국가 정부와 입장을 달리하는 의견을 표명한 사례는 국내외를 불문하고 셀 수 없을 정도로 일반적인 일인데도 정부가 참여연대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하는 것은 UN의 메커니즘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처사이다(2010년 6월24일, 참여연대에 대한 국보법 수사중단 촉구 시국선언서)
▲조국 서울대 교수(현 청와대 민정수석)=해묵은 수법을 쓰는 북한정권과 속으로 이를 즐기는 남한 정권이 내는 불협화음 때문에 남북 민중은 모두 괴롭고 힘들다…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체제가 제도적으로 안착되기 전까지는 이러한 국지전과 소중한 인명살상은 간헐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2010년 11월23일 북한에 의한 연평도 포격 이후 자신의 트위터에 남긴 글)
◈북한의 대남도발 묵인?옹호 발언
▲김대중 대통령=이제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험은 사라졌다(2000년 6월 15일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마친 후 성남 서울공항 도착 성명)
▲노무현 대통령=북한은 1987년 이후(KAL 858기 공중폭파) 테러를 자행하거나 그 밖의 테러를 지원한 일이 없다(2004년 11월 12일 미국방문 중 로스앤젤레스 교민간담회)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이 1987년 이후 테러를 자행하거나 테러를 지원한 일이 없다고 말했지만 북한은 1987년부터 2000년 사이 팔레스타인, 이라크, 시리아 파키스탄, 가나, 필리핀의 무장단체들에게 도움이 될 AK자동 소총, 기관총, 방사포를 비롯한 각종 병기와 탄약, 포탄을 제공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1987년 이후 볼리비아, 기니 비소, 시리아, 스리랑카, 수단, 베닝에 게릴라 훈련과 살인테러훈련을 위한 군사교관을 파견해왔다. 6.25당시 남로당 지하당 총책이었으나 지금은 북한정권타도를 내건 망명자 단체 조선민주통일구국전선의 박갑동 상임의장의 증언에 의하면 1966년부터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까지 북한으로 초빙돼 테러교육훈련을 받은 외국인은 이라크, 쿠바, 팔레스타인 등에서 온 5천 800여명이다.
미 의회조사국(CRS)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래리 닉시 박사는 2008년에 작성한 보고서에서 “북한이 헤즈볼라와 스리랑카의 반군단체 ‘타밀 타이거’에 무기는 물론 군사훈련까지 지원했고 이란혁명수비대와는 지금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은 미 본토에 결정적 타격을 주기위해 전 세계적 범위에서 테러 요원을 양성하고 무기나 자금을 제공해 온 것이다. 특히 2001년 4월 미 국무부가 작성한 보고서 ‘국제테러리즘의 양상 1999’(Pattern of Global Terrorism 1999)에는 북한이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국제적 네트워크와 유대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빈 라덴은 이미 20대에 북한의 테러교관으로부터 훈련을 받았다고 명기하고 있다.
빈 라덴의 테러 수법과 북한의 그것이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 없지 않다. 실제로 북한은 1970년대 북한 공군의 주력 기종이었던 미그 15기 등 노후 전투기 1백 40여대를 대남 주요 목표물에 돌진시키는 ‘가미가제식’ 자살결사대를 지난 1998년 창설했다. 이 자살결사대는 1998년 8월말 김정일 직속으로 창설돼 공군사령관 출신인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차수)이 직접 진두지휘해왔으며, 원산과 해주 등 휴전선과 인접한 지하공군기지에서 훈련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함께 38항공육전여단의 경우 여자들로만 구성된 자살특공대가 있다. 이 부대는 군사퍼레이드 등 공식행사에 대비해 창설됐으나 일단 전쟁이 발발하면 폭탄을 안고 주요 시설물을 파괴하는 ‘인간폭탄’임무를 맡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 참여정부는 남북 긴장 완화를 위해 (김대중 정부의 6.15남북 공동선언에 이어) 10.4 공동선언 등을 하며 북을 끌어냈으나, MB(이명박)정부는 이를 부정하고 폐기하면서 결과적으로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사태가 일어났다(2010년 12월 6일 저녁 부산 국제신문사 강당에서 열린 한겨레 대담 ‘한홍구-서해성 공개 직설’에 참석해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에 대한 책임을 이명박 정부와 대한민국의 탓으로 몰아붙이며)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정구사)과 천주교인권위원회 사제등 162명=정부가 KAL기 폭파범이라고 발표한 김현희는 군사독재정권을 연장하기 위하여 항공기 폭파를 자행한 정보기관의 하수인이다(2003년 11월 3일 기자회견을 갖고 1987년 11월 29일 발생한 대한항공(KAL) 858기 공중폭파테러가 북한의 소행이라는 정부 발표를 정부가 독재정권 연장을 위해 조작해낸 사건이라고 주장하면서)
