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이렇지는 않을까?
다산 정약용이 유배를 가서 강진 땅에 머무는 동안
이론적인 유학자처럼 임금에 대한 무한충성같은 태도를
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덩달아, 주변의 사람들도 왕권에 대한 무한적인 충성심보다는
인간적인 본성과 백성의 의미에 대한 교육과 공부가 되었을 것이고
천주교라는 종교가 왕권과 편하게 양립하기가 쉽지도 않았을 것이다.
실학자인 정약용의 영향을 받은 전라도와
퇴계선생과 같은 이론적 유학자의 학풍이 강한 경상도에서
"흙"이라는 단어를 발음할 때에
뒤에 모음이 오는 경우를 살펴 보면
"흘기"라고 발음하여 원천을 모두 밝혀서 발음하는 원칙론자들과
"흐기"라고 발음하여 불편하게 다 발음하는 것 보다 한가지로 발음하는 실용학자의
대립이 있지 않았을까?
"닭", "넓", "밟".......
제주도, 전라도, 충청남도, 경기도, 서울, 황해도, 평안도 쪽의 서편과
경상도, 강원도, 함경도 쪽의 동편의
사투리를 연구해 볼 일이다.
어쨌든 오늘은 여기까지가 나의 소설이다.