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 2010.12.21 03:01
김정은 후계체제 굳히고 南南 갈등도 확산시켜… 中·러 지지도 재확인
리처드슨 불러 평화공세… 韓美가 응하지 않을 땐 미사일·핵실험 나설수도
"북한은 항상 우리의 허점을 노렸다. 추가 도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안보부서 당국자)북한은 20일 우리 군의 연평도 사격 훈련에 대해 지난달 23일처럼 당장 도발하지 않았다. 대신 방북 중인 빌 리처드슨 미국 뉴멕시코 주지사를 통해 "유엔의 핵 사찰단 복귀를 허용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북한군 최고사령부도 이날 '보도'를 통해 "일일이 대응할 가치를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는 "내일이라도 우리 긴장이 풀리면 공격할 수 있는 게 북한"이라고 말했다.
- ▲ 자주포 사격훈련 해병대 연평부대 소속 K-9 자주포 등이 20일 오후 연평도 서남방 우리측 해상의 해상사격훈련구역을 향해 포격 훈련을 했다. 사진은 지난 8월 백령도의 K-9 자주포 사격훈련 모습이다. /연합뉴스
◆"평화공세 안 통하면 추가 도발할 것"
군 소식통은 "북한은 주로 기습 공격을 해왔다"며 "이번 훈련처럼 우리가 만반의 준비를 했고, 미군과 유엔사까지 참관한 상태에선 도발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또 리처드슨 주지사를 부르는 등 평화공세를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는 상황에서 연평도 재도발은 이로울 게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유동렬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은 "북한은 정세가 뜻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3차 핵실험, 장거리미사일 발사 등으로 미국을 자극하거나 대규모 포 연습, 단거리미사일 발사 등으로 남한을 협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북한은 평화공세와 무력 도발을 번갈아 사용해왔다. 작년 8~11월 대규모 식량지원을 요구하며 남북정상회담 등 평화공세를 펼치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올해 3월 천안함 폭침, 11월 연평도 포격 등의 도발을 했다. 특히 북한은 21일쯤 점등 예정인 애기봉의 성탄절 트리를 조준 사격하거나 인천공항 혼란을 노리고 인천 앞바다에 포격을 가할 수 있다. 노동신문은 이날 "괴뢰 군부가 서부의 최전선지대에서 '대북 심리전'을 위한 등탑 켜기 놀음(애기봉 점등)을 벌인 것은 군사분계선 일대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에 의한 심리모략전의 개시도 멀지 않았다는 것을 시사해준다"며 새로운 무장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고 위협했다.
◆"북, 이미 얻을 건 얻었다"
북한은 지난 연평도 포격으로 이미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내부적으로 김정은 후계체제를 공고화했고, 외교적으로 중국뿐 아니라 다소 소원했던 러시아의 지지를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남한에는 전쟁 공포를 심어주면서 '남남(南南) 갈등'의 골을 더 깊게 팠다. 이날 민주노동당은 "미국이 한반도를 전쟁 전야로 내몰고 있다"고 했는데, 노동신문도 20일자에서 "미국이 조선반도 긴장 격화의 근원"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지난 연평도 공격으로 서해 NLL(북방 한계선)을 분쟁 지역화하는 데 이미 성공했다는 분석이 많다. "우리가 37년간 해온 NLL 훈련을 유엔 안보리가 주목하게 만들었다"(외교 소식통)는 것이다. 앞으로 'NLL을 봐라. 평화협정이 필요하지 않으냐'는 주장을 하며 미국에 '김씨 왕조 체제 보장'과 '주한 미군 철수'를 요구할 것으로 관측된다. 안보부서 관계자는 "평화공세와 외교책동으로 도발에 따른 보상을 챙기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터의 추억?
북한이 리처드슨 주지사를 불러들여 "유엔 핵 사찰단 복귀"를 흘린 것은 1994년 카터의 방북 추억과 관련 있을 것이란 관측이다. 1차 북핵 위기가 한창이던 1994년 6월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김일성 주석을 만난 뒤 CNN 생방송에서 "김일성이 핵 사찰단을 추방하지 않기로 했다. 원자로를 폐기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고 밝혔다. 그 덕분에 김일성은 미국의 공격 위기를 모면하고 미국과 협상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북한은 '핵 사찰단 복귀' 뉴스를 리처드슨과 함께 방북한 CNN을 통해 내보냈다.
그러나 김정일은 최근 평양에서 다이빙궈(戴秉國)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에게 '핵 사찰'을 언급하면서도 북한이 핵을 평화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원심분리기 등 우라늄 시설을 유엔 사찰 아래 계속 가동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