▲문정인 연세대 교수(현 대통령 외교안보통일특별보좌관)=북측이 어선보호를 위해 내려왔고 우리 측이 대응하자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 최초에는 전략적으로 계획된 행동이 아니었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 등 최고위층까지 보고되지 않은 상태였을 가능성이 크다(1999년 6월 16일 북한의 서해도발 관련)
▲정세현 통일부차관(전 통일부 장관)=과연 도발이란 용어를 써도 되는지 모르겠다. 사건 경위가 정확지 않은 상황에서 심증만 갖고 얘기할 수 없다(1998년 6월 23일 북한 잠수정 동해침투사건 관련)
▲심재환 변호사(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 통일위원회위원장)=(대한항공 858기 공중폭파 테러범)김현희는 완전히 가짜다. 그렇게 딱 정리를 합니다. 이건 어디서 데려왔는지 모르지만 절대로 북한 공작원, 북한에서 파견한 공작원이 아니라고 우리는 단정짓습니다(2003년 11월 18일 MBC PD 수첩 ‘16년간의 의혹, KAL폭파범 김현희의 진실’편에 ‘KAL 858기 진상규명대책위원회 소속으로 출연해)
※하지만 노무현 정부까지도 김현희를 가짜로 몰아갔지만(김현희 주장) 노무현 정부때 구성된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과거사위)가 2006년 년 8월 1일과 2007년 10월 24일 두 차례의 발표를 통해 내린 결론은 KAL 858기 폭파사건이 김현희 등 북한 공작원에 의해 자행된 사건임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햇볕정책 및 대북지원 관련 발언
▲노무현 대통령=햇볕정책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2002년 12월 24일 프랑스 르 몽드지 회견)
▲노무현 대통령=우리의 대북 지원은 퍼주기 아니다(2003년 2월 13일 한국노총 간부들과 가진 간담회)
▲노무현 대통령=본질적인 정당성의 문제를 양보하는 것이 아닌 제도적, 물질적 (대북)지원은 조건 없이 하겠다(2006년 5월 9일 몽골 동포 간담회)
▲노무현 대통령=북한이 달라는 대로 다 퍼주어도 남는 장사다( 2007년 2월 15일 이탈리아 로마 동포간담회)
▲노무현 대통령=북한 특수로 또 한번 경제도약 기회 맞을 것(2007년 3월 25일 사우디아라비아 방문 중 리야드 파이잘리아 호텔에서 열린 동포간담회)
▲노무현 전 대통령=오히려 한나라당이 자존심 상하고 퍼주고 끌려다닐지 않을까 걱정된다(2008년 10월 1일 서울 밀레니엄 힐튼호텔에서 개최된 ‘10.4 남북정상선언 1주년 기념 학술회의’ 격려사)
▲이재정 통일부장관=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직전 현대가 북한에 건넨 4억5천만 달러는 북한개발을 위한 先(선)투자였다. 이 돈으로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도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다(2007년 11월 2일 국회 통외통위 국정감사 답변)
▲이재정 통일부장관=북(北)에 대해 많이 주지도 못하면서 퍼준다고 얘기하면 받는 사람 기분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2007년 4월 25일 ‘한반도 주변정세와 남북경협 추진방향’ 주제 강연)
▲이재정 통일부장관=북한 GDP가 우리의 40분의 1, 50분의 1인데 상호주의가 되겠느냐? 상호주의를 하려면 서로 경제규모를 비슷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 상호주의를 하자는 것은 하지 말자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솔직히 북측에서 받아올 게 별로 없다(2007년 10월 22일 ‘아침을 여는 여성평화모임’ 초청강연)
▲김근태 민주당 의원(전 보건복지부장관)=김대중 대통령이 햇볕정책을 했기 때문에 북한이 핵실험을 해도 전쟁위험이 없고 우리는 안전하다( 2006년 10월 17일, 2006년 10월 보궐선거 지원에 나서 전남 해남 방문때)
▲정세현 통일부장관=금강산 관광 대가의 군사목적 전용 의혹은 항간에 떠도는 설을 종합한 것으로 주한미군도 공식 부인한 적이 있다. 공장설비 등에 대한 북한의 수입량이 증가하는 것을 보면 관광 대가가 경제개발에 사용되는 것으로 보인다(2002년 3월 29일 자유포럼 조찬강연)
▲정세현 통일부장관=북측의 간접적 요청이라도 오면 인도적 차원에서 비료를 북한에 보낼 것이다(2002년 3월 2일 KBS라디오 인터뷰)
▲정세현 통일부장관=대북 식량지원은 탈북자 인권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이며 남북관계 안정에도 기여하는 효과적 수단이다(2003년 4월 18일 통일교육협의회 조찬강연)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1998년부터 현재까지 6년간 정부·민간차원을 합쳐 12억 달러를 북한에 지원했고, 이는 매년 국민 1인당 5천원에 불과한 극히 미미한 액수다. 5천원을 주고도 ‘퍼붓기’라고 보수주의자들이 과장하는데 참으로 부끄러운 이야기다(2004년 12월 20일 중국 푸단대 ‘동북아 평화와 한·중관계’ 강연)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북한의 수해규모가 너무나 커서 북한이 공개하기 어려울 것이다. 거의 국가위기상태로 보아야 한다. 우리가 대규모 지원을 해야 한다(2006년 8월 3일 국민일보 인터뷰)
