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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계종주

월간산 서울시계종주 7 8 구간-2

[ 서울시계(市界)종주 7·8구간 ] 서울 남서·남동쪽 하천·산 두루 섭렵
하천 따라 10여㎞, 산길로 20㎞…발원지 우물·유물 확인하며 걸어
▲ (좌)관악산 정상 비석에서 시계종주팀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우)관악산에서 내려와 남태령로를 건너면 바로 남태령 옛길 비석이 나오며, 이 길로 우면산으로 접어든다.
안양천은 시흥 목감동 630고지에서 발원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개웅산과 굴봉산 등으로 둘러싸인 오류골은 현재의 오류동 외에 천왕동·궁동·온수동·항동 일대를 전부 포괄했다. 이곳의 명물은 참외였다고 한다. 오류골 참외는 조선시대 궁중의 진상품으로 유명했다고 전한다.

개웅산 정상은 해발 130m에 불과한 구릉산지다. 정상엔 정자가 있어 주변조망을 가능하게 했다. 목감천이 흐르는 한진아파트 방향이 시계와 일치한다. 그쪽으로 하산이다.

목감천(牧甘川)은 안양천의 제1지류로서 경기도 시흥시 목감동에 위치한 630고지 계곡에서 발원해 안양천으로 합류하는 하천이다. 상류지역은 경기도 시흥시와 광명시를 경계로 북쪽으로 흐르다가 서울시 경계에 이르러 광명시 철산동과 구로구 구로동이 만나는 지점에서 안양천과 합류해 한강으로 흘러드는 물줄기다.

목감천 발원지 부근에 조선시대 목암사(牧岩寺)라는 사찰이 있었으며, 사찰 경내에 감나무의 개량품종인 단감나무가 유명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지역을 목암사의 목(牧)자와 감나무의 감(甘)자를 따서 목감리라고 불렀으며, 이곳에서 발원한 하천도 목감천이라고 부른 것으로 전한다.

광명교 아래 목감천으로 접어들었다. 목감천을 따라 무려 3㎞ 가량을 내려갔다. 그러나 이는 곧 다가올 안양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목감천 좌우로 별로 볼 것도 없다. 그냥 흐르는 하천을 보거나 땅을 보며 걸을 뿐이다. 한마디로 무미건조한 길이다.

이어 개명교를 지나고 개봉1자연방류수문을 지나쳐 한강 제1지류인 안양천으로 내려갔
다. 한때 이곳도 난지도와 마찬가지로 오염과 악취로 악명이 높았던 하천인데, 지금은 시민의 휴식처로 각광받고 있다. 자전거도로와 좌우로 야생화·조팝나무·개나리 등을 가로수로 심어 지겹지 않게 조성했다.

안양천은 한강 지류 가운데 중랑천 다음으로 규모가 큰 하천이다. 경기도 의왕시 청계동 청계산 계곡에서 발원한 안양천은 북서쪽으로 흐르다가 백운산에서 발원한 왕곡천, 수리산에서 발원한 수암천, 삼성산에서 발원한 삼성천 등과 합류해 한강으로 흘러든다.

안양천 유역은 상류로부터 경기도의 의왕·군포·안양·부천·광명시 등 5개 지자체를 거쳐 흘러 내려오며, 서울로 들어서는 금천·관악·동작·영등포·구로·강서·양천 등 7개 구를 지나가는 큰 물줄기다.

