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 2011.10.29 03:14 / 수정 : 2011.10.29 21:15
청룡·백호·현무·주작… 조선과 일본의 풍수학은 비슷해 보였지만 달랐다
'국운풍수'를 논하는 것은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풍수적 관점에서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지난 회에 '우리 민족의 진정한 주산(主山)은 백두산이 아니라 중국의 의무려산'이라고 하였다. 풍수에서 주산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 나라의 주산은 그 민족의 발원처이자 중심축이다. 미래 우리 민족 '생활권(Lebensraum)'의 지향처가 되어야 함을 말한다.
주산을 보면 한 집안이나 국가의 흥망성쇠를 알 수 있다. 조선과 마찬가지로 풍수지리가 크게 유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려에서는 주산 개념이 약했다. 중심축이 없었다는 의미이다. 고려 중앙정부의 행정력이 지방에 미치지 못하였다. 백성들은 외적(왜구·몽고·홍건적)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가 없었다. 반면 조선에서는 크게는 국가에서, 작게는 개인의 무덤까지 주산 개념이 명확해져갔다. 상대적으로 중앙정부 통제력과 영토개념이 더 분명해졌다.
국토관은 나라마다 시대마다 다르다. 서로 다른 국토관은 그 민족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준다. 국토관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고려와 조선에서는 '땅을 보고 그 땅의 성격이나 하중 능력을 활용하는 기술'인 풍수가 국가의 관학(官學)이었다. 따라서 고려와 조선의 국토관은 당시의 풍수관에 의해 규정된다.
중요한 것은 고려와 조선의 풍수관이 달랐다는 점이다. 지관선발 고시과목이 달랐기 때문에 그로 인한 국토관의 차이가 생겨난 것이다. 이러한 국토관의 차이가 국가의 흥망성쇠에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일까? 조선과 일본의 풍수관 수용을 보면 뚜렷해진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풍수서적은 11세기에 쓰인 '작정기(作庭記)'이다. 본디 정원을 만드는 지침서이지만 그 핵심 내용은 풍수이다. 이 책도 다른 풍수서적들과 마찬가지로 사신사(四神砂), 즉 청룡·백호·주작·현무를 중요시한다. 그런데 조선과 일본의 사신사 내용이 달랐다. 조선의 수도 한양(서울)의 사신사는 북악산(현무)·인왕산(백호)·낙산(청룡)·남산(주작)으로 모두 산이다. 이렇게 사방의 산을 내용으로 하는 조선의 사신사는 지기(地氣)를 저장하는 역할을 한다. 반면 일본의 사신사는 산이 아니다. 현무는 언덕(丘), 백호는 큰길(大道), 청룡은 흐르는 강(流水), 주작은 연못(池)으로 상정한다. 예컨대 1000년 이상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京都)의 청룡은 가모가와(鴨川)라는 강, 백호는 산인도(山陰道)라는 큰길, 주작은 오구라이케(巨�c池)라는 큰 호수였다. 흐르는 강(청룡), 큰길(백호), 큰 연못(주작)은 수레와 크고 작은 배들이 다니는 통로가 된다. 화물의 운송, 교역, 상업, 조선업, 측량술, 토목기술 등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사신사는 지기를 북돋워 배가시키는 기능을 한 것이다.
산을 중시하느냐(조선), 물을 중시하느냐(일본)에 따라 훗날 그 국가의 운명은 다른 길을 맞이한다. 일본은 16세기에 이미 유럽과 교역을 하였고(일정 기간 쇄국이 있었지만) 19세기 말엽이면 세계 해상강국이 된다. IMF 당시(김대중 대통령 당선 즈음) 미국 연방준비위원회 그린스펀 총재를 배행하고 한국에 왔던 구자형 박사가 그때 했던 말이다. "19세기 말 일본과 조선의 GNP 비율이 10:1이었다." 1905년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세계 최강의 러시아 함대를 격침시킨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강과 바다를 재화를 운반하는 통로로 삼고, 큰길을 만들어 교통을 용이케 한 일본 풍수관의 결과였다. 이에 반해 조선은 끝까지 사방을 둘러싸는 산들을 사신사의 이상으로 여긴다. 은둔의 나라가 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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