▲임동원 통일부장관=햇볕정책은 좌경 학생운동을 약화시키고 북한이 시장경제 도입을 위해 법을 개정하는 등 가시적 성과를 거두었다(1999년 7월 3일 조찬세미나)
▲임동원 통일부장관=북한의 비료수요는 연간 180만t인데 자급능력은 80만-90만t에 불과하다. 따라서 비료는 금년뿐만 아니라 매년 지원할 수밖에 없는 품목이다(2001년 4월 28일 국회 남북관계발전지원특위 답변)
▲이종석 통일부장관=주무장관으로서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개성공단사업을) 반드시 성취하겠다(2006년 5월 9일 개성공단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종석 통일부장관=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사업 관련 우리 스스로 근거가 불확실한 각종 의혹을 제기하면서 훼손시키려 하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자해행위다(2006년 12월 12일, 통일부장관 이임사)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원=국민들 자장면 한 번 안 먹으면 대북 송전 비용 마련(2005년 10월 4일 국회에서 대북송전 비용을 1조 5천억 원으로 추정하면서 한 발언)
▲허문영 통일연구원 기획조정실장(평화한국 대표)=북한 군사력 유지에 전용되더라도 대북지원 확대해야(2007년 5월 11일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월례발표회)
※대북지원에 대한 미국 주요인사 우려 발언록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금강산 관광은 북한정권에 돈을 제공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없다(2006년 10월 17일 방한에 즈음해)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금강산과 개성공단 사업은 안보리 결의 이행 측면에서 심각하게 검토된다. 더 이상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해서는 안 된다(2006년 10월 18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바른 사회 시민회의 주최’ 초청강연)
제이 레프코위츠 북한 인권특사=모니터링이 이뤄지지 않는 대북지원(개성공단사업을 지칭)을 통해 ‘일부 정부(some governments)’가 문제를 악화시키고 부주의하게 김정일 정권을 지탱시킬 수 있다(2006년 4월 28일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2006년 5월 30일 익명의 당국자 브리핑에서 “개성공단 이해도가 높아지자 미국 내 강경파인 레프코위츠 특사가 초조감을 느끼고, 제동을 걸고자 나선 것”으로 이는 “이는 편파적 시각이며 내정간섭”이라고 비판했다.
제이 레프코위츠 북한 인권특사=한국은 개성공단 사업이 실제로 북한 주민의 삶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지 엄격히 살펴야 한다(2006년 10월 16일 AP통신 회견).
※월간조선 2009년 9월호 보도에 의하면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 북한에 제공된 현금총액은 29억 200만 달러로 파악되고 있다. 그 내역은 상업적 교역, 금강산?개성관광, 사회문화교류비용, 개성공단, 남북정상회담 대가(代價) 등이다. 이는 북한과 경협사업, 사회문화교류사업을 하면서 정부 승인 없이 들어간 ‘뒷돈’은 빠진 수치다. 정부별로 보면 김대중 정부때 13억3천100만달러, 노무현 정부때 15억 7천100만달러였다. 두 정부 10년동안 쌀 비료 등 현물성 지원은 41억 달러규모였다.
한편 2008년 9월 30일자 동아일보 보도에 의하면 노무현 정부가 북에 퍼준 돈은 5조6천777억 원이다. 김대중 정부는 2조7천28억 원을 보냈고 여기에 더해 김정일 비자금으로 현대를 통해 9천억 원을 더 보냈다. 두 매체가 보도한 액수는 거의 비숫함을 알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7월 7일 유럽방문 중 ‘유로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햇볕정책 성과를 묻는 질문에 “지난 10년간 막대한 돈을 지원했으나 그 돈이 북한 사회 개방을 돕는 데 사용되지 않고 핵무장하는 데 이용됐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대중 전대통령은 2009년 7월 13일 영국 BBC와 인터뷰(방송은 17일)에서 “남측에서 북한을 도와 핵무기가 개발됐다는 주장은, 그렇게 믿고 싶은 사람 외에는 합리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정부는 북한에 현금을 준 적이 없으며, 대신 매년 20만-30만t씩 식량과 비료를 지원했다. 그것으로는 핵을 만들지 못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이 몇 개월도 남지 않은 시점인 2007년 10월2일 방북하여 부랴부랴 정상회담을 열어 국민과 국회의 동의 없이 10.4공동성명을 통해 14조 3천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2009년 8월 27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한국행정학회 주최로 열린 ‘민주화 시기의 국정평가’세미나에서 “지난 10여년간 대북지원, 경협 형태로 북한에 직접 지원된 현금?현물은 총 69억 5천 950만 달러 규모”라며 “이중 상당 부분이 핵?미사일 자금으로 전환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더불어 이같은 규모가 “중국 대북지원액의 3.7배”이자 “북한 총 수출액의 90%”에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국가보안법 폐지와‘주적’표현 삭제 주장 발언