조선시대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 금천현편에는 “대천(大川)이 현의 서쪽 4리에 있으며, 과천현의 관악산과 청계산에서 발원해 북쪽으로 흘러 양천현의 철곶포(鐵串浦)로 흘러 들어간다”고 해 큰 하천이란 의미의 대천이라 불렸음을 알 수 있다. 과천현편에서는 “현의 남쪽 14리에 인덕원천이 있고, 현의 서쪽 19리에 학고개천(鶴古介川)이 있다”고 하여 안양천의 상류를 ‘인덕원천’, 중류를 ‘학고개천’으로 각기 명칭을 달리했다. <여지도서> 과천현편에서는 “안양천이 현의 서쪽 20리에 있는데, 사근천(沙斤川)과 인덕원천(仁德院川)이 금천에서 합류해 흘러간다”고 기록돼 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기탄(岐灘)’으로 표기하고 있다. 따라서 안양천은 ‘대천’ ‘학고개천’ ‘기탄’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이름만큼 긴 안양천을 따라 계속 걸었다. 안양천은 총 길이가 35㎞ 정도로 알려져 있다. 목감천 합류 지점에서 시작해 석수역까지 총 8㎞ 남짓을 하천과 주변을 보며 걸었다. 그날 종주는 그걸로 끝이었다. 거의 하천에서 시작해서 하천으로 끝난 7구간이었다. 하천으로 걸으니 유독 더 길게 느껴져 무지하게 걸은 느낌이었다.

[ 8구간 ]
석수역~호암산~장군봉~삼성산~관악산~연주대~남태령~우면산~양재천~한국트럭터미널 21.2㎞


최근에는 한번 걸었다 하면 20㎞는 예사로 훌쩍 넘긴다. 매월 둘째, 넷째 화요일에 구간을 종주할 때마다 첫인사로“오늘은 몇 킬로미터 정도 예상됩니까?”라고 묻는 게 정례화되다시피 했다. 그만큼 많이 걷는다는 얘기다.

이날은 기존 동행 멤버에 25시산악회 회원까지 합쳐서 종주를 시작할 때의 인원과 비슷한 21명이나 됐다. 출발부터 사람들로 북적북적했고 호암산·삼성산·관악산·우면산 등 4개의 산을 넘는다는 말에 다소 힘이 빠지는 듯했다. 그래도 걷는 게 일이다.
▲ (좌)우면산 등산로는 잘 닦여 있고, 숲도 우거져 각종 새소리에 딱따구리 나무 쪼는 소리까지 들린다.(우)둑 위로는 야생화와 가로수 등이 아름답게 정돈된 양재천을 서울시계종주팀이 걷고 있다.
석수역에서 오전 9시에 모이기로 했으나 많은 인원이 참석한 관계로 출발이 20분쯤 지연됐다. 석수역에서 내려 육교로 바로 1번 국도를 건너 호암산까지는 불과 1㎞ 정도밖에 안 됐다. 호암산 입구엔 등산안내판이 있어 등산로를 상세히 안내하고 있다.

산으로 들어서는 순간 ‘이제는 신록이 왔구나’를 직감할 수 있었다. 파릇파릇한 나뭇잎들이 등산로를 가득 덮었다. 보기만 해도 상큼한 세상이다.

호암산은 관악산의 끝봉우리에 속하는 산으로 봉우리가 호랑이를 닮았다고 해서 호암산(虎巖山)이라 불린다. 호암산과 관련된 일화는 조선 건국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복궁 건설 당시 호랑이 모습의 괴물이 궁궐 건설을 방해해 밤에만 나타나 건물을 무너뜨리자 그 남쪽의 산에 있는 호랑이를 제압하고자 시흥에 있던 호암사를 산 위로 옮겨 호압사(虎壓寺)라 고치고, 산 정상에 방화(防火)의 상징인 해치를 세우고 한우물을 조성했다고 전한다. 한우물 주변에 있는 호암산성은 통일신라시대 당군을 축출할 때 군사적 요충지로 사용됐다고 한다.

마침 ‘뒷모습은 40대, 앞모습은 50대, 마음은 30대’인 65세의 전윤정 대장이 한 말씀 하신다.

“서울시계종주하면서 참 많이 배워요. 서울에 수십 년을 살면서 전혀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던 산을 이번 기회를 통해 알게 됐고, 산과 관련된 역사도 많이 배웠어요.”

정말 마음이 젊은 분이다. 요즘도 매주 한두 번씩, 한 달에 최소 일고여덟 번씩 산에 간다
고 자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