▲노무현 대통령=북한은 대한민국의 주적 아니다(대통령 재직시인 2005년 2월 발간된 국방백서)
▲노무현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북한을 주적으로 하는데 반대한다(2002년 4월 10일 충북 청주에서 열린 민주당 대통령후보경선 TV 토론에서 “우리의 주적(主敵)이 북한이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이인제 후보의 질문에)
▲노무현 대통령=국가보안법은 한국의 부끄러운 역사의 일부분이고 지금은 쓸 수 없는 독재 시대의 낡은 유물이다. 낡은 유물은 폐기하고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 보내는 게 좋지 않겠느냐(2004년 9월 5일 MBC ‘시사매거진 2580’ 인터뷰)
▲노무현 전 대통령=국보법은 남북대결주의를 뒷받침하는 근거이자 남북대화의 걸림돌(2008년 10월 1일 서울 밀레니엄 힐튼호텔에서 개최된 ‘10.4 남북정상선언 1주년 기념 학술회의’ 격려사)
▲문재인 민주통합당 의원=민정수석 두 번 하면서 국가보안법을 폐지 못한 것은 뼈아픈 일이었다(자신의 저서 ‘운명’(가교출판사, 2011) 327-328쪽)
▲문재인 민주통합당 의원=국가보안법은 인간 사상에 대한 검열, 행위 형법이 아닌 심정 형법의 문제, 모호한 범죄구성 요건, 형사절차상 피의자의 권리 제한, 사회 전체의 공안적 분위기 조성 등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만큼 마땅히 폐지돼야 한다(2012년 11월 5일 인터넷신문 통일뉴스 창간 12주년 기념 특별인터뷰)
▲문재인 민주통합당 의원=월남전에서의 미국의 패배 및 월남의 공산화에 대해 희열을 느꼈다(자신의 저서 ‘운명’(가교출판사, 2011) 132쪽)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어떻든 (이적단체인) 한총련의 합법화는 필요하다(2003년 8월7일 경기도 포천군 소재 미8군 종합사격장에서 한총련 소속 학생 12명이 진입해 주한미군철수 등을 외치며 소란을 피운 직후인 8월 11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한총련의 합법화를 주장)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북핵폐기 과정에서 한반도 냉전 구조를 해체하고 북미, 북일 관계를 정상화하며 남북 대결구도를 해소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해야 한다(2012년 11월 5일 인터넷뉴스 통일뉴스 창간 12주년 기념 특별인터뷰)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죄 없는 우리 국민을 목 매달아 죽이고 총으로 쏴 죽이고 고문해서 죽이고 암매장해서 죽이고, ‘빨갱이’로 덧씌워 사회적으로 매장한 게 바로 국가보안법이다...이걸 없애고 새나라 새 일꾼들이 일하는 민주공화국을 만들려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2005년 1월 24일 여의도 국회 앞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2월 투쟁선포 기자회견)
▲오종렬=국가보안법이 사멸되었음을 선포한다. 국가보안법이 만들어낸 쇠고랑과 족쇄에 묶인 양심수를 전원 석방시키는 투쟁을 전개하려 한다(2002년 12월 1일 서울 종묘공원에서 열린 소위 ‘국가보안법 장례식’)
▲김근태 보건복지부장관=보안법 폐지를 반대하는 것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부정하는 것이다. 연내 뿌리째 뽑아야 한다(2004년 12월 28일 국민정치연구회 송년모임)
▲정동영 통일부장관=국가보안법 폐지는 내부문제인 만큼 북한의 노동당 규약 및 형법 폐지와 연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조건화하는 것도 적절하지 못하다(2004년 9월 7일 통▲일부 출입기자단 간담회)
▲정동영 통일부장관=국보법은 국가안보와 무관하며, 국보법으로 안보를 담보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2004년 10월 6일 평통자문회의 해외지역회의)
▲이해찬 국무총리=국보법은 그동안 군부의 통치수단으로 악용된 사례가 많은 악법이다(2004년 9월 16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 답변)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전 법무장관)=국보법이 없으면 국가안보가 흔들린다는 것은 선동이다. 이를 알고도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국가안보를 내세워 기본권을 제한하려는 파시즘적 태도다(2004년 9월 6일 열린우리당 출입기자단 간담회)
▲유시민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겸임교수(전 보건복지부 장관)=현행 국가보안법이 존속하는 한 21세기 대한민국은 진정한 민주공화국이 될 수 없다 1999년 8월 24일 동아일보 기고문)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현 서울시장)=우리의 민족민주주의 운동사는 곧 국가보안법 위반사. 국보법은 폐지해야(2004년 4월 26일 한겨레신문에 보도된 김형태 변호사와의 대담)
▲김세균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국보법은 자유를 억압하고, 현존 질서 속에서 기득권을 누리는 사람들의 이익을 체제 수호의 이름으로 옹호하는 수구적인 반(反)민주적 악법(2004년 6월 9일 경향신문 기고 칼럼)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국가보안법은 국가의 안보에는 별 도움이 안되고 오히려 민주적 헌정질서를 내부에서 파괴하는 악법이다(2005년 12월 13일 ‘한겨레21’ 기고 칼럼)
▲김상근 목사=국가보안법은 세기의 악법이다. 지구상 유일의 분단국가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대한민국의 화해와 협력, 교류를 저해하는 반통일, 반민족 악법이다. 냉전 수구 반통일세력을 위한 국가보안법은 국제사회에서도 폐지를 촉구하는 악법(2007년 10월 1일 자신이 상임대표로 활동 중인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산하 언론본부 성명을 통해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며)
▲함세웅 신부=송두율 교수의 고난이 민족의 고난의 현장을 상징하는 한 지표로서 안중근 의사의 애국애족과 동북아시아의 진정한 정신을 체현하고 있다...송교수가 다원적이고 대화합의 시대에 폐쇄적이고 분열적인 사고와 법규로 재단당하여 과거 정약용이 겪었던 것과 같은 부자유의 고난을 되살고 있다(2004년 3월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던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에서 당시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수감 중이던 송교수를 제3회 안중근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병사들이 적개심을 갖고 철책선 근무에 임하는 것보다는 조국에 대한 자긍심과 애정, 높은 시민의식을 갖고 근무에 임하는 것이 보다 강한 군대를 만드는 것 아니겠느냐(2004년 6월 19일 육군사관학교에서 개최된 ‘2004년 무궁화회의’ 초청강연)
▲윤광웅 국방부장관=국방부가 어느 국가에 대해 주적 표현을 쓰는 것은 언어도단(2004년 11월 12일 간부급 국방혁신간담회)
▲이종석 NSC 사무차장=전 세계적으로 특정 국가를 주적으로 명시한 공개 책자는 한 권도 없다(2004년 11월 17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병헌 열린우리당 의원(현 청와대 정무수석)=국가보안법 폐지가 시대정신(2004년 7월 19일 기자간담회)
▲전병헌 열린우리당 대변인(현 청와대 정무수석)=천정배 법무장관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강정구 동국대교수(북한 정권 고무찬양)를 불구속 수사하도록 헌정사상 초유의 검찰지휘권을 발동한 것은 국가보안법 역시 헌법의 하위개념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선언한 것으로, 지극히 당연하고 헌법정신을 구현한 것이다(2005년 10월 13일 강정구 교수 국가보안법위반사건에 대한 논평)
※당시 인터넷 매체 ‘데일리 서프라이즈’에 ‘6.25는 북한 지도부가 시도한 통일전쟁이자 내전’이라는 내용의 글을 올려 김일성을 찬양?고무한 강정구 교수에 대해 검찰은 구속수사를 주장했으나 천정배 장관은 사상 초유의 검찰지휘권을 발동, 불구속 수사를 명했다. 이에 김종빈 검찰총장은 지휘권을 수용함과 동시에 이에 반발하는 의미로 사표를 내고 물러났다.
▲심재환 변호사(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 통일위원회위원장)=국가보안법은 북한의 무력남침?적화통일론을 기초로 국민들에게 전혀 불필요한 국가안보에 대한 의구심과 불안감을 자극하고 고취하여 국민들 스스로 독재와 식민의 구속과 속박에 몸을 내맡기게 만들고, 수구세력의 발호와 사기극을 수용하도록 하였던 것이다...국가보안법은 허구요, 기만이요, 소름끼치는 음모의 굴레다(2004년 12월 2일 발표해 민변 홈페이지에 올린 논문 ‘국가보안법의 전제인 북한에 의한 무력남침?적화통일 허구성’)
◈NLL(북방한계선) 무력화 망언
▲노무현 대통령=서해 NLL(북방한계선)남쪽의 남한 영해에 남북한 공동어로구역 또는 평화수역 만들자는 김정일의 제의에 노무현 대통령은 “예” 하고 대답(노무현-김정일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2007년 10월 3일)
※이 대목 대화 전문은 아래와 같다
김정일: 우리가 주장하는 군사경계선, 또 남측이 주장하는 북방한계선, 이것 사이에 있는 수역을 공동어로구역, 아니면 평화수역으로 설정하면 어떻겠는가...우리 군대는 지금까지 주장해 온 군사경계선에서, 남측이 북방한계선까지 물러선다. 물러선 조건에서 공동수역으로 한다... 북방한계선과 우리 군사경계선 안에 있는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선포한다. 그리고 공동어로 한다.
노무현 대통령: 예. 아주 저도 관심이 많은....위원장이 지금 구상하신 공동어로 수역을 이렇게 군사 서로 철수하고 공동어로하고 평화수역 이 말씀에 대해서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거든요...
※이 대목에서 김정일이 주장한 군사경계선이란 북한이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9월 2일 발표를 통해 일방적으로 NLL남쪽 대한민국 영해(영토)에 그은 해상군사경계선이다. 이 군사경계선은 백령도, 연평도 등 서해의 우리 섬들이 그 선 안으로 들어가 있어 북한의 허가를 받아야 출입할 수 있게 만든 경계선이다. 남측의 동의나 승인이 없는 한 실효성이 없는 허상의 경계선이다. 김정일은 북한이 주장하는 NLL 남쪽의 이 군사경계선 그리고 남한의 NLL 사이의 수역을 공동어로구역 아니면 평화수역으로 만들자고 제안 한 것, 다시 말하면 대한민국 영해안에 남북이 공동으로 활동하고 관리하는 수역을 만들자고 제안한 것인데 노대통령은 ‘예’라고 답하며 찬성을 표시한 것이다. 이를 육지에 대입하면 북한이 멋대로 휴전선 남쪽 수원 부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군사경계선’을 굿고 그 선과 휴전선 사이, 즉 수원을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의 수도권을 평화지대로 공동관리하자는 것과 같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의 NLL발언이 대한민국 영토의 포기라는 해석이 나오게 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내가 가장 큰 목표로 삼았던 NLL문제를 위원장님이 승인해 주셨다( 2007년 10월 3일 김정일과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NLL은 국제법적인 근거도 없는데 남측에서는 이걸 영토라고 주장한다( 2007년 10월 3일 김정일과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것(NLL)은 쌍방이 합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그은 선이다. 그 선이 처음에는 우리 군대의 작전금지선이었다. 이것을 오늘에 와서 영토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렇게 되면 국민을 오도하는 것이다(2007년 10월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정당 대표·원내 대표 초청 간담회에서 김정일과 회담 결과를 설명하며)
▲노무현 대통령=NLL은 어릴 적 땅 따먹기 할 때 땅에 그어놓은 줄(2007년 11월 1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을 상대로 한 연설)
▲서주석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현 국방차관)=헌법상 육지에 인접한 NLL 남북의 수역은 모두 대한민국의 영토이므로, NLL이 영해선을 의미한다고 하는 것은 위헌적 주장이다(2007년 8월 28일 한겨레신문 기고문)
▲이재정 통일부장관=우리나라 어느 공식문서에도 NLL이 영토적 성격이라고 써 놓은 곳이 없다. NLL은 기본적으로 영토개념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2007년 8월 11일 국회 통외통위 답변)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NLL은 영토선 아니다. 정전(停戰)때 바다에 금을 안그었더니 꽃게가 삼팔선이 있는지도 모르고 계속 북으로 넘어가니까 조업할 북쪽한계선을 설정할 필요가 있어 그은 선이다. 영토개념이 아닌 선을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2005년 10월 19일 한국일보 초청 대담)
▲이종석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 수석연구위원(전 통일부 장관)=1992년 체결된 남북합의서에서 이미 재설정 논의에 합의한 만큼 NLL 문제도 이제 전향적인 자세를 보일 때가 되었다(2007년 8월 11일)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북한이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NLL 재획정은 장성급 군사회담이나 국방장관 회담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서 제도적 평화체제 구축 노력과 한반도 냉전체제 종식을 위해서는 정상 차원에서 매듭을 풀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2007년 6월 29일, 서울대 통일연구소 주최 학술심포지엄)
◈한미동맹반대?주한미군철수?반미 선동 발언
▲노무현 대통령=용산 미군기지는 침략의 상징이다( 2004년 3월 1일 제85주년 삼일절 기념사
▲노무현 대통령 후보=미국 안 갔다고 반미주의냐? 반미면 또 어떠냐?(2002년 9월 11일 대구 영남대 초청강연)
※노무현 대통령과 노무현정부 인사들의 반미발언과 관련한 미국 주요 인사들의 발언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 미국의 전쟁 중에는 3만여명이 전사하고 10만여명이 부상한 한국전쟁도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 그(송민순 정책실장을 지칭)에게 상기(remind)시켜 줘야 할 것이라고 본다(2006년 10월 20일 미국 워싱턴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
제임스 켈리 미국 국무부 차관보: 한국의 차세대 지도자는 한국에서의 미국의 전통적인 역할에 이의를 제기하는 등 미국과의 관계를 재설정(redefine)하려고 나설지 모른다(2002년 4월 4일 워싱턴 아시아 소사이어티 초청 강연)
헨리 하이드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장: 일부 (한국)정치인은 반미주의를 이용해 이득을 취하다가도 재정적·군사적 지원이 필요하면 미국에 찾아 온다(2006년 8월 10일 방한 기자회견)
※일본의 미국전문가인 히다카 요시키(日高義樹) 허드슨연구소 수석연구위원(전 NHK워싱턴 지국장-미국총국장, 전 하버드대 객원교수)는 그의 저서 アメリカは北朝鮮を核爆擊する: その衝擊のシナリオ(미국은 북한을 핵 폭격한다 -그 충격의 시나리오), 은영미 옮김, 나라원, 2003)에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노무현은 김정일 이상으로 미국에 적대하고 있다. 부시는 노무현과 만나면서 한 번도 노무현의 얼굴을 바로 쳐다 본 적이 없다. 지극히 싫어해서다.
노무현이 미국인들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그가 원래 반미정치가이기 때문이다. 반미세력을 이용하는 정치가가 아니라 스스로 반미세력을 결집, 확장시키는 사람이다.
그가 이끄는 청년들은 북한 핵무기를 민족의 무기라고 믿고 있으며 이를 젊은 학생들에 전파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미국의 대북군사행동에 반대한다. UN안보리를 통한 제재에도 반대한다( 2006년 8월 18일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한국의 국방력 강화는 북한이 아니라 일본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군사적 태세를 갖추는 것(2006년 8월 13일 자신에게 우호적인 일부 언론사 편집책임자들과 만찬 회동)
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미국은 북한을 공격하거나 정권을 흔든다는 공포심을 제거해주어야 한다(2008년 9월16일 이임 인사차 김해 봉하 마을을 찾은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에게)
※이에 대해 버시바우 대사는 “우리는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사실을 확신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우리가 북한 정권의 생존까지 보장할 순 없다. 그 문제는 정치적 경제적 개혁의 필요성에 직면한 북한 지도자들에게 달렸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무현 대통령 경선후보=남북대화 하나만 성공시키면 나머지는 깽판쳐도 괜찮다(2002년 5월 28일 인천 부평역 정당연설회)
▲노무현 대통령=북한 체제 붕괴 원하는 자들과는 얼굴 붉힐 각오돼있다(2004년 12월 6일 프랑스 동포간담회)
▲노무현 대통령=북한 붕괴 조장할 생각없다(2005년 4월 13일 독일방문중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진 동포간담회)
▲노무현 대통령=미국이 북한체제붕괴로 문제를 해결한다면 한미간 마찰 일것(2006년 1월 25일 신년기자회견)
▲노무현 대통령=북한 붕괴 막는 것이 한국 정부의 매우 중요한 전략(2006년 12월 9일 뉴질랜드 교포 간담회)
▲노무현 전 대통령=한국의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와 MD(미사일방어 시스템) 참여 좋은 전략 아니다(2008년 10월 1일 서울 밀레니엄 힐튼호텔에서 개최된 ‘10.4 남북정상선언 1주년 기념 학술회의’ 격려사)
▲노무현 전 대통령=작계 5029도 현명한 것 아니다(2008년 10월 1일 서울 밀레니엄 힐튼호텔에서 개최된 ‘10.4 남북정상선언 1주년 기념 학술회의’ 격려사)
▲노무현 전 대통령=남북대화 시대에 한미동맹 강조하는 것 좋지 않다(2008년 10월 1일 서울 밀레니엄 힐튼호텔에서 개최된 ‘10.4 남북정상선언 1주년 기념 학술회의’ 격려사)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크 파병은 역사에 잘못된 선택으로 기록 될 것(‘성공과 좌절-노무현 대통령 못 다 쓴 회고록’ 중)
▲허문영 통일연구원 기획조정실장=북한이 개방하지 못하는 건 미국의 적재정책 때문이다( 2002년 8월 28일 방미중 ‘The Korea Weekly of Florida’ 인터뷰)
▲노무현 대통령=국방을 미국에 맡겨놓고 자주를 얘기할 수 없다(2007년 10월 3일 김정일과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 외국 군대가 있는 것은 나라 체면이 아니다(2007년 10월 3일 김정일과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한국 국민들 중 미국 사람보다 더 친미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2005년 4월 16일 터키 국빈방문 때 가진 동포간담회)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점령군에 의해 내 나라 내 땅의 국민이 죽임을 당하는데도 정부는 손톱만큼도 보호해주지 못하고 있다. 엄연히 국가주권이 있는 나라에서 가능한 일이냐. 점령군이 주둔하는 한 우리 목숨은 파리 목숨이며 우리의 주권은 한낱 쓰레기일 뿐이다(2002년 9월30일 미군 트레일러와 충돌해 숨진 박승주씨 장례식장)』
▲오종렬=미국이 이 나라를 정치·경제 식민지로 전락시키도록 토대를 마련한 맥아더가 과연 해방자인가, 이것은 나라의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인천공원을 자주독립공원으로 바꾸고 민족의 스승인 김구선생의 동상을 세워야 통일세상이 열릴 것이다(2005년 9월 1일 청와대 부근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동상 파괴 주장 발언)
▲문정현 신부=이제 미군부대만 지나면 저주의 마음이 든다. 사람을 죽여 놓고도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는 저들이 사람이냐?(2002년 9월 30일 미군 트레일러와 충돌해 숨진 박승주씨 장례식장)
▲문정현 신부=전동록, 신효순, 심미선의 죽음은 옛날 같으면 ‘개죽음’이었을 것이고 그렇게 하고도 말 한마디도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미군의 주둔을 원치 않는다. 당장 떠나라(2002년 7월 4일 용산 전쟁기념관 앞 반미집회)
▲문정현 신부=미군 고압선에 사망한 전동록씨의 모습이 눈에 보인다. 전동록 씨와 효순이, 미선이를 죽인 미 2사단 캠프 하우스를 즉각 폐쇄해야 한다(2002년 7월 27일 서울 종묘공원 ‘미군장갑차 여중생 살인만행 주한미군 규탄 5차 범국민대회’)
▲한상렬 목사=미제(美帝)야말로 바로 5.18의 원흉이다. 우리 민족을 분단시키고 아직까지도 통일을 방해하고있는 미제야말로 우리 민족의 적이고 세계 인류 양심의 공동의 적이다( 2004년 5월 15일 미대사관 앞 기자회견)
▲김원웅 열린우리당 의원=만약 한반도의 평화와 동맹국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하면 우리는 서슴지 않고 동맹국을 포기할 것이다(2005년 3월 13일 헨리 하이드 미 하원 국제관계위 위원장의 발언에 대한 반박문. 하이드 위원장은 2005년 3월 10일 열린 ‘한반도의 6자회담과 핵문제’ 청문회에서 “한국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당신의 적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밝혀 달라”고 주문)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미군기지는 온갖 범죄의 소굴(2002년 9월 9일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수락연설)
▲임종인 열린우리당 의원=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주한미군이 세계 분쟁에 마음대로 개입하는 것을 우리 정부가 용인한다는 얘기다. 미국이 세계를 휘젓고 다니는데 우리가 돈을 댈 수는 없다(2006년 1월 24일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장성민입니다’에 출연해)
▲윤기진 민권연대공동의장(종북 콘서트 개최와 관련,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기소된 황선 희망정치연구포럼 대표의 남편)=리퍼트 미 대사 피습 사건은 얼굴에 상처가 조금 난 것뿐인데, 온 나라가 난리다...미 대사한테 이런 짓거리들이 백주 대낮에 벌어지고 있다. 종북보단 종미와 종일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미 대사가 감사한 사람입니까? FTA 강요하고 무기 팔아먹고 핵항모, 전략폭격기 들여 오는 주범이 바로 주한 미국 대사입니다(2016년 3월 9일 황선씨의 재판이 열리는 서울중앙지법 근처에서 황씨 재판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며 기자들에게 한 말)
▲윤기진=주한 미 대사는 CIA 한국지부장 역할을 한다(리퍼트 미 대사를 겨냥해) 미 국방장관 비서실장등을 거친 호전가가 삼계탕과 치맥에 반해 친한파 대사로 변절한 거냐(2016년 3월 7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
◈대한민국 건국 폄훼?정통성 부정발언
▲노무현 대통령=(대한민국 건국사에 대해)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했던 시대(2003년 2월 25일 취임사)
▲노무현 대통령=우리의 근·현대사는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하는 굴절을 겪었다( 2003년 3.1절 기념사)
▲노무현 대통령=반민특위 역사 읽노라면 피가 거꾸로 돈다(2004년 8월 25일 독립유공자 초청 청와대 오찬)
▲노무현 민주당 의원=김구 선생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존경할 만한 사람은 왜 패배자밖에 없는가? 하는 의문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왜 패배했는가? 역사에서 올바른 뜻을 가진 사람은 왜 패배하게 되는가? 이런 질문은 우리 역사에서는 정의가 패배한다는 역설적 당위로 귀착되었고, 나는 그것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노무현이 만난 링컨’, 학고재, 2001)
▲노무현 민주당 의원=한국은 미국을 등에 업은 자본주의 분열세력이 세웠다(2001년 11월 18일 안동시민학교 특강)
▲노무현 대통령=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것은 역사에서 분열세력이 승리했다는 사실(2005년 7월1일 청와대에서 열린 ‘민주평통 12기 전체회의’ 대회사)
▲문정현 신부=한국민은 인간백정 주한미군을 반드시 한국 재판대에 세우고 한국민의 이름으로 심판할 것이다(2002년 11월 21일 동두천 미군 캠프 케이시 정문 앞에서 열린 효순·미선 추모집회에서 낭독한 기자회견문을 통해)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미국이야말로 악의 제국이며 부시행정부의 집권세력이야말로 악의 축이다(2003년 4월 7일 한겨레신문 인터뷰)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우리 내부에 미국을 신으로 모시고 있는 세력이 북한과의 전쟁을 호시탐탐 미국에 요청하고 있다(2007년 4월 19일 한겨레통일문화상 시상식)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합법정부가 아니다(1999년 8월 12일 ‘일등 여수아카데미’ 강연)
▲강정구 동국대 교수=북한의 김일성 정권은 높은 수준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이승만 정권은 정통성은 물론 권력행사 정당성도 부재했다( 자신의 저서 ‘민족의 생명권과 통일’)
▲김삼웅 ‘평민신문’(평민당 기관지) 편집국장(전 독립기념관장)=2차 대전 후 민족반역세력이 주류가 된 나라는 한국과 남베트남(월남)뿐이다...분단·독재·외세·전쟁 세력은 이 나라 지배집단으로 군림해 온갖 전횡(專橫)과 패덕(悖德)을 일삼아 왔고, 양심세력은 항상 패배하고 탄압받고 착취 대상이 됐다(2008년 3월 21일 조선일보 사설